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부활을 위한 묵상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17-04-15 23:00:56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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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티성지 - photo by - 느티나무 신부님

 

+ 찬미 예수님

 

내일이 벌써 사순 5주일이네요. 잘 살고 싶으세요?

한 달 전 3월 첫 토요일 은총의 밤에 무슨 강론 해드렸는지 기억나십니까?

사순절을 어떤 시기이다. 40일이 주는 의미와 단식에 대한 얘기였어요. 그렇게 사셨어요?

첫째,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나오는 40일의 의미를 통하여 사순절은 정화와 심판의 시기이다.

그러니 제발 이 사순절 동안만큼은 다른 사람 심판하지 말고, 처절하게 본인자신을 심판해라.

그래야만 우리가 정화될 수 있다.

둘째, 모세가 40주야를 시나이산 꼭대기에서 피눈물을 흘리면서 단식과 기도 끝에 십계명판을 받았듯이,

40일은 은총을 받기 위한 준비기간이다. 은총은 엉망진창으로 살아서 은총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은총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당연히 은총을 받을만하니 받은 것이라는 이 얘기를 했죠?

그러니 요번 사순절 동안 나름대로 희생할 것 뭔가를 찾아야 된다.

늘 입 때문에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면, 사순절 동안에 정말 침묵하려고 이를 갈아야 한다고요.

내 악습을 40일 동안 해결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아무튼 적은 은총도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세는 40일 동안 그 산꼭대기에서 준비 끝에 십계명이라는 보물을 받았던 거죠.

셋째, 예수님의 광야에서 40일 모습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사순절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시련과 유혹이 많이 올 것이다. 그러니 경계해야 된다.

은총이 풍부히 내리는 때인 것만큼 마귀들도 비상이 걸려서 우리 속을 뒤집어놓을 터이니, 정말 깨어서 대비해야 된다.

그러기 위한 방법으로 단식을 권해드린 적이 있었을 겁니다.

단식은 육신의 단식이 있고 영의 단식이 있다.

육신의 단식의 목표는 두 가지인데, 몸뚱이로부터의 자유로움과 그로 인하여 영적 분별력의 힘을 기르기

위함이다.

그리고 영의 단식은 눈떠서 잠잘 때까지 많은 기회가 올 터인데, 예를 들면 분노할 때 참는 것, 혀를 다스리는 것,

 기쁘게 순명하는 것, 정성을 다하여 올바른 기도를 바치는 것 등 많다고 했습니다.

 

이제 40일의 8부 능선을 넘어섰습니다.

지금까지 산 것이 부끄럽다하더라도 접어둡시다. 그리고 ‘사순절은 오늘부터 시작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남은 보름 동안만큼이라도 어떻게 살아야 되는 지를 도와드리는 의미에서 여러분에게 몇 가지 묵상거리를 드릴게요.

하나하나 묵상하신다면, 사순 5주 동안 엉망으로 살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부활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첫 번째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사순절의 묵상거리는 사탄의 역사입니다.

사탄의 유혹은 정말 집요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겁니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쫓아다녀요. 큰 마귀 놈 하나 때려눕혔다 생각하면 그보다 더 큰 놈이 앞에서 기다릴 때가 있어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와의 싸움을 물리쳤죠?

그런데 놀랍게도 루카복음 4장 13절에 보면 마귀가 뭐라고 그러고 떠났느냐, ‘다음 기회를 노리고 떠나갔다.’

메시아한테 깨지고 나서도 유혹한 것을 중단한 게 아니에요.

그 다음 기회가 어디였습니까?

첫 번째가 겟세마니 동산이었어요.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상상도 못할 고통 속에 있어야 될 그 예수님의 인성에다가 마귀는 속삭입니다.

‘피해! 네가 그 십자가 왜 지니? 도망쳐! 얼마나 고통스러운 줄 알아? 그 잔 못 먹겠다고 버텨?’

그래서 예수님도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다가 예수님은 정신이 바짝 났어요. 그 즉시 신성의 기도를 하십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순명은 기적이 일어나게 하고 마귀를 이깁니다.

자, 그러면 겟세마니 동산에서도 마귀는 졌지만, 그걸로 끝냈느냐? 안 끝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버림받은 느낌을 갖게 했어요.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타니’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째 해서 저를 이렇게 버리십니까?’

