내 마음안의 가라지

하늘호수♡님 2019-09-20 23:38 ... 조회(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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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오늘은 너무 더워서 아마 몇 분 안 오실 거다’라고 생각하지만 항상 틀립니다.

성당생긴 이래 제대 위까지 올라와 미사를 드리는 일은 이게 처음이 아닐까합니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됩니다.

늦게 와서 뒤에 있는데 안내가 데리고 나와 이렇게 주교님자리에까지 다 앉으시네요.

어제 무슨 꿈 꾸셨습니까?

 

아까 우리 성모님께 노래할 때 저는 분심이 들었어요. 아베~ 아베~

여러분은 그 생각 안 드셨어요?

처음에는 분심 들다 성모님께 아베 수상이 착은 마음 갖게 해 달라고 생각을 바꿨죠.

물론 라틴어로 글자는 다르지만, 아무튼 다시 상생의 관계가 되어야겠죠?

오늘 이 자리에 일본 분도 제가 알기에 두 분이 계시는 것으로 압니다. 매달 오세요.

저 분들은 참 그럴 것에요.

또 지금 일본에서 사목하는 제 동생 신부 있잖아요?

거기 신자들도 눈치만 보고 속마음을 얘기 못 한 대요.

동생 신부도 신자들한테 얘기 못하고, 일본 신자들도 괜히 미안해하는 신자들도 있고.

저는 그렇게 얘기했어요. ‘입조심 해라.’

 

사람이 이 세상에 나와서 뭔가 생각하면서부터 갖는 의문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해요.

첫 번째는 산다는 게 도대체 뭐냐? 삶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첫 번째 의문입니다.

그런데 죽을 때가 된 사람은 이미 살아봤기에 자기 답을 얘기할 수 있어요.

 

인간이 묻는 두 번째 질문은 죽음이란 무엇이고 죽음너머 어떤 세상이 있을까?

이 문제는 죽었다 살아난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으니 그분 말을 믿는 수밖에 없죠.

나는 길이요, 진리요, 내가 바로 부활이라고 하셨잖아요?

사실 죽음이라고 하는 것도 우리 믿는 이들에게 답은 있어요.

또 상선벌악(賞善罰惡) 교리를 믿기 때문에 죽음 너머 세상도 우리는 짐작을 해요.

 

마지막 세 번째 의문은 악의 문제에요.

왜 창조주 하느님이 악을 만들었을까?

마치 창조주 하느님이 악을 창조한 것처럼 질문을 던져요.

악의 정체는? 악의 시작은 어디이고 그 결과는 뭔가? 악이 미치는 영향은 뭔가?

이 세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을 창세기의 창조설화를 통해서 찾으려 했습니다.

계명을 어기게 만든 존재로 창세기에는 뱀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그 어둠의 존재에 의해 선악과를 따먹고 악이 세상에 퍼진다고 나옵니다.

성서는 ‘악하기에 죄를 짓는 것이고 죄를 짓기에 악해진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의문은 예수님 시대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계속해서 물어집니다.

왜 하느님이 계시다면 악을 방치하는가?

착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아무리 기를 쓰도 잘 되는 것이 하나도 없고,

남을 짓밟고 올라서는 사람들이 세상눈으로 보면 더 출세하고 떵떵거리고 사는데,

도대체 하느님은 뭐하고 계시는 거냐고? 왜 이런 악을 방치하느냐고 절규합니다.

 

구약에는 욥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의인이 당하는 고통을 설명하려 애를 썼지만,

구약은 신약의 준비이기에 그 욥의 삶을 통해서도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와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통하여 악의 근원과 악의 정체,

또 악이 어떻게 진화하는지에 대해 아주 단순하고 명쾌하게 답을 주셨습니다.

 

미친 농부가 아니라면 자기 밭에 밀 씨만 뿌리지 절대로 가라지 씨를 뿌리지 않을 겁니다.

성경에는 ‘누군가’ 몰래 가라지 씨를 뿌리고 갔다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누구냐? 이거죠.

 

첫 번째, 마귀가 뿌려놓는 가라지 씨앗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 깊은 내면에 있는 상처가 뿌려놓는 가라지, 미움이 뿌려놓는 가라지. 죄의식이 뿌려놓는 가라지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요한을 죽인 후 예수님이 나타나니 요한이 살아났다합니다.

왜?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고 난 후로 하루도 다리를 뻗고 잔 날이 없었죠.

죄의식 때문에.

 

농부는 분명 밀 씨만 뿌렸는데, 나중에 보니 가라지 싹이 밀 싹과 같이 올라옵니다.

그런데 농부는 가라지 싹을 안 뽑습니다.

안 뽑는 이유는?

두 싹이 비슷해 가라지 싹을 뽑다 밀 싹을 뽑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둡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가라지 줄기가 올라오고 밀 줄기가 올라와서 지나가는 누구나

 ‘저것은 밀이다. 저것은 가라지다.’ 확연히 구분되어도 농부는 이상하게 가라지를 뽑지 않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시죠?

아까 악은 진화한다고 그랬어요. 교묘하게 지능적으로 숨는다고 그랬어요.

악은 절대로 그냥 죽지 않는다고 그랬어요.

이 가라지가 얼마나 독한 놈인지 자기 뿌리를 밀 뿌리에다 칭칭 감아요.

‘나 뽑을 테면 뽑아. 나 혼자 안 죽어. 내 저 놈 끌고 나가서 같이 죽지.’

이렇게 이 교활한 가라지는 끊임없이 진화를 해 나갑니다.

농부도 마음 같아서는 당장 뽑아 불태우고 싶지만 밀까지 같이 나올까 그냥 둡니다.

