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겸손의덕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18-12-01 11:10:06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86)
첨부파일1 :   DSCN3043.jpg (347.4 KB)
    이 게시글이 좋아요(3) 싫어요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photo by - 느티나무 신부님

 

 

 

+ 찬미예수님

아까 참회예절 대신 성수를 축성하여 여러분에게 뿌렸습니다.

한 방울도 안 맞으신 분 있으세요?

얼굴과 살에만 떨어져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옷에 맞아도 되요.

왜 이런 말을 물어 봤냐 하면 성수를 치다 예전 군종신부 시절 생각이 났어요.

어떤 사건을 보고 일개대대가 영세를 받겠다고 했어요.

아마 군종 역사 이래 전무후무한 일이었죠.

연병장에 일개 대대를 모아놓고 천주교 4대 교리를 설명하고 세례를 주었어요.

세례 예식 중 한 사람씩 이마에 물을 붓는 예절은 너무 많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성수를 뿌리듯 성수채에 세례수를 담아서 뿌리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본인들 세례명 말하세요.’ 하면서 연병장을 돌았습니다.

그 날 돼지 10마리를 잡아 대대에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잔치 후 지프차를 나오는데, 한 병사가 막 뛰어나오더니 저를 가로 막았어요.

그러면서, ‘신부님, 저는 물 한 방울도 안 튀었어요. 세례 받은 것 같지 않습니다.’

어떡합니까? 본인이 세례 받은 것 같지 않다는데.

위병소의 누런 양동이에 가득 물을 축성하여 다시 세례를 주었습니다.

정말 확실하게 세례를 주었지요.

그 아이 제대 후 다니던 대학 마치고 신학교에 가서 지금은 서울교구 신부로 삽니다.

오늘 성수를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찝찝하신 분들은 말씀하세요.

제가 다시 확실히 성수 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좀 생뚱맞은 이야기할게요.

조폭과 우리 자매님들과 비슷한 점이 몇 개 있어요.

첫째 조폭들도 형님~그러고 자매님들도 형님~ 그래요.

둘째 조폭도 떼로 몰려다니고 성당자매들도 떼로 몰려다녀요.

마지막으로 조폭은 몸에 문신을 하고 자매님들도 눈썹문신을 해요,

그것도 같은 장소에서 해서 모양이 다 같아요.

 

또 조폭과 사제단과도 비슷한 점이 있어요.

첫째 조폭도 사제도 까만 양복입어요.

둘째 조폭은 식당가면 돈 안내고 나오고 신부도 신자들과 가면 돈을 안내고 나와요.

그래도 저는 10번에 2번은 내요.

마지막은 조폭들도 피를 봐야하고, 사제들도 미사 때 피를 봐야 해요.

 

여러분들, 빗물은 낮은데서 높은 곳으로 갑니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갑니까?

만고의 진리죠? 빗물이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적 없어요.

산 위에 떨어진 빗물이 산위의 작은 물고랑을 따라 밑으로 내려옵니다.

또 꼭대기에서 흐르는 물일수록 물소리가 요란하게 빨리 흘러요.

주변의 흙을 깎아먹고 돌도 마구 깨뜨립니다.

이러면서 점점 넓은 물길을 따라 내려가며 점점 속도도 느려집니다.

요란하지 않고 평화스럽게 흘러갑니다.

드디어 바다에 가면 해님이 그 물을 하늘로 불러올립니다.

그리고 그 물은 구름으로 바뀝니다.

 

우리가 겸손해지는 과정도 이와 같습니다.

교만한 자는 일단 시끄럽고 요란하고 주변의 평화와 기쁨을 늘 깹니다.

그 사람이 한 번 스쳐 지나가면 다 피를 흘려요. 상처를 받지요.

온 몸에 가시가 숭숭 나있다보니, 그 가시에 주위사람은 찔려 피를 흘리죠.

 

오늘 예수님이 안식일에 바리사이파 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윗자리를 서로 차지하려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어요.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겸손’입니다.

 

겸손의 반대는 교만입니다.

교만을 영성신학에서는 자신을 우상화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자신을 하느님보다 더 윗자리에 놓습니다.