그 처절한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귀에 마귀는

‘꼴좋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너를 이렇게 내버려둘 것 같아? 너는 처절하게 버림받았어. 어디 버림받았다고 떠들어봐.‘

그 6시간 동안 구멍마다 피가 철철흘러나오고, 의식도 잃어가는 예수님의 귀에다 대고

‘너는 버림받았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마지막 정신을 모아서 인성의 외침을 신성의 외침으로 바꾸죠.

‘내 영혼을 바치나이다.’

 

이렇게 예수님에게도 집요했던 놈이거늘, 우리들은 한 번 피정하고 눈물 흘리고 성사 한 번 본다고 해서

그 놈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아니에요.

사탄은 숨이 끊어질 때까지 집요하게 덤벼요. 특별히 임종할 때, 몸이 병들었을 때 사탄의 장난은 아주 심합니다.

 

우리 신자들이 병들거나 임종이 가까워오면 받는 성사가 병자성사죠? 예전엔 종부성사라 부르고 죽기 전에만 받는 것으로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젊어도 수술을 하거나 몸이 몹시 허약할 때에는 병자성사를 청할 수 있어요.

꼭 죽기 전에만 받는 성사가 아니에요. 우리 신자들은 죽기 전에는 반드시 병자성사를 청해서 받아야 돼요.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임종 때 사제의 보살핌을 못 받고 죽는 사람들이 70%나 된대요. 그

래서 병자성사를 받고 죽는 것도 큰 은총이죠. 병자성사는 은총의 성사에요.

영과 육이 약해지면 마귀가 더 날뛰어요.

임종이 가까이 오면 정신도 혼미해지고 그럴 때 마귀가 예수님 십자가 위에 귀에다 대고 말했듯이,

‘꼴좋다. 너 올해 나이가 마흔둘 밖에 안 되잖아. 그렇게 성당에 열심히 다녔는데도 암으로 죽는데 하느님 믿느냐?

 죽으면 그 뿐이야. 너 이제껏 속고 살았어. 하느님이 어디 있고, 성모마리아가 어디 있어?’

‘죽기 전에 마음이 영원을 간다고 했어요.’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하느님을 거부하면 죽어서도 영원히 거부하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죽으면 죽어서도 영원히 찬미를 드린다’

고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그의 신학대전에서 얘기합니다.

그래서 마귀는 우리의 정신이 혼미하고 의지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귀에다 대고 속삭여요.

그럴 때 짠하고 신부님이 나타나서 이마와 양손에 기름을 바르면서 사탄이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마지막에 하느님을 향하여 떠나는 영혼을 지켜주는 게 바로 병자성사입니다.

 

많은 유혹이 있지만 지금 이 시대는 성적 유혹이 특히 강합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성적 유혹이 옵니다.

성적유혹이 올 때 적어도 대처하는 기준이 있어야 된다.

창세기 39장에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몸종으로 팔려가서 보디발의 아내와 치열한 싸움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그 안에 우리가 성적유혹을 당할 때 어떻게 떨쳐야 하는 지가 나오죠.

처음에 요셉이 들어왔을 때는 아이였죠.

그런데 커지면서 볼이 복숭아보다도 맑고 깨끗한, 그야말로 요즘 말로 하면 꽃미남이었죠. 다른 말로 얼짱.

이 보디발의 마누라가 침을 흘리길 시작해. 보디발은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내시였다고 그래요.

돈과 권력은 있지만 그 보디발의 부인은 성욕 때문에 살 길이 없었어.

그런데 애로만 봤던 요셉이 점점 커지면서 수놈 냄새를 풀고 다니네. ‘아 저를 어떻게 할까?’

그래서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유혹합니다. 유혹을 할 때 요셉이 섰던 영적 무기가 뭔지 압니까?

지극히 단순하지만 강한 힘이 있어. 딱 한 단어, ‘싫습니다.’

뭐 어마어마한 거랑 되는 줄 알았죠?

아오스딩 성인은 그런 말을 했어요.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나약함에 자기 자신을 내맡기기 때문에 죄를 짓는 거다.>

우리는 분명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싫든지 좋든지. ‘싫습니다.’ 하는 것은 단순한 얘기 같지만 성적 유혹을 이기는 강한 영적 무기입니다.

여러분들, 판사가 절도범한테 선고 내리기를 주중에 참고 주말에 훔치라고 하지 않죠?

