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참다운 말씀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19-03-14 21:33:21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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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분도작가님 from 분도작품방>

+ 찬미예수님!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 저 생각 안 나셨어요?

저는 여러분들 하나도 생각 안 났어요.

조금 이상하게 서운하게 생각할 줄 모르지만, 저는 휴가 때는 휴가만 생각해요.

왜? 하느님께 맡기고 왔으니까요.

어리석은 인간은 휴가 가면 집 생각, 집에 오면 휴가 생각, 아무 것도 못하죠.

머무는 장소가 바로 하느님과 최선을 다하는 장소입니다.

 

어느 신부님이 강론하다가 물었어요.

“교우분들 가운데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 들어보세요.”

손 드는 사람이 없었는데, 몇 초 지난 후 할아버지 한 분이 조심스럽게 들더래요.

95세인 그 할아버지 말씀, “젊었을 때는 미운 놈들이 많았어. 그런데 다 죽었어.”

그러니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 오래 사시면 저절로 미운 놈들 없어지니. 오래 사세요.

 

오늘 루카 복음은 4장 21절로 끝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 가 두루마리 이사야서를 읽으신 다음 제일 먼저 하신 첫 말씀인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로 끝나죠.

 

도대체 무엇이 이루어졌다는 겁니까?

오늘 미사 중에 사제의 입을 통하여 봉독된 말씀, 그리고 그 해설이 오늘 이 자리에서 분명히 이루어질 겁니다.

치유가 이루어질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축복이, 구마가, 그리고 회개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 내용을 우리들은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그 결과를 이미 알아요.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무엇이 이루어진다는 것일까? 그런데 그분 쫓아다니니 치유가 되고 마귀가 떨어지고 회개가 돼.’했지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는 축복의 자리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고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제자 모집하는 일? 아니면 말씀 선포하는 일?

예수님이 세례 받고 제일 먼저 하신 일은 말씀 선포였어요.

제자들을 먼저 모으기 시작하면 소유가 될 수 있고 조직이 되어 파워가 생겨요.

예수님은 그런 것까지도 염려하시어 제자를 모으기 전에 먼저 하신 것은 말씀 선포에요.

 

말씀 선포는 나눔을 뜻해요.

말씀이 없이 만들어진 제자의 집단은 잘못하면 교주를 모시는 조직이 될 수도 있지요,

또, 열두 명에는 세리도 있었고, 세리를 죽이려 다녔던 암살단원도 있고, 사회에서 만나면 물과 기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먼저 말씀으로 그 사람들을 하나로 일치시키셨지요.

다시 말하면 세례 받은 누구나 첫 번째 의무는 어디 가입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에요.

오늘 내가 세례 받았으면, 세례 안 받고 있는 아내한테 하느님 말씀 선포해야 해요.

오늘 세례 받았으면 힘들어 하는 친척, 이웃, 친구에게 말씀 선포하는 것이 일 번이에요.

 

사제의 가장 큰 의무도 말씀 선포입니다.

사제는 죽어가면서 침대에 누워서 라도 미사를 드려야 해요.

강론 준비 철저하게 해야 됩니다.

준비된 강론은 우리들을 성령께로 인도하고 성체께로 인도합니다.

준비된 강론을 듣고 성체를 영한다면 눈물을 안 흘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제뿐 아니라 세례 받은 여러분 모두는 예언직이 있기에 말씀 선포의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입에 나온다고 다 말씀은 아닙니다.

‘엄마 밥 줘.’, 이건 말입니다. 말은 의사소통의 도구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그렇지가 않죠.

 

말과 말씀은 다릅니다.

첫째로 말씀은 반드시 영적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 영적 변화의 중요한 것은 사람 중심에서 하느님의 중심으로 바뀝니다,

늘 첫 자리에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시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고 살게 됩니다.

이게 말씀이 주는 첫 번째 영적 변화입니다.

 

두 번째로 말씀이 주는 것은 치유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치유를 받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회개합니까?

 

세 번째 말씀이 주는 힘은 우리의 구체적인 삶이 변화됩니다.

그리고 내 삶이 변화가 되면 내 주변이 같이 변화가 됩니다.

내가 변하면 남편도 예뻐 보일 겁니다. 내가 변하면 며느리도 예뻐 보입니다.

너부터 변하면 내가 변하겠다는 것은 절대 우리 신자들의 논리는 아닙니다.

내가 먼저 빛이 되어야 주변이 밝아집니다.

우리들을 말씀을 듣고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 매사에 적극적으로 기도하게 되고,

올바른 영적 예배를 드리게 되고, 그리고 담대하게 선교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말씀과 말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사제는 강론 때 말씀을 선포해야 되지 말을 선포하면 안 됩니다.

물론 사제가 세상의 모든 체험을 다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강론 준비하고 강론 시작할 때 늘 간구합니다.

‘주님, 제 펜대가 어떻게 나가야 될지, 어떤 말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지식이 아니라 성령께서 강론 준비를 시켜주셔야 됩니다.

그리고 제대 위에서도 성령이 도와주셔야 됩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됩니다.

신학생들에게 설교학을 가르치면서 제가 늘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는 그것 이였습니다.

 

명강론이 되려면 적어도 네 가지의 조건이 필요합니다.

영향을 덜 주는 것부터 말한다면 선천적인 것도 영향을 줍니다.

목소리가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이, 그리고 그 집안에 끼가 있는 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좋은 강론에 영향을 미치는 제일 밑에 단계입니다.

 

그 다음 위에 단계가 좋은 강론이 되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신학생 때 ‘신부는 미사만 잘 드리면 되고, 설교는 목사들이 하는 거야’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미사도 열심히 드리고 설교 열심히 하면 그게 금상첨하죠.

