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18-09-21 21:13:51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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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분도작가님

 

+찬미예수님!

여러분들 이천 년 동안 성화 가운데서 제일 많이 그려진 그림이 뭔 줄 아세요?

십자가. 화가는 중세시대부터 십자가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그렸죠.

두 번째로 많이 그린 성화는 성모님 얼굴이에요.

 

또, 가장 널리 퍼져있는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두 가지 때문에 유명해요.

첫 번째, 처음으로 원근법을 썼어요.

두 번째로 유명한 이유를 아세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열한 제자를 그려넣고 두 사람, 예수님과 유다스만 그리면 돼요.

그래서 예수님의 모델을 할 사람을 모았어요.

수백 명이 왔어요. 그 중 한 사람이 다빈치 화가의 마음에 딱 들었어요.

그 사람을 모델로 예수님의 얼굴을 인자하고 또 한편으로는 최후의 만찬이 끝나고 나면

십자가의 길을 가셔야 되는 비통한 그런 예수님의 얼굴을 그려냈어요.

자, 그러고 나서 누가 남았어요? 유다스!

그런데 아무리 찢고 다시 그려도 마음에 드는 유다스의 얼굴이 안 나오는 것에요.

돈에 스승을 팔아먹은 간교하고 자기중심으로 살다가 자살한

이 유다스의 얼굴 표정을 어떻게 그려낼까 하다가 몇 년이 지났어요.

그러다 우연히 교도소 철장 안의 수인들의 얼굴을 보는데, 한 사람이 딱 눈에 들어옵니다.

‘저 놈이 얼굴이 바로 유다스 얼굴이다!’

교도소 소장한테 그 사람 얼굴을 스케치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그림을 그립니다..

한 달 후 그 그림이 끝나갈 무렵 죄수가 자기를 모르겠냐고 물어요.

‘나는 전에 널 본 적이 없는데?’ 하고 대답하니,

죄수가 ‘잘 생각해 보세요. 4년 전에도 저는 선생님의 모델이 됐어요.’

 

자, 이제 짐작이 되시죠?

유다스의 얼굴을 가진 사람은 4년 전에 예수의 모델을 했었데요.

그때 받은 돈으로 흥청망청 살다가 살인과 절도죄로 교도소에 오고, 와서도 악만 남은 거죠.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깜짝 놀란 것어요.

왜 아우라(aura)가 비춰지는 인자하고 온유한 예수님의 얼굴이 4년 만에 이렇게 변했을까?

최후의 만찬 그림이 유명한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과 유다의 모델이 동일인이기 때문이래요.

 

예수님의 얼굴을 했을 때는 삶 자체는 아름다웠다고 그래요.

그러다가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면서, 죄를 짓기 시작하면 뭐가 제일 먼저 변해요?

제일 먼저 얼굴, 그중에서 눈이 바뀌어요.

한이 맺혀 있는 사람의 눈은 보면 표시가 나요.

예수님의 눈을 갖고 있다가 죄에 빠지니까 그 간교한 유다스의 눈으로 바뀌는 것이에요.

얼굴 전체가 다 일그러지고 찌그러지고요.

 

어쩌면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천국에서 살다가 갑자기 지옥에서 살고, 또 웃고 있다 누군가의 염장 지르는

 말에 마귀가 한 마리 들어가 앉아있나 할 정도로 순식간에 예수님의 얼굴에서 유다스 얼굴로 바뀌어요.

그렇게 안 바뀌게 하는 것을 인격이라고 그래요.

인격이 없는 사람은 손바닥 뒤집듯이, 깔깔대다가 언제 뒤집어질지 몰라서 무서워요.

우리 인간은 말 뒤에는 본심을 감출 수 있어요,

그런데 충격이 올 때는 말 뒤에 숨어있던 본심과 행동이 같이 나오죠.

 

지킬박사와 하이드(Dr. Jekyll and Mr. Hyde)라고 하는 소설이 있어요.

낮에는 인술을 펴는 의사로 신망을 받고 있는 이 지킬 박사는 밤만 되면 괴물로 바뀌어요.

온갖 못된 짓을 하는 하이드라는 사람으로 바뀐다는 뜻이죠.

어찌 보면 최후의 만찬 그림에서 예수님과 유다스의 모델이 같고,

극과 극을 살아가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예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이중성을 얘기하는 것일 겁니다.

심리학자는 이러한 인간의 이중성을 본능과 초자아라고 합니다.

또 어떤 성인은 천사와 동물의 중간적인 존재이다 보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여하튼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항상 다툽니다, 싸웁니다.

 

사도 바오로는 두 가지 면을 육과 영으로 구분하면서

육체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그 육체가 썩으면 같이 멸망할 것이고,

영에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은 영원한 삶을 살 것이라 하면서

육에 따른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이 되자고 오늘 2독서에서 강조하십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너그럽고 자비롭게 사람들을 대하십시오.’

 

빵의 기적을 보고 유대인들은 한마디로 환장했습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쫓아다니며 더 큰 기적, 더 자극적이고 짜릿한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지난주에 그런 사람들을 제가 뭐라고 얘기했죠?

기적중독자들. 다른 말로 은총을 못 느끼는 은총의 불감증 환자들이라고 얘기했어요.

그 어마어마한 기적을 보고난 다음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겁니다.

아마 유대인이 말한 가장 큰 기적은 로마군들 다 죽이고 당신이 왕이 되는 것이었을 겁니다.

 

유대인들은 육체의 길을 따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더 편하고 안락한 생활에만 집착해서 더 많은 기적을 요구하는

기적중독증 환자로 자기도 모르게 변해있었어요.