알코올중독자에게 일주일에 한번만 먹고 참으라고 하지 않아요.

단호하게, 확실하게 술과 싸울 수 있는 표현을 해야 된다.

첫 번째 가지고도 통하지 않자 보디발의 아내는 더 적극적으로 덤빕니다.

그래서 요셉은 두 번째 영적 무기를 쓰는데 그건 뭐냐, 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유혹하는 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빠질 수밖에 없어요. 촛

불에다가 손이 가까이 가면 가까이 갈수록 데고,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데지를 않아요.

음란잡지를 보면서 나는 순결해, 나는 이것 봐도 아무 생각이 안 들어 하는 것은 정신병자에요.

유혹하는 대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두 번째 성적 유혹을 뿌리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집사였지만, 매일같이 주인마님을 만나야 할 처지였지만, 요셉은 다른 사람을 대선 들여보냅니다.

가능하면 주인마님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그래도 보디발의 아내는 미치겠는 거야. 나중에는 옷을 잡고 끌고 들어가죠.

요셉은 겉옷을 확 내던지고 도망을 칩니다. 성적 유혹을 이기는 세 번째 방법은 도망치는 거예요.

여러분들, 주님의 기도에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는 기도문이 있죠?

그 기도문은 유혹이 저 앞에 있을 때 하는 기도지, 내가 이미 유혹의 한 가운데 있을 때에는 그 기도를 해봐야 소용없어.

36계 줄행랑 쳐야 돼. 그냥 앞만 보고 도망쳐야 돼. 여기 서면 내가 죽는다는 심정으로.

이 세 가지를 완벽하게 했다 하더라도 네 번째가 안 되면 소용이 없어요.

네 번째 것이 뭐냐? 요셉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어요.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 다른 말로 경외심.

솔직히 우리가 몰라서 죄 짓습니까? 알면서 죄 짓죠.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 거룩한 두려움은 우리의 욕망을 잠재워요. 그리고 그 순간순간 마다 분별을 줘요.

 

여러분들! 성적 유혹을 정면으로 이긴다고요? 천만에요. 성적 유혹은 네버스톱 괴물이에요.

괴물을 우리는 못 이겨요. 그렇기 때문에 단호한 의지도 보여야 되고, 멀리도 해야 되고, 도망칠 때도 필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하느님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돼요. 지금 내가 달다고 삼키면 죽을 때까지 내 양심 힘들게

 지옥에서 살아야 된다고 하는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 마음은 성적 유혹으로부터 이기게 합니다.

 

자, 첫 번째 묵상은 사탄의 유혹은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집요하다.

그 중 많은 유혹 가운데서도 현대인이 제일 많이 넘어갈 수밖에 없는 유혹 하나가 성적 유혹이다.

성적 유혹을 어떻게 이겨야 하는가?

싫습니다, 멀리하는 것, 도망치는 것, 하느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

 

두 번째 묵상거리를 드리겠습니다. 유다스가 예수님께 지은 죄에 대한 원인이 뭘까?

유다스는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예수님을 팔은 것은 결과지 시작이 아니에요, 원인이 아니에요.

직책이 총무인 유다스는 끼니마다 부담스러웠어요.

그러던 어느 날 유혹이 들어와요. 네 선생을 넘겨주면 은전 30냥!

은전 30냥은 노예 한 사람을 사고파는 가격이요, 장정 열 둘이서 한 달을 먹을 수 있는 빵을 살 수 있는 값이에요.

 ‘그래, 이 분 내가 넘겨주는 척 해도 살아서 돌아오실 분이야.’

유다스의 죄의 원인은 예수님을 팔아넘길 때부터 자기중심적인 예수님을 만들었고,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나 같은 놈은 구원 못 받아!’ 구원 받는 것과 안 받는 것까지도 판단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겁니다.

 다락방에서 벌벌 떨고 있는 제자들과 성모님 앞으로 죽을 각오를 하고 찾아갔다고 하면,

다른 제자들이 몽둥이를 들고 죽이려고 해도 누가 막았겠습니까? 그렇죠.

성모님이 유다스를 끌어안고,

‘네 놈들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어. 예수 끌려갈 때 있었던 놈 누가 있어? 너희들이 뭐라고 얘한테 돌을 던져?’

아마 그랬다면 성유다가 됐겠죠?