언제까지 기다립니까? 추수할 때까지 기다리죠.

추수할 때가 되면 밀을 뽑다가 가라지가 나오든 가라지를 뽑다가 밀이 나오든,

 가차없이 뽑아 엉긴 뿌리를 찢어 가라지는 불에 태우고 밀은 곡간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다고 그럽니다.

 

악은 진화한다고 그랬습니다.

물론 선도 악을 쫓아가려고 애쓰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악이 훨씬 영악합니다.

교회는 진화하는 이 악에 맞서는 방법을 가르쳐야 됩니다.

사제는 신자들에게 각자 마음 안에 마귀가 뿌려놓은 가라지가 내 밭을 망가뜨리려고 할 때

 어떻게 그 가라지를 해결해야 되는 지, 그 어둠의 존재와 맞서는 방법을 알려줘야 됩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교회는 이 진화하는 악에 맞설 힘이 없습니다.

그냥 무방비 상태입니다.

신학교에서도 마귀를 안 가르친지 오래되었습니다.

수도원에서도 마귀 얘기하면 왕따 당합니다.

주교님들도 강론하실 때 양들에게 마귀와 싸워 이기는 방법에 대하여 안 가르칩니다.

신부들도 일 년 내내 단 한 번도 마귀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분명 직무유기입니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구마사제가 등장하는 구마 영화가 나옵니다.

물론 그 영화는 저와 밀접하게 관련이 깊습니다.

시나리오도 감수를 했습니다.

영화감독들이 저를 찾아와 도움을 청할 때 저는 손을 잡고 고맙다고 했습니다.

‘사제들이 해야 될 일은 당신이 하는구나!’

여러 해 전 멜 깁슨 감독의 ‘The Passion of the Christ’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전 세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얼마나 감동 했습니까?

위대한 감독의 손에 의하여 성령 충만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음란에 빠진 감독에 의하여 음란스러운 영화가 만들어지듯이 말입니다.

종교 영화는 매우 위험한 영화입니다. 성공 안 할 확률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신부님을 모델로 영화제작하고 싶습니다. 시나리오 감수해주십시오.’

물론 영화이기에 흥행되어야 되지만 종교적인 선을 넘어가면 아주 위험해집니다.

저는 그 경계를 확실히 가르쳐 줍니다.

‘여기까지는 흥행 상 인정하나, 그 선을 넘으면 교회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을 것이다.

구마예식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하나 가르쳐 줍니다.

진화하는 악을 향하여 맞서 싸워야할 교회가 손을 놓고 있을 때 신심 깊은 감독들은

이 세상에 어둠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러기에 저는 그들을 도와줍니다.

 

‘사자’라는 영화가 개봉된 것 아시죠? 갔다 오신 분들도 있죠.

안성기씨가 로마교황청에서 파견한 구마사제로 나옵니다.

박서준이라는 젊은 배우가 기가 센 그래서 마귀와 싸울 수 있는 힘이 넘치는 강한 기운을 가진 사람으로

안신부의 조력자로 나옵니다.

악이 진화하면서 그 진화의 끝은 자기의 존재를 감추는 겁니다.

‘마귀가 없어’라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겁니다.

그 영화의 말미에 2편으로 ‘사제’라고 하는 영화가 준비되고 있다고 나올 겁니다.

 

내 육신 안에 수도 없이 많은 가라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내 상처를 가지고 휘두르는 그 어둠의 세력. 내 죄의식을 가지고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깨는 그 어둠의 세력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헤로데 영혼의 밭에 죄책감이라는 가라지가 잔뜩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헤로데는 비참한 삶을 끝냅니다.

죄책감이라고 하는 가라지로부터 해방되지 못하고, 상처로부터 해방되지 못하고,

마귀로부터 자유롭지 못 할 때는 파멸 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가 내 밭에는 밀밖에 없다고 자신하겠습니까?

저도 자신 없습니다.

밀과 가라지가 내 영혼 안에 섞여 있어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은

하느님은 완전한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밀과 가라지가 섞여 있지만 끝까지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열등감으로부터 해방이 되어야 됩니다.

 

돌아온 탕자가 그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성경에 없지만, 저는 많은 묵상을 했습니다.

돌아온 탕자는 그 영적 열등감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으면 다시 나갈 것이다.

탕자가 그 집에 붙어 있을 수 있는 힘은 뭐냐?

형이 나를 미워하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신다는 굳은 믿음입니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그 믿음은 탕자를 성인으로 만들 겁니다. 아멘.

 

우리 영혼 안에 가라지가 빛이 강한 쪽으로 찾아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성령의 불로 하나씩, 하나씩 태워 없어진다는 믿음을 가집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어둠 쪽으로 걷지 않고 빛이 강한 쪽으로 성령이 충만한 곳으로 우리는 찾아와야 됩니다.

아멘.

 

이곳은 노아의 방주입니다.

어떤 거세 폭풍이 몰아치고 벼락이 쳐도 노아의 방주는 절대 침몰하지 않습니다.

세상살이에 지쳐 힘들고 육신이 병들고 마음이 병들고 밀밭인지 가라지밭이 모를 정도로

온통 잡초가 무성했던 그런 영혼이라 하더라도,

오늘 주님이 불러주셨음을 믿고 불러주셨으니 하실 말씀이 있고 또 주실 은총이 있다는 것을 믿도록 합시다.

그리고 은총의 밤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겸손한 마음으로 오늘 밤을 봉헌하도록 합시다.

 

아멘.

 

♣2019년 8월 은총의 밤 (8/03)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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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릭스1254 (2019/09/21 10:3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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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백발 (2019/09/23 16: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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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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