 

저는 신학교 10년, 신부생활 35년 하느님을 향해 살았지만 제일 힘든 것이 겸손이에요.

저는 교만할 수 있는 재료가 많죠. 즉, 하느님에게 받은 달란트가 많아요.

신부이기에 못 쓰는 것도 많지요.

하느님에게서 받은 달란트가 많기에 저는 겸손하게 살기가 더더욱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료사제나 신자들 중 겸손한 사람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어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임종할 때 제자들이 물었어요.

스승님, 우리가 지켜야할 첫 번째 덕목을 무엇입니까? 겸손이다.

두 번째 덕은요? 겸손이다.

세 번째는요? 그것도 겸손이다.

이렇게 겸손한 것은 어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겸손하게 살 수 있습니까?

겸손은 자기비하가 아닙니다.

머리 숙이고 다니면, 목소리 나긋나긋하게 하면 겸손인가요? 아니죠?

입만 열면 거룩한 말만 한다고 겸손한 사람일까요?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 뱃속, 사람들은 모르지만 하느님은 아세요.

겸손은 외적인 것, 지성과 의지를 가지고 본인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 gracia(은총)입니다.

봉헌의 결과와, 희생의 결과를 보시고 거기에 대한 상으로 주시는 것이 겸손입니다.

 

영성은 자전거처럼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갑니다.

두 개의 바퀴로 영성을 굴러가고 두 바퀴가 영성의 축이 됩니다.

그런데 교만한 자들은 외발자전거를 타려고해요.

첫 바퀴는 자기에 대한 관상이고, 두 번째 바퀴는 하느님에 대한 관상입니다.

이 두 바퀴가 나사로 잘 조여졌을 때 그 자전거가 잘 굴러갑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 바퀴인 자기 관상은 하지 않고 하느님 관상만 하려해요.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 건방져요.

저녁기도도 안하면서 향심기도, 이냐시오 영성, 세미나는 다 찾아다닙니다.

관상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관상은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첫 바퀴인 자기에 대한 관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성찰과 회개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성찰과 회개는 잠자기 전에 집중적으로 하게 됩니다.

기도서에 나오는 저녁기도 입으로 중얼거리면 몇 분 안 걸립니다.

거기에 나오는 내용, 오늘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 성찰하고 묵상해야합니다.

생각(머리)과 소리(말)이 따로 노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자기에 대한 성찰에는 만과(저녁기도)가 중요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성찰하고 회개하면 찾아오는 것이 무엇일까요?

거룩한 비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냥 비참함이 아니라 거룩한 비참함을 깨닫고 ‘주님,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할 때

그 때 내리는 것이 ‘겸손’이라는 은총입니다.

이렇게 철저한 자기 성찰과 회개를 통하여 주님 앞에 거룩한 비참함을 깨닫고,

성전에 못 들어가고 문 앞에서 기도한 세리의 기도가 내 입에서 진정으로 나올 때,

그 소리를 듣고 주님이 주시는 선물이 겸손입니다.

이렇게 겸손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을 정화의 단계라고 합니다.

 

두 번째 바퀴는 하느님에 대한 관상이라고 했습니다.

자기에 대한 관상을 철저히 하다보면 하느님에 대한 관상으로 넘어가있게 됩니다.

두 관상을 나뉘어져있는 것이 아니고, 다음 단계에 들어가면 희망의 덕이 생깁니다.

다시 말하면 기쁨의 삶, 조명의 단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조명의 단계란 말 그대로 비추는 것, 자기 영혼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 단계가 되면 환경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천국의 마음으로 있다 누군가의 한마디에 지옥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즉, 사람, 환경, 유한한 몸뚱이에 휘둘리지 않는 상태가 조명의 단계요, 하느님의 관상의 단계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시건방지다보면 자기에 대한 관상은 전혀 하지 않고

남들 하니 고차원적으로 하느님에 대한 관상으로만 넘어가려합니다.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관상을 가르치는 여러 프로그램과 피정, 좋습니다.

하지만, 저녁기도부터 하십시오.

 

겸손을 파는 마트가 있다면 저도는 옛날에 성인되었을 겁니다.