 

유다스의 죄의 가장 큰 원인은 자기 위주의 예수님을 만들어 놓고 살았다는 겁니다.

우리는 사순절 동안 그 묵상해야 될 것 같아요.

‘나에게 예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가?’

힘들 때마다 힘든 것 해결해 주는 해결사인지,

길이 어딘지 모를 때 방향을 가르쳐주는 교통순경 같은 분이었는지.

아울러서 또 하나 하느님의 돈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야 된다.

성당에서 돈 관리하는 사람들, 정말 조심해야 됩니다.

피정시킨 후에 신자들의 영적 유익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않고 그날 강사 불러서 헌금이 얼마 들어왔는가에만 관심만 있다면 그건 유다스의 마음입니다.

교우들끼리 돈거래 하지 마십시오. 성경에 돈 빌려주려면 아예 받을 생각하지 말고 주라했어요.

 

세 번째 묵상거리는 예수님의 수난 당하실 때 성모님의 모습과 역할입니다.

여러분들 10여 년 전에 멜 깁슨이라고 하는 영화배우 겸 영화감독이 만든 ‘패션 어브 크라이스트(Passion of Christ)’ 영화 보셨죠?

그 때 제가 진천 본당신부였는데 한 2백 명 정도 신자들과 함께 청주 가서 봤어요. 그 때 참 많이들 울었죠.

지금도 기억나는 게 성모님의 모습이에요. 눈물 한 방울 안 흘리셨어요.

그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의 태형 받았던 그 자리를 흰 수건으로 닦으면서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으셨어요.

왜 성모님이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을까? 간단해요. 하느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까봐!

여러분들,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 아시죠.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갔더니, 빈 무덤이야. 엉엉 울어요. 누가 우리 주님 가지고 갔다고.

그런데 그 때 예수님은 뒤에 계셨죠.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못 본 이유는 자기중심적인 눈물이었고, 예수님과 등을 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 영화에서 성모님은 눈물 한 방울 안 흘리시는데,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고 계셨겠죠?

파스칼은 <성모님은 합일의 정열보다 분리의 정열이 강하신 분이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새끼를 품 안에 안으려고 하는 합일의 정열이 큽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자식으로부터 거리를 둬야 하는 분리의 정열이 필요합니다.

성모님은 늘 예수님과 거리를 두고 따라 다녔어요.

우리 엄마들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손으로 만져야만 되는 그러한 사랑이 아니라 성모님을 닮은 모습이 되어야 되는 것 아닌지.

‘내가 자식을 대하는 모습이 성모님이 예수님을 대하는 모습과 얼마나 차이가 날까?’는 묵상거리 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묵상거리는 예수님 수난의 고통의 현실성입니다.

우리들은 많은 경우에 추상적으로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합니다.

2012년도 미국판 다이제스트에 가톨릭 의사협회와 심리학자들이 모여 예수님의 고통을 의학적인 측면과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조명해 본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나와 있는 것을 발췌를 했는데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현대 의학자들은 예수님의 고통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겟세마니 동산의 기도 때부터 예수님의 고통은 시작됐다

고 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서는 지극한 고통 속에 피땀 흘리시며 기도하시는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

다. 피땀을 흘린다고 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정서적 상태가 극에 달했거나 극심한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에

게서 발생할 수 있는 혈한증으로 마치 바늘이 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수반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 흘리심은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라 사람이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히

면 실핏줄이 터져서 땀구멍으로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혈한증이라고 얘기 한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니 고통 바로 이어서 유다의 배반으로 태형과 함께 십자가의 형을 받는다. 당시 로마는 모든 형

을 집행하기 전에 죄수의 등에 채찍질을 가했는데, 이때 사용되는 채찍은 가죽 끈에 작은 공 모양의 철이나 날카

로운 양의 뼈를 붙여 놓는 것이다. 따라서 의학자들은 이미 태형을 통하여 깊은 타박상 또는 피하조직의 심한 손

상을 입고 살이 찢기는 극심한 고통, 출혈로 인한 쇼크 상태가 예수님께 왔었을 거라고 보고 있다. 태형에 이어서

 관행에 따라 양쪽 어깨에 십자가를 지고, 양팔이 묶인 채 처형장소롤 올라가는데 이때 횡목의 무게가 45키로에서

 57키로에 해당된다. 그리고 예수님의 손과 발목에 박았던 못의 길이는 18cm 지름은 1cm 정도의 끝이 날카로운

 큰 철대 못으로 예수님의 손바닥이 아니라 팔 뼈 끝부분과 손목 뼈 사이를 관통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왜냐하면 손바닥에 못을 박으면 그 몸무게 때문에 손바닥이 찢어져서 박을 수가 없다는 얘기죠

