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말과 말씀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19-01-07 10:29:05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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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 분도 작가님

 

+ 찬미예수님

 

여러분들 복음서가 몇 개가 있지요?

제일 처음이 마태오복음, 그리고 마르코, 루카, 마지막에 나오는 것이 요한이죠.

그 중에서 제일 먼저 쓰진 것이 마르코복음이라고 그랬어요.

예비자나 신자들이, ‘4복음서가 비슷한데 제일 먼저 어떤 복음을 읽으면 좋겠습니까?’

물으면 저는 제일 먼저 루카복음을 읽고 사도행전, 마태오복음, 마르코복음, 요한복음 순서로 읽으라고 합니다.

 

루카복음을 제일 먼저 읽으라는 이유는 루카복음은 아름답고 이야기형식으로 되어있죠,

루카라고 복음을 쓴 그분 직업이 의사에요.

의사라 아무래도 많이 배운 분이고, 또 여러 가지 지식이 있다 보니까 루카복음을 보면

아주 문체가 화려하고 아름다워요. 그리고 시적인 문체가 있기 때문에 지적이어요.

4복음서 중 제일 어려운 것이 요한복음이고,

제일 쉽고 편하고 아름답고 쏙쏙 와 닿는 내용이 루카복음이어서 먼저 읽으라고 항상 권면을 해드립니다.

 

오늘 읽은 것이 루카복음이에요.

오늘 복음의 첫 머리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나타났을 때 시대 배경이 나오죠.

그 당시에 티베리우스제가 로마황제로 있었고, 유다 땅에는 본시오 빌라도가 총독으로 있었고,

그중에서도 갈리레아의 영주로는 헤로데가 있었다고 그 역사적인 분위기를 얘기합니다.

그 다음에 복음 전체를 압축하는 아주 중요한 말(keyword)이 나와요.

오늘 묵상이 흘러 넘쳐 나올 수 있는 샘과 같은 딱 한 줄이 나와요.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리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이게 중요한 얘기에요.

보통 말씀이 내렸다는 말은 안 하죠. 성령이 내리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리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루카복음 사가는 하느님의 말씀과 성령을 동일시합니다.

확실히 기억하고 넘어가야 될 것이 ‘성령이 곧 하느님의 말씀이다.’

요한복음의 ‘천지가 생기기도 전에 말씀이 계셨다.’에서 말씀은 성자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말과 말씀은 다르죠.

사제가 제대 위에서 강론하는 것은 말을 하는 겁니까,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겁니까?

여러분과 식당에서 이런저런 얘기하는 것은 말을 하는 겁니까, 말씀을 전하는 겁니까?

성령이 함께 한 언어를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성령이 없는 언어를 우리들은 언어, 다른 말로 ‘말’이라고 표현합니다.

 

말씀을 듣는 자는 반드시 치유가 일어납니다.

말씀 앞에 있는 자는 아무리 어둠으로 가득 차 있어도 구마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듣는 자는 변하기 싫어도 반드시 변화가 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단단한 얼음이 ‘난 절대로 안 녹을 거야.’ 버텨도 얼음이 녹지요.

돌덩어리 같은 얼음도 빛 앞에서는 녹게 되어 있습니다.

 

사제들의 강론, 훈화는 말씀이어여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강론은 신자들이 제일 먼저 알아요. 혼자 떠드는 것이지요.

 

제가 신학생들에게 설교학을 가르치며 사람을 변화시키는 아름다운 설교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조건이 있다고 했어요.

제일 영향을 덜 주는 조건부터 얘기하면 선천적인 끼가 있어야합니다.

어떤 집안은 말을 잘 하는 집안이 있어요. 참 재미나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아버지도 그렇게 말 잘 해. 아버지와 똑같아.’ 끼가 있어야 돼요.

또 나쁜 목소리보다는 좋은 목소리가 더 나겠죠.

하지만 이런 것은 좋은 설교에 영향을 제일 덜 줘요. 제일 마지막 조건이에요.

 

그 다음 조건은 체험이 있어야 돼요.

이 세상의 체험을 다 하고 살 수는 없죠.

그래서 다른 사람의 체험을 옮길 때 겸손하게 옮겨야 돼요.

마치 자기가 그 체험을 직접 한 것처럼 하면 신자들은 헷갈려 해요.

한번은 피정 후 그 곳 회장님과 밥을 먹는데 회장님이 아주 조심스레 얘기하는 것에요.

‘신부님, 동생 신부님이 우리 동네에서 피정하고 가셨어요.’

‘아, 그래요. 몰랐네요?’

‘그런데요, 동생 신부님이 얘기한 것과 신부님이 얘기하신 것과 똑같은 게 많아요.’

