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주님의 강생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17-01-05 11:10:36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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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티성지 - photo by - 느티나무 신부님

 

 

+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어제 전야미사에도 참석하셨던 분들이 3분의 1이상이 되는 것 같은데, 어제 강론 기억나시나요?

기를 쓰고 준비했는데 그 다음 날 물으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어저께 것은 어저께 거고 오늘 것 다시 또 해야죠.

 

주님의 강생을 라틴어로 얘기할 때 ‘인카르나시온(incarnation)’으로 표현합니다. 어려운 얘기죠.

이 어려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동정녀가 잉태하여’, ‘두려움’, ‘임마누엘(Immanuel)’이라는 단어입니다.

 

 

첫 번째가 뭐라고 했습니까? ‘동정녀가 잉태하여’.

동정녀의 잉태이야기를 학자들의 주장이 아닌 성서에서 근거를 찾아봅시다.

먼저 아기를 절대 낳을 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아기를 가진 인물들이 구약성서에 종종 나오죠?

나이가 많았던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 달거리가 끊어진 지 오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임신하죠?

그 다음으로는 판관기 13장 2-7절에 그 유명한 삼손의 얘기가 나옵니다.

성경에는 삼손의 엄마 이름은 나오지 않고, ‘돌계집이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돌계집이라는 말은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 결혼을 했는데도 아기가 안 들어서는 여인이죠.

돌계집이었던 삼손엄마가 그 늙은 나이에 천사의 예방을 받고 아기가 들어선 것이죠.

신약으로 와서는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 요한의 아버지는 제사장 즈카르야죠?

유대 나라에서는 여자가 아기를 못 낳으면 큰 죄에 대한 벌을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친정의 죄로 인해 가장 기본적인 하느님의 축복인 아기를 못 낳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더군다나 엘리사벳의 남편은 제사장이었습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했는지, 그 늙은 나이에 세례자 요한을 잉태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에 대한 얘기는 어디에 나옵니까?

예수님 탄생 수백 년 전에 이사야서 7장 14절에 이사야가 아주 명확하게 예언을 했습니다.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기를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지금 얘기한 이사악, 삼손, 세례자 요한의 공통적인 특징은 성령의 힘으로 잉태되었다는 겁니다. 맞죠?

 물론 세 사람 – 사라, 삼손의 엄마, 엘리사벳-은 기혼자였지만 의학적으로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성서 표현으로 따르면 돌계집의 상태에서 성령의 힘으로 아기가 들어선 겁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히고 어떻게 보면 더 신비스러운 것은 예수님을 잉태한 성모마리아는 결혼한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처녀 잉태. 그래서 이사야가 확실하게 7장 14절에 얘기했듯이 ‘동정녀가 잉태해서 아들을 낳을 터인데,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렇게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것을 찾아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성서에 보면 이런 분들이 어떻게 살았는가가 앞뒤로 나옵니다.

첫 번째는 하느님을 정성껏 섬기면서 가까이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정성껏 섬기는 것 쉽지 않습니다.

내 몸뚱이에 쏟는 정성의 100분 1도 하느님께 못 드릴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은 단지 급할 때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로 전락해 있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두 번째는 반드시 생활 속에서 열매를 맺었던 사람들입니다.

말로는 하루에 천당을 수백 번씩 오고갑니다. 그러나 열매 맺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물론 말과 행동이 딱 맞게 사는 사람은 적겠지만, 적어도 내가 한 말 지키려고 무던히 애써야 됩니다.

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열매 맺으려고 애써야 됩니다.

이렇게 특별한(special)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두 가지 특성 – 정성껏 하느님을 섬겼던 사람이요,

 두 번째는 생활 속에서 열매를 맺으려고 애썼던 사람에게 이런 신비한 일들이 항상 벌어졌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에게 이런 은총을 주셨던 목적,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간단합니다. 영광과 봉사입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남에게 봉사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은혜를 받은, 이런 은혜를 주신 목적입니다.