<예수님의 발은 겹쳐진 채 수직기둥에 정면으로 고정되었고, 발 중앙에 둘째와 셋째 뼈 사이에 꽂힌다. 이로 인해

 양손과 발의 주신경이 끊기는 고통, 즉, 손과 발이 마치 톱으로 잘리는 듯한 극심한 아픔을 느끼셨을 것이다.

더욱이 십자가형에 앞서서 받았던 태형으로 인한 출혈과 쇼크, 혈압저하, 못을 받기 위해 땅에 눕혀졌을 때 태형

 당했던 그 상처 난 등이 다시 찢겨지는 아픔, 십자가 위에서는 숨을 쉴 때마다 찢겨진 등이 거친 나무와 부딪치면

서 생기는 고통 등 예수님은 매 순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학

자들은 예수님은 호흡곤란이 상태로 더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 거라고 본다. 못에 박혀 쭉 뻗은 팔과 어깨는 몸무

게 때문에 자꾸 밑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고, 이러다 보면 숨을 들이시기 보다는 내쉬기가 더욱 어렵게 되고 이로

 인해 이산화탄소 과잉, 근육 경련현상 등이 한층 더 호흡을 방해했을 것이다. 그래서 숨을 제대로 쉬기 위하여 발

을 밀어 올리고 팔꿈치를 구부리면서 어깨도 함께 들어 몸을 위로 끌어올려야 됐지만, 이런 동작은 못 박힌 발에

 몸무게 전체를 싣게 됨으로 심한 고통을 주게 되었을 것이다. 더욱이 팔꿈치를 구부리는 동작은 못에 박인 손목

을 돌리게 하고 팔의 신경을 손상시키게 됨으로 고통이 가중되어 결과적으로 예수는 매번 호흡할 때마다 극심한

 고통으로 인한 치명적인 산소 부족, 다른 말로 질식을 경험했으리라고 의학자들은 설명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육체적인 고통은 어쩌면 정서적인 고독감에 비하면 그리 큰 아픔은 아닐 것이다. 전능하신 하느

님의 아들이지만 아무런 반응 없이 참혹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현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사람의 몰

이해를 바라보는 서글픔, 그토록 사랑했건만 스승을 버리고 살길 찾아 뿔뿔이 흩어지는 제자들을 바라보고 느끼

는 배신감과 허탈감 등으로 예수님은 죽음과도 같은 처절함과 고독,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이상 간단히 다이제스트에 있는 것을 번역해 봤습니다만,

의학적으로도 예수님의 십자가 형,

그 죽기까지 과정은 우리들이 살면서 여러 가지 사고를 통해서 고통을 겪겠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의 현실성을 묵상해야지, 추상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제 15일 남은 사순 동안 네 가지 묵상거리.

첫 번째는 사탄의 유혹은 숨이 끊어질 때가지 집요하니 우리는 늘 경계해야 한다.

두 번째는 유다스가 죄를 지은 원인은 자기 위주의 예수님을 만들고 살면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성모님이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을 지켜보았나 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주님수난은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고 살아있는 고통이라고 하는 것.

그래서 우리는 본당에서 십자가의 길을 할 때마다 그 분의 고통이 얼마나 크셨는지,

겟세마니에서부터 얼마나 힘드셨는지 묵상하자는 것입니다.

 

이제 15일 후에는 부활한 사람도 있고 여전히 사순절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겟세마니에서 내려오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결과에 대해서는 우리가 각자가 책임을 져야합니다.

나는 잘 살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못하게 했다는 유치한 탓 돌리지 말고 다 같이 부활하도록 합시다.

 

♣2017년 4월 은총의 밤 (4/01) 배티성지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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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모바일에서 올림 (2017/04/16 20: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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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백발 (2017/04/17 08: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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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합니다, 아   멘, 신부님영육간에 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나숙이♥모바일에서 올림 (2017/04/17 1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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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펠릭스1254 (2017/04/21 11: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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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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