한 대 얻어맞은 것에요.

똑같은 얘기를 하니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구나 하는 분심이 생기더래요.

동생한테 전화했어요.

‘사베리오. 형 체험을 피정 지도할 때 쓰는 것은 좋은데, 반드시 인용부호를 붙어라.’

아름다운 설교에는 책에서 배운 이론이 아니라 그 이론이 체험에 녹아 나야 돼요.

 

밑에서 세 번째 조건은 본인의 노력이 아주 중요해요.

신학생 때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신부는 미사만 잘 하면 돼, 설교는 목사들 몫이야.’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어요.

왜 사제는 미사만 잘 하면 됩니까?

미사도 잘 하고 설교도 잘 하면 그 얼마나 은혜롭겠습니까?

저는 신학생 때도 나름대로 욕심이 있었어요.

정말로 주님께서 사제로 서품을 주신다면 빈손으로 세상에 보내시지 않을 것이다.

말씀을 선포하는 능력, 예수님처럼 마귀에 잡힌 교우들에게서 마귀를 떼어주는 능력,

그러한 여러 가지 능력들을 주실 것이라고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었죠.

 

그 말씀을 잘 선포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노력을 했어요.

좋은 얘기가 나올 때는 스크랩을 해 놓고 내가 한 말을 녹음해서 들어봤죠.

들어보고 잘 안 되는 발음은 볼펜 물고 수천 번을 했어요.

아나운서들이 얘기할 때는 ‘했습니다.’ 까지 정확하게 전달이 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음향도 아주 필수적입니다.

신자들에게 주는 첫 번째 서비스가 좋은 음향입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지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음향입니다.

 

지금 얘기한대로 선천적인 끼, 체험, 본인의 노력이 있어야 되지만,

이 세 가지를 열심히 한다 하여도 이 하나가 없으면 그냥 말이 되어 버려요.

그 하나가 뭘 것 같아요?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안 돼요.

제의를 입으면서부터 기도합니다.

‘주님, 오늘 제 입술을 가지시고 제 입술을 통하여

오늘 강론을 듣는 모든 사람 하나하나가 바로 자신에게 하는 말로 들리게 해 주시고,

그 설교를 통하여 치유가 일어나고 구마가 일어나고

돌아나갈 때는 믿음의 확신을 갖고 성체를 잘 모시게 해 주십시오.’

 

성령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그것은 지식의 전달 밖에 되지 않습니다.

성령과 함께한 말씀은 치유와 구마와 인간 변화를 가져옵니다.

성령이 없이 하는 언어는 자칫 잘못하면 상처를 많이 줍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말씀과 말의 차이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에게 성령이 내렸다고 표현되어 있지 않고 말씀이 내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은 바로 성령입니다.

말씀을 받은 세례자 요한은 제일 먼저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고

성서에는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세례는 베풀었다하지 선포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 성서에 회개의 세례, 그 목적은 죄에 대한 용서입니다.

 

사제의 말씀 선포의 첫 단추는 회개시키는 것입니다.

회개와 회두는 같은 말입니다.

회두는 몸뚱이만 하느님께 가는 것이지만 머리까지 하느님을 향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죄를 지었을 때 성자의 성심, 성령, 성모성심을 얼마나 아프게 했던가?’

그것을 느끼는 마음이 바로 회개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성모성심을 아프게 했다는 마음을 강하게 갖고 성사를 볼 때,

우리는 같은 죄에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대부분 회개보다는 후회를 합니다.

‘그 죄에 떨어져서 기분 나빠. 자존심 상해. 그 죄 고백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기억이 안 나고 자기 자존심이 상하는 겁니다.

자기중심적입니다.

이렇게 후회하고 고백소에서 죄를 고백하는 것은 근본적인 회개가 아니라 후회입니다.

빨리 죄라는 굴레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신부님 입을 통해서 네 죄의 굴레로부터 죄 사함 받았다는 말만 듣길 원합니다.

 ‘예수성심, 성모성심, 천주님의 마음을 내가 얼마나 아프게 했을까'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그래서 후회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하느님을 못 만납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사람은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대로 골짜기는 메워질 겁니다.

교만한 산과 언덕들은 모두 낮아질 겁니다.

내 마음이 굽은 데는 곧아질 것이요,

그리고 거칠기 이를 데 없는 내 마음은 평탄하게 아름다운 벌판으로 바뀌게 될 겁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리아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오늘 이 미사 때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들 각자 각자에게 내리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2018년 대림 제2주일(12/09)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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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 (2019/01/07 13:4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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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강론말씀감사합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장미♡모바일에서 올림 (2019/01/07 22: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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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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