45년간 도를 닦았으면 뭐라도 이루어야지요.

하지만, 여전히 교만과 싸우고 있습니다.

겸손해졌다 싶다가 교만의 괴물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보면 실망스럽습니다.

하지만, 저도 쓰러지지 않고 교만과 싸울 테니, 여러분도 용기를 내십시오.

숨 끊어질 때까지 싸워야 해요.

 

저는 가끔 우스갯소리로 말하지만, 제 앞에 교만한 인간이 나타나면 하나도 겁 안나요.

누가 더 교만한가 어디 싸워보자!

하지만 겸손한 사람 앞에서 꼬리를 딱 내려요.

그리고 관찰을 해보면 쇼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겸손의 향기가 풍겨요.

 

다시 한 번 정리해드립니다.

영성을 두 개의 축으로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관상과 하느님에 대한 관상 두 개의 바퀴가 굴러가야합니다.

외발자전거는 위험합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관상에만 머무르고 하느님 쪽으로 못갑니다.

반면에 어떤 이는 자신에 대한 관상은 없고, 하느님에 대한 관상을 합니다.

타이어의 앞뒤 압력이 맞아야하듯 영성도 균형 감각이 맞아야합니다.

우리들은 성찰과 회개를 통해 자신을 먼저 관상해야합니다.

성찰과 회개를 위해 가장 중요한 기도는 저녁기도입니다.

마귀는 이것을 알기에 집집마다 저녁기도를 다 끊어놓았습니다.

예전에는 우리 교우 집이면 고상 밑에 온 가족이 촛불 켜놓고 만과 드려야만 잤어요.

하지만, 요즘은 다 바빠요.

이태리제 예수님은 혼자 거실에 매달려 계십니다.

고상 많이 걸려있다고 성가정 아니지요?

마귀는 기도해야만 거룩해지고, 기도해야만 성찰하고 회개하고 나중에 겸손까지 받는

그 단계를 알기에 집집마다 기도를 못하게 막습니다.

한 성당마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저녁만과를 바치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요?

거의 없어요.

집에 오면 애들은 애들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각자 방에 문 닫고 들어가요.

자기에 대한 관상의 줄기가 무너지면 우리는 절대 겸손의 덕을 얻을 수 없어요.

 

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다른 어느 때보다 자신을 성찰해야 할 때입니다.

떨어지는 낙엽과 빨간 단풍을 보고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돌아보아야합니다.

2018년도 얼마 남지 않았고, 곧 대림입니다.

1년을 되돌아보니 예수님 닮는다고 하고 닮은 것은 없소고 속에는 쓰레기만 있구나!

 

오늘 꼭 약속하세요.

아무리 술을 먹고, 혹은 피곤하다해도 잠자기 전에 꼭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합시다.

촛불 켜고 졸더라도 기도합시다.

‘예수님, 오늘 허물로 물들어 놓은 하루, 주님의 빛으로 빛을 밝히오리라.

주님, 오늘 저의 이 모자란 하루에 축복을 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령성월은 죽은 자들의 성월이 아니라 산 자의 성월입니다.

우리 모두 시한부인생임을 깨닫고 위령성월을 맞아 더욱 겸손하게 살도록 애씁시다.

 

아멘

 

♣2018년 11월 은총의 밤(11/03)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구글+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싸이월드에서 공유하기

장미♡모바일에서 올림 (2018/12/01 13:46:02)
 이 댓글이 좋아요 싫어요
아멘
감사합니다
  
백발 (2018/12/03 10:22:56)
 이 댓글이 좋아요 싫어요
아     멘, 신부님, 강론말씀감사합니다, ~~~
  

   
  댓글 쓰기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이전 글 글쓰기  목록보기 다음 글

본 게시물에 대한 . . . [   불량글 신고 및 관리자 조치 요청   |   저작권자의 조치요청   ]
마리아사랑넷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메일추출방지정책 | 사용안내 | FAQ | 질문과 답변 | 관리자 연락 | 이메일 연락
Copyright (c) 2000~2018 mariasarang.net , All rights reserved.
가톨릭 가족공간 - 마리아사랑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