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18-10-06 22:57:28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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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 느티신부님
               

 

+ 찬미예수님!

강화도에 가면 전등사라고하는 유명한 절이 하나 있어요.

한 20여 년 전에 사진 찍으러 전등사를 찾아가서 대웅전에 갔습니다.

기와의 지붕 색깔이 햇빛을 받는 시간에 따라서 작품들이 아름답게 나옵니다.

그런데 다 찍고 내려가다 멈춰서 카메라를 내려놓고 ‘저게 뭐야?’ 했던 적이 있어요.

뭘 보고 내가 그렇게 넋을 잃었었느냐?

여러분 추녀 알죠? 보통 추녀 밑에는 큰 통나무 기둥이 지붕을 받들고 있죠.

그런데 기둥 위쪽 맨 끝에, 지붕이 닿는 부분에 뭔가 조각이 되어 있었어요.

망원렌즈로 줌을 당겨보니 고통스런 얼굴로 양손으로 지붕을 떠받치는 여인형상이었어요.

마침 지나가는 주지스님이 있기래, 신부라고 하면서 차 한 잔 달라고 해 먹으면서,

“스님, 오늘 사진 찍다보니까 대웅전 떠받치고 있는 기둥 위에 지붕을 무겁게 떠받치고 있는

한 여인의 고통스러운 나무 형상 조각이 되어 있는데, 무슨 뜻이 있습니까?” 물었죠.

 

옛날에 이 전등사를 지을 때 유명한 대목(大木)이 왔는데 돈이 많았대요.

그 전등사 밑 동네에 아가씨가 있었는데. 집 짓는데 구경하다가 둘이 정분이 났어요.

아가씨가 목수를 사랑한다하니, 이 목수는 상처한지도 꽤 되었기에 결혼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한 1년도 안 살았는데, 그 꽉 찼던 돈이 일원 한 푼도 없이 다 사라진 것에요.

누가 갖고 튄 겁니까? 그 여자죠.

그 여자를 찾아서 방방곡곡으로 넋이 나간채로 돌아다녔대요.

찾으면 용서해 주려했지만 못 찾고. 그것이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겠죠.

‘이 여자가 돈 때문에 나와 결혼한 것이구나! 절 무너질 때까지 지붕을 받치고 살아라.’

돈 갖고 도망친 자기 부인을 저주하며 형상을 기둥 위에 새겨서 지붕을 떠받치게 합니다.

 

저는 스님의 그 설명을 들으면서 오싹했습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 하는데, 남자는 서리가 아니라 폭설구나.

나도 입으로는 하느님을 사랑한다하지만, 사는 모습을 보면 하느님으로부터 도망칠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전등사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바로 내 모습 같았어요.

하느님 사랑한다고 말만 했지, 사실 하느님 무시하고 무관심하고, 저 끝자리에 놓고,

주일에만, 그리고 급할 때, 병 들었을 때, 절벽 끝에 몰렸을 때, 그때만 하느님 찾죠.

그렇게 살 때가 많았어요. 헛맹세 하고 살 때가 많았다 이겁니다.

 

하느님의 법은 사랑의 법입니다. 한마디로 신바람 나는 법입니다.

우리를 해방시키는 법이요, 치유의 법입니다. .

우리는 그 사랑의 법을 지키겠다고 세례 때 맹세했습니다.

마귀를 끊어버리고, 우상숭배 하지 않고,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살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들은 이 사랑의 법을 이용해서 자신의 권위를 높였고,

반대로 백성들의 삶은 너무너무 엄하게 규정함으로써 백성들은 늘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았습니다.

법은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법의 존재 이유는 하느님과 사람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대로 율법학자들은 청결문제, 음식 먹을 때 문제, 손 씻는 예식,

가려먹는 것 등등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지요.

그리고 그것을 하느님의 가르침이라고 거짓말을 했어요.

오늘 복음에도 나갔다 돌아오면 손 씻은 후 음식을 먹어야 된다고 그랬죠?

간단히 나왔지만, 사실 율법에 보면 그렇게 간단하게 씻는 게 아니에요.

언젠가 평일 미사 때도 얘기했지만 큰 조개껍데기에 가득 찰 정도로 물을 손등을 밑으로 내려서 위에서 세 번

흘려서 흐르게 하고 또 다른 손에도 똑같이 한 다음에 손등을 맞대고 오른쪽으로 세 번, 왼쪽으로 세 번 비벼요.

그렇게 끝나는 게 아니에요.

이번에는 손바닥을 펴서 조개껍데기 가득 찰 정도의 물을 위에서 밑으로 흘려보내고 오른손도 마찬가지로

흘려보내고 다시 손을 모아 오른쪽으로 세 번, 왼쪽으로 세 번 문지르죠.

이 밥 한 끼 먹는데도 복잡한 법이 그렇게 많았던 겁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당시의 대부분 유대인들은 못 지키고 살았어요.

그러곤 할 일없어 율법을 지키는 자기는 의인이라 생각했고 백성은 죄인이라 생각했죠.

 

오늘 묻지 않습니까?

‘다 그렇게 살아가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안 지키고 살아갑니까?’

예수님을 열 받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

우리들은 열 받을 때 침만 튀지만. 예수님은 열 받을 때에는 명언이 나와요.

오늘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있구나.’

 

율법주의적인 모습은 구약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신약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율법주의적인 모습, 구약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김 신부에게도 율법적인 모습이 분명 있습니다.

제 자신을 봐도 그것 버리면 조금 더 좋은 신부 될 텐데 하는 것이 있어요.

자식이 볼 때 부모에게도 그런 모습 있습니다.

학생들이 볼 때 선생님의 율법적인 모습 보일 겁니다.