그저 이미 와 있는 은총은 발견 못 하고. 은총만 달라고 합니다.

빵을 주신 분은 쳐다보지 않고 빵에만 집착하는 은총의 불감증 환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기적을 주시는 분이 누구인가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이런 기적이 왜 우리들 앞에 일어나는 가는 유대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영의 사람은 기적 뒤에 숨어 있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아침에 눈이 떠지는 것도 기적이요, 이 시간에 미사 드리는 것도 기적이요,

내가 내 이름으로 그 거룩한 성체를 영할 수 있는 것도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얘기하셨죠.

‘내가 기적을 통해서 준 이 빵은 잠시 배고픔을 달래뿐이지만 영원한 빵은 아니다.

내가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

그러나 육신의 빵만 쫓아다니는 그들에게 이 말뜻이 전해질 리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조차도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 누가 알아들을 수 있어?’하며 수군수군합니다.

‘아 지금 급한 것은 기적을 빨리 보이는 건데, 왜 엉뚱한 얘기를 하실까?’

인간은 자기의 지식이나 재주를 가지고는 결코 하느님의 일을 알아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성체성사의 신비에 참여합니다.

제가 언젠가 기적과 신비의 차이를 말씀드렸죠?

성체를 영하기 전에 사제가 ‘신앙의 신비’라 하지 ‘신앙의 기적이요’라고 하지 않아요.

기적보다 훨씬 위의 것이 신비입니다.

기적은 성당 안 다니는 세상 사람들도 그 사람 앞에서 기적이 일어나면 믿어요.

그러나 신비는 신앙이 있어야만 믿는 겁니다.

‘암환자가 암이 나았다’, ‘다리가 짧았던 사람이 다리가 똑같아졌다.’ 기적이죠.

기적은 일어나기 전과 후가 눈으로, 과학적으로, 수학적으로 검증이 되요.

하지만 신비는 전과 후가 똑같아요.

축성되기 전에도 그냥 밀가루이고, 성체성사가 일어난 뒤에도 똑같이 밀가루에요.

그렇지만 이 안에 예수님이 들어가 계세요.

다르죠, 하지만 검증이 안 돼요.

현미경으로 봐도 밀가루 조직일 것에요.

그래서 기적보다 훨씬 신앙이 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신비에요.

세상 사람들은 기적을 요구하지만 우리는 신비 안에 살아요.

 

1608년 5월 24일. 스위스 국경에서 가까운 프랑스 파메르니 대수도원(Faverny Abbey)에서

성령강림절을 맞이해서 3일 동안 제대 위에 성체를 현시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대위의 촛불이 제대포에 붙어 순식간에 성체가 모셔져 있는 성광 쪽으로 번졌어요.

그 때 상상도 못할 일이 생겼어요.

불길을 피해 성체를 담고 있는 성광이 공중에 33시간 동안 떠 있었대요.

만 명 이상이 그 광경을 보고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통회하였대요.

그 때가 칼빈파와 루터파들이 스위스에서 천주교 신자들을 강제로 끌어드리던 시기였어요.

칼빈파와 루터파는 성체를 근본적으로 부정을 했습니다.

혼란한 시기였지요.

성체가 공중에 떠있는 것을 많은 루터파 신자들이 보고 회개하고 다시 천주교로 돌아왔죠.

33시간 후 까맣게 탄 제단 위에 하얀 성체포를 펴놓으니 성광은 내려와 성체포에 멈춥니다.

 

가톨릭 이천 년 동안 성체에 대한 모독이라든지 교우들의 성체에 대한 신심이 약해질 때마다

하느님은 성체에 대한 신비와 기적을 보여주셨어요.

이천 년 전, 천육백 년 전 그 수도원에 있었던 그 성광 안에 바로 들어있던

그 성체를 잠시 후에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혀로 영하실 것에요. 맞죠?

성체를 영하는 순간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현시하는 또 하나의 성광이 되고

움직이는 감실이 되고 열 달 동안 예수님을 모시고 살았던 또 하나의 성모 마리아가 되시는 것에요.

 

그 거룩한 몸에서 어찌 남을 험담하는 독설이 나올 수 있고, 어찌 죄 짓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죄가 우리를 유혹할 때마다, 악마가 우리를 자꾸 어둠으로 끌어드릴 때 마다,

‘나는 주님의 거룩한 성체를 모시고 있는 성광이요, 움직이는 감실이다’하고 본인에게 자꾸 강조하세요.

‘너는 그 죄에 떨어지면 안 돼. 너는 성체를 모시고 있는 감실이야.’

 

이천 년 전 유대인들은 빵의 기적을 보고 물질적인 빵만 원했지만,

예수님은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빵이 바로 나 자신이요 그게 바로 성체라고 얘기하십니다.

 

교회는 가나다, 이 세 해를 돌아가면서 복음을 바꿉니다.

나해 중에서 특히 요즘 시기 6주일 동안은 요한복음 6장 전체를 전부 봅니다.

요한복음 6장은 바로 성체성사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래서 지지난 주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왔고,

지난주에는 기적중독증에 빠져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도

또 다른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봤고,

오늘은 예수님께서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를 달라고 그래라.

빵을 주는 사람을 쳐다보아라.’ 라고 얘기하십니다.

 

오늘 거룩한 마음으로 사제와 신자들은 온 정성을 다하여 성체성혈을 축성하고

교우들은 지극한 정성으로 성체를 영할 때 바로 이 자리가 천국임을 믿습니다.

 

아멘.

 

♣2018년 연중 제19주일 (8/12)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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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모바일에서 올림 (2018/09/21 22: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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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정경화 이사도라 (2018/09/23 00: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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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백발 (2018/09/27 10: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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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신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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