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기도는 구원이다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18-12-20 11:01:51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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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우리들은 연중 제34주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평일 독서와 복음이지만, 미사 지향은 성모신심을 향한 미사입니다.

전에 감곡에서는 루르드 성모님으로 몸에 7개 총알구멍이 있는 매괴 칠고 성모님을 모셨죠.

여기 서운동 왔더니 푸른 군대 파티마 사도직 본부 성당이에요.

그래서 여기선 파티마 성모님을 모시고 은총의 밤을 합니다.

파티마 성모님이나 매괴 성모님은 같은 성모님이죠?

발현할 때 모습만 바뀌신 것에요.

루르드 성모님은 팔을 모았고, 벨기에의 바뇌 성모님은 머리를 살짝 숙이신 모습이죠.

발현하실 때 마다 모습이 좀 달라서 발현하실 때 모습으로 성모님 상을 만드는 거죠.

 

요즘 평일 미사 복음이 오늘까지 이어졌는데, 어떤 복음이에요? 루카복음이죠.

예루살렘의 파멸 예고와 세상의 종말에 대한 무서운 말씀을 많이 하시며

그 시기가 언제인지 미리 알아서 대비하라고 비유를 들어주셨죠.

 

예수님 때 이 두 가지, 예루살렘의 파멸과 세상의 종말을 얘기하셨어요.

말씀대로 예루살렘은 예수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이 살아있던 AD 70년에 무너집니다.

로마인들의 말발굽에 그 화려하던 성전이 돌멩이 하나 제자리에 없을 정도로 망합니다.

성전의 기둥을 휘감은 포도나무를 금덩어리로 만들어 멀리서도 눈이 부셨다고 해요.

절대 허물어지지 않을 줄 알았던 그 강한 하느님의 성전이 무너집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얘기하신 세상 종말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직 안 왔습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에 세상 종말이 올 때에 대한 징표는 얘기하셨죠.

‘전쟁이 일어나고 기아와 기근이 일어나고 무법천지가 될 것이다,’

거기에 성모님은 2000년 동안 발현하시면서 몇 가지 덧붙여 주셨어요.

‘예수님 말씀대로 세상종말의 징표는 알 수 있지만, 집행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세상에 종말, 파멸의 날은 분명히 올 겁니다.

그렇지만 종말이 세상과 파멸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하느님의 벌은 아니지요.

무질서하고 부도덕한 무법천지를 다시 질서 잡는 하느님의 간섭이 바로 세상종말입니다.

즉, 세상 종말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은 세상을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새로운 세계를 완성하시는 그 과정입니다.

그리고 죄 많은 인간들과 세상이 겪어야 하는 진통이 세상 종말을 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세상종말의 시기가 아니라 사심판에 대한 준비입니다.

나 개인에 대한 죽음, 나 개인에 대한 심판과 종말을 어떻게 준비하여 끝맺을 것인가?

사심판 준비를 잘 한 사람한테 공심판이 다가와도 무서움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사심판 때 무서워 벌벌 떠는 사람은 공심판이 와도 역시 떨 겁니다.

 

오늘 읽은 복음은 개인 심판 또 공심판에 잘 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알려줍니다.

오로지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 ‘늘 깨어 기도하여라.’

 

우리가 알다시피 심판 날에는 모든 것이 둘로 갈라질 겁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심판 때까지는 모든 것이 뒤엉켜 있습니다.

공포와 기쁨이 같이 뒤엉켜 있고, 수치와 영광이 같이 뒤엉켜 있고,

선과 악이 같이 뒤엉켜 있고, 거짓과 진실이 같이 뒤엉켜져 있고,

병들 때와 건강할 때도, 젊을 때와 늙어갈 때도 한 몸뚱이에 같이 심어져 있습니다.

한 개인에게도 선과 악이 같이 뭉쳐 삽니다.

그러나 내 안에 악이 더 강할지라도, 또, 선이 강해 악이 물러날지라도,

기쁨보다 슬픔이 더 클지라도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내 안에 뒤엉켜 있는 이 복잡한 것들, 어차피 지고 살아야 할 십자가들입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치매 초기 단계에 들어가셨어요.

어머니가 저한테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당신은 기도한데요.

어떻게 기도하느냐?

‘비록 치매로 아들신부를 못 알아보는 상황이 와도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사심판도 그렇고 공심판도 그렇고,

내가 선 쪽으로 설 것이냐 악 쪽으로 설 것이냐 하는 기준은 그 당일에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성실하고 정직하게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나를 이어주는

구원의 끈인 기도를 붙들고 사는가하는 현재 내 삶의 모습에 결정이 됩니다.

 

오늘 복음은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조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도록 하고.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지금부터 항상 깨어 기도하고 있으라고 얘기하십니다.

‘당신 암이오. 3개월 밖에 못 사오.’ 라는 선고를 받아

내 안에 희망과 절망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뒤바뀌는 죽음의 골짜기까지 간다 해도 깨어서 기도하라는 겁니다.