강론 준비 제대로 못하는 것을 그런 식으로 합리화를 시키느냐!

그래서 저는 신학생 때부터 꿈이 있었습니다.

‘저 신부님은 유명한 목사님보다 설교를 더 잘 하신다.’

준비는 나름대로 많이 했죠.

하다못해 책의 내용을 스크랩하고, 녹음해서 내가 들어보며 발음교정을 합니다.

발음 고치려고 아나운서 하듯이 입에다 볼펜 물고 수천 번을 연습했어요.

어차피 설교는 대중연설 이기에 ‘했습니다’ 까지 정확히 전달이 돼야 해요.

이런 것들이 모두 후천적인 노력이고 자신감을 주며 좋은 강론을 하는 힘이 됩니다.

 

그 다음에 영향을 주는 것은 체험입니다.

체험은 좋은 체험도 있지만 고통스러운 체험도 있습니다.

저는 신부로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그 당시는 ‘왜 사제 생활이 이렇게 힘든가?’ 했지만,

뒤돌아보면 그 체험을 통해서 신자들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체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제가 모든 체험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선천적인 끼, 후천적인 노력, 그리고 많은 체험이 있다 해도,

제일 중요한 첫 번째가 없으면 말씀이 아니라 그냥 말이 되어버립니다.

첫 번째는 성령의 도움심입니다.

36년을 미사를 했으면 이제는 떨리지 않고, 이제는 눈을 감고도 경본을 외울 수 있건만,

해가 갈수록 제의를 입을 때 마다 더 긴장이 되고 떨립니다.

늘 제의를 입으며 기도합니다.

‘주님 제 입을 갖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말씀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말이지 말씀이 아닙니다.

 

2001년도부터 10년 동안 중국 선교를 나갔습니다.

5년 동안은 조선족을 상대로 선교했고, 5년은 한족들을 상대로 선교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모택동이 죽고 난 후 등소평이가 달러를 벌기 위해서 문을 열었습니다.

중국에서 공산화 혁명이 되고 난 이후 처음으로 문이 열렸죠.

기회는 이때다! 한국 신부로는 처음 선교를 나갔습니다.

조선족들을 피정을 시키죠.

물론 우리 서울말을 모른 것도 있어도 조선족들은 95% 말이 통하죠.

예를 들어 조선족들은 남편이라는 말이 없고. 나그네라고 그럽니다.

그래도 아무튼 조선족들은 대개 통했어요.

하지만 중국인들을 피정할 때는 제가 중국말을 모르니 조선족 회장님이 통역해줍니다.

그런데 조선족 회장님 자체가 서울말을 잘 못 알아들으세요.

내가 강론 한 줄 하고 회장님 통해 중국인에게 갈 때는 50프로 밖에 전달이 안 돼요.

그런데 희한한 게 웃어야 할 때 이 사람들이 웃어요.

울어야 할 때 반 토막만 갔는데도 손수건 꺼내서 눈물을 닦더라 이겁니다.

누가 도와 주셨기 때문에? 성령이.

인간의 제한된 못 채워주는 말씀의 반을 성령이 채워주셔서 그들에게 전달이 돼요.

말이 아니라 말씀이 되려면 성령이 함께 하셔야 돼요.

 

저는 전 세계 사람 다 고백성사 줄 수 있어요.

중국 사람들이 성사 보러 들어와요.

말을 못 알아 들으니까 당황했지만, 마음을 편히 먹었어요.

왜? 이 안에 나만 있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계시니까.

중국말로 뭐라하면, 저는 추임새만 하면 되요.

그리고 보속도 쉬워요. 묵주 보여주면서 손가락으로 몇 번 보여주면 다 알아요.

사제경은 한국말로 하면 되고요.

고백소 안에서 예수님과 성령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비록 내가 이 사람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도

 예수님이 치유시켜 주시고 사제해 주신다는 것을 저는 믿기 때문이죠.

 

예수님께서도 성령의 능력을 가득히 받고 나서야 회당에서 말씀을 선포하셨죠.

예수님이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님 머리 위에 머물렀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셨지만, 비로소 성자,

메시아로서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이 함께 할 때였습니다.

 

피정 지도한지 저는 36년, 37년이 되어 갑니다.

황송하게도 저는 신부가 되기 전 부제 때부터 피정지도를 했었습니다.

언제나 늘 조심스럽고 두렵습니다.

피정 받으러 온 사람들, 이 미사 강론을 듣는 교우들은 다양한 삶이 있고 각기 다른 상처가 있고

각기 다른 어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지식을 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성령이 도와주지 않으면 말장난이고 지식 전달이지, 절대로 영적변화 시키지 못 합니다.

그래서는 저는 늘 기도합니다.

‘성령이시여, 제 입술을 가지소서. 저는 다만 입을 벌려 드리나이다. 제 입술을 통하여 이들을 변화시켜 주소서.’

 

여러분들, 오늘 명심하십시오.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는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교가 아니라 말이 될 수가 있고,

절대 상대편을 흔들어 놓지 못합니다.

‘주님, 저는 말주변도 아는 것도 없습니다. 저 사람 주님께 인도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성령께 도움을 청하고 말 한마디 건넬 때는,

성령이 함께 하시기에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영적 변화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합시다.

 

아멘

 

♣2019년 연중 제 3주일(01/27)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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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 (2019/03/15 08:4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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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합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펠릭스1254 (2019/03/15 09: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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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사랑많이 (2019/03/15 10: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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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찡합니다

늘 말씀 속에 살아갈수 있도록

성령이시여,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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