사제들이 볼 때도 주교님한테 그런 모습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외 없이 그런 모습을 갖고 삽니다.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법을 갖고 눈금도 안 맞는 잣대로 저울질하고 해부합니다.

‘내 잣대가 세상과 우리 집안의 중심이요, 우리 공동체에서 내 잣대와 판단이 제일 정확해.’

결국에 남는 것은 상처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들은 자라났던 환경, 유전적 요소, 개성이 다릅니다.

이런 것으로 인하여 자기주관적인 법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엉성한 법은 성령의 불로 태워버리고 예수님의 잣대로 만들어야 됩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바로 이겁니다.

주관적이고 편협한 법을 하느님이 알려준 사랑의 법으로 바꾸어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은 먼저 죽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교만을 줄일 줄 알아야 되고, 썩는 법을 배워야 됩니다.

남편 밑으로, 시어머니 밑으로, 며느리 밑으로 들어갈 줄 알아야 됩니다.

사제들은 교우들의 밑으로 내려가야 됩니다. 위에 군림하는 게 사제는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어느 냉담자가 죽어서 당연히 지옥에 갔는데 뜻밖의 친한 친구를 만납니다.

그 친구는 자타가 공인하는 열심한 신자였고 본당 총회장까지 했던 사람이었죠.

‘나는 내가 살아온 꼴이 당연히 지옥이지만 너가 어떻게 지옥에 올 수 있니?’ 하니,

그 친구가 ‘조용히 해. 옆방에 본당 신부님 와 계셔.’

 

율법적인 신부로 살 때, 구약의 마인드로 살 때, 우리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신부가 신부답게 살지 못할 때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수녀가 수녀답지 살지 못할 때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형식화되고 영과 육은 다 굳어질 대로 굳어지고 사제의 얼굴에서 기쁨을 찾을 수 없고, 수도자의 얼굴에서

기쁨을 찾을 수 없을 때 아마 천국에 가서 하느님계신 펜션의 지붕을 떠받들고 살아야 되지 않을까?

세례를 받아 구원을 받았지만 그 구원의 은혜를 잃을수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세례 받은 것 자체가 천국을 보장해준다는 것은 아닙니다.

 

야고보서 1장 22절에 그 유명한 말씀으로 오늘 2독서는 끝납니다.

‘그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입으로만 하느님 사랑하고, 귀로만 온갖 좋은 것 듣는다고 천국 가는 게 아닙니다.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피정 하루 종일 듣고 하루 종일 들은 것 다 열매 맺고 못 삽니다.

그러나 피정 하루 종일 듣고 ‘저것 하나만큼은 꼭 열매를 맺어야겠다.’ 결심하십시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전화 안 하고 살던 친구한테 안부 전화하는 것, 그것도 열매에요.

열매를 무슨 거창한 것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살인범 용서하는 것만 열매가 아니에요.

작은 것 하나라도 열매 맺을 게 너무너무 많아요.

 

세례 때 한눈 안 팔고 주님만 바라보겠다고 약속하고, 점집과 철학관을 기웃거립니다.

그 목수는 돈 없어진 것이 슬픈 것이 아니었죠.

정말 사랑하고 모든 것을 다 준 가슴에 대못을 박은 배신감이 힘들었을 겁니다.

 아마  우리가 그렇게 살아도 예수님은 끝까지 기다리실 것에요.

밀과 가라지가 같은 밭에 있어도 추수 때까지 뽑지 않는다고 그러셨죠?

왜? 가라지는 죽을 때까지 세상 영원히 가라지로 존재하겠지만, 우리들에게는 희망이 있죠.

우리가 지금은 가라지로 살아도 회개하면 성인이 되리라는 믿음을 하느님이 갖고 계시죠.

우리들이 지은 죄에 그 자리에서 벌을 받는다면 우리 몰골이 아주 별날 것에요.

다른 사람 험담할 때마다 이빨을 하나씩 뽑는다면 우리 모두는 아마 틀니 끼고 살 것에요.

주일 미사 빠질 때마다 발가락을 부러뜨리신다면 아마 발가락은 다 부러져 있을 것에요.

 내가 지은 죄 바로 심판받지 않는다하여 하느님께서 우리를 못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네 입으로 헛맹세를 수십 번 하고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산다고 해도 나는 너에게 희망을 가져.

너도 언젠가는 나를 기쁘게 해 줄 거야.’

 

유명한 영성대가인 루이 에블리라는 분이 쓴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 책이 있어요.

그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느님이 사람에게 빕니다.

‘제발 그러면 안 돼.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니? 그 길로 가면 안 되잖아.’

저는 신학생 때 그 책을 읽고 하느님 사랑을 느끼며 정말 많이 울었어요.

‘내가 험한 길로 빠질까봐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고 계시구나! 정말 잘 살아야 되겠다.

 정말 올곧은 신학생으로 살아야지.

사제가 되더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훗날 ’죽을힘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여 살다가 왔습니다. 주님.‘

이런 말을 해야 되겠구나.’

 

열매 맺는 삶!

하느님이 우리 앞에 무릎 꿇게 할 수는 없지요? 우리가 무릎 꿇어야죠.

‘제발 그러지 말아라.’하며 우리에게 무릎 꿇고 비는 하느님을 생각하십시오.

험한 길로 가고, 헛맹세 하고, 우상에 빠지려고 하고, 죄에 빠지려고 할 때 마다

무릎 꿇고 내 옷자락을 잡고 매달리시는 하느님을 느끼시고

그분의 모습을 그리면서 거룩한 길로 가도록 애를 씁시다.

 

아멘

 

 

 

♣2018년 연중 제 22주일 (9/2)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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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모바일에서 올림 (2018/10/07 19: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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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백발 (2018/10/08 08:5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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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합니다,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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