깨어 기도하면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이론적인 기도나 기도의 종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실하고 단순하고 겸손한 기도를 바치라는 겁니다.

 

그러면 기도한다는 것은 뭐부터 시작해야 되는 걸까요?

먼저 듣는 겁니다.

많은 이들이 기도한다고 하면서 혼자만 지껄입니다.

하느님께서 말할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기도의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우리 가족, 우리 공동체에 주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듣는 것이 기도입니다.

듣지 않으면 주님이 누군지 모릅니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우리 주님이시라고 어느 누가 고백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듣는 것은 하느님과 우리를 연결시키는 유일한 수단이며, 그것이 곧 기도입니다.

왜?

내가 몸담고 있는 종교가 자연종교가 아니라 계시종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느님 쪽에서 늘 먼저 말을 건네신 종교입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대화하고자 노력하신 종교입니다.

하느님께서 길 잃은 우리를 찾아 나서신 종교입니다.

기도는 먼저 말을 건네 오시는 주님께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겸손하게 먼저 듣는 겁니다.

기도한다 하면서 자기 말만 하고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 찾아오는 것은 근심, 걱정 밖에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기도한다고 하지만 걱정만 하다가 세월 다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마치 그것은 입으로는 회개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후회만 하다가 끝나는 것과 똑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고 하지만 정말 참다운 얼마나 했는가?

내가 하느님 앞에 한 시간 동안 기도 봉헌했다고 자기 기억 속에 기록이 될지 모르지만 걱정이 99프로,

어떤 때는 아예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조차도 않은 때도 있습니다.

 

많은 교우들이 면담을 청합니다.

‘신부님, 몇 분 동안 저한테 시간을 내 주실 수 있으십니까?’

‘한 40분 정도 시간을 내 드리겠습니다.

핵심을 잘 얘기해 주셔야 들으면서 기도 중에 분별하면서 답을 드릴 겁니다.’

횡설수설 합니다.

뭔 얘긴지 못 알아듣습니다.

한 얘기 또 하고. 시계를 보니까 내가 해야 될 시간까지 다 합니다.

‘아이고, 신부님 40분이 다 됐네요. 속이 다 시원하네. 신부님 저 갈게요.’

손 흔들고 가는 그 자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지금 여기 왜 앉아 있을까?

 

인간끼리의 면담은 말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인내를 갖고 들어주고 그리고 교통정리를 잘 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과의 대화는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겁니다.

우리들은 기도할 때 머리 속에 할 말을 미리 기억합니다.

누구를 위한 기도, 돈 걱정 또 뭔 걱정, 쭉 시나리오를 써 가지고 와서 읽듯이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은 여러분들이 달라고 청하기도 전에 무엇을 줄지 알고 계십니다.

두드리기 전에 먼저 문 열어줄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미주알고주알 떠들지 않아도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 앞에 무릎 꿇을 때는 먼저 들어야 됩니다.

다 알고 계신 것을 왜 자꾸 설명을 합니까?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세고 계신 분이요,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알고 계신 그분 앞에서 뭔 설명이 그렇게 복잡합니까?

왜 하느님 앞에서 걱정거리만 늘어놓고만 갑니까?

그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개인 각자가 한 번은 받아야 되는 사심판 때 절대적인 하느님과 나 사이의 끈입니다.

또 세상 종말인 공심판 때도 평상시에 얼마나 깨어 기도하고

그 기도를 통하여 힘을 얻어 열매를 맺었느냐에 따라서 어느 쪽에 서는 가가 결정됩니다.

어느 쪽인지 그날 결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살아가고 있는 나의 삶으로 내 사심판과 공심판 때 내 삶이 결정된다는 것이죠.

 

며칠 전에 교우들과 식사를 하다가 어느 교우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어느 노부부가 살다가 할아버지가 위독해서 죽기 직전에 할머니한테 그랬대요.

‘너 나 죽고 난 다음에 딴 영감탱이 쳐다보면 내 관 뚜껑을 열고 나와서 가만히 안 놔둬.’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자마자 할머니는 신이 나 버렸어요.

경로당에 가서 평소에 마음에 들었던 할아버지와 눈이 맞아 꽃놀이도 다니고.

그것을 지켜보는 딸이 너무 불안했어요.

‘엄마,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엄마 바람피우면 관 뚜껑 열고 나온다고 그랬잖아.’

그랬더니 할머니가 ‘괜찮아, 관을 거꾸로 엎어 놨어. 아마 지금 흙만 긁고 있을 거야.’

 

그런데 이 얘기가 시간이 지나도 안 잊어져요.

지금도 흙을 긁고 있을까?

 

우리 나와야죠. 부활한 나자로처럼 나오너라!

여러분 떠날 때 관 뚜껑 거꾸로 땅을 향하여 묻히지 않도록.

그래서 부활할 때는 맑을 하늘을 보고 하느님의 자비스런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아멘.

 

♣2018년 12월 은총의 밤(12/01)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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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 (2018/12/20 11: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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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합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장미♡모바일에서 올림 (2018/12/20 17: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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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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