 

정리하면, 우리도 하느님을 정성껏 섬기고 열매를 맺는 삶을 살면 분명히 은총을 받습니다.

그 은총을 주시는 이유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잉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출산까지 해야 합니다.

그냥 마음에 담아두는 것은 잉태라고 할 수 있지만 출산을 해야 됩니다.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간단한 설명이었지만 동정녀 잉태의 그 뜻과 의미와 목적에 대한 설명을 잠깐 드렸습니다.

 

두 번째 키워드(keyword)는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두려움에 앞에 ‘거룩한’ 이 붙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일을 당하면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모마리아도 약혼자인 요셉도 천사의 예방을 받고 처음에는 두려웠습니다.

 

두려움은 두 종류입니다.

죄지은 후 찾아오는 ‘어두운 두려움’과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없을 때 찾아오는 ‘거룩한 두려움’.

 

첫 번째 어두운 두려움은 원인이 대부분 본인의 악습이기에 죄를 찾아 겸손히 회개하면 그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그런데 그 어두운 두려움을  지속시키면 반드시 마귀가 그 두려움을 가지고 자기 하수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두 번째 거룩한 두려움. 성모마리아가 느꼈고 수많은 성인성녀들이 느꼈던 두려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하느님의 역사라고 할 때 우리 인간 쪽에서는 거룩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 거룩한 두려움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설명해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두려워 떨고 있는 성모마리아에게 어떤 방법으로 설명합니까?

‘봐라! 네 사촌언니 엘리사벳은 그 늙은 나이에 아이가 들어선지 여섯 달이나 됐단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못 하는 것이 없다.’ 차근차근 설명해 줍니다. 그러면서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요셉에게는 ‘두려워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여라.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된 아기다.’

 

그래서 거룩한 두려움은 반드시 어떤 방법-양심, 강론, TV등-으로든지 그 두려움의 목적이 뭔지 알려주십니다.

거룩한 두려움은 하느님의 목소리 듣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순간이기에 거룩한 두려움이 지나가고 나면

신앙이 업그레이드(upgrade)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행복 가운데 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죄로 생긴 어두운 두려움인지, 주님께서 나를 이끄시려하는 거룩한 두려움인지를 잘 분별해야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절대로 우리는 분별을 못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키워드는 임마누엘이라고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제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저는 이제껏 사제로 살면서, 아니 더 전 신학생으로 살면서 ‘세 가지를 놓치면 난 신부가 못 된다’,‘세 가지를 놓치면,

변질이 돼 버리면 사제생활이 사제가 아니라 직업이 될 것이요,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고 하는

절대절명의 마음을 가지고 세 가지를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 세 가지의 본질은 임마누엘인데, 풀이하면 첫 번째는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어떤 순간이라도 내가 죄 중에 헤맸던 순간이라도 주님은 한 번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 적이 없으셨다는 것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 늘 돌아온 탕자의 신세가 된다 할지라도, ‘주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그것을 잊어버리면 돌아온 탕자는 몇 개월 못 견디고 다시 뛰쳐나갔을 것입니다.

형의 싸늘한 시선, 동네사람들의 수근거림 등을 견디지 못하고 짐 싸서 나갔을 거에요.

그래서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첫 단추는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는 겁니다.

 

돈 안 드니까 아멘 좀 하시면 안 됩니까? 아멘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 있는 겁니다.

아멘은 미래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완료형이라 했어요.

사제가 ‘하느님을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습니다.’라고 할 때 듣자마자 ‘아멘’이라고 하면,

‘앞으로 주님이 저를 사랑할 것을 믿겠습니다.’라고 하는 미래완료형이 아니라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정말 주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제가 믿고 있습니다.’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오늘 미사 중에 치유의 은혜가 내려갈 겁니다.’라고 하는 사제의 말에 아멘하시면,

‘앞으로 치유가 되겠죠. 그것 믿겠습니다.’가 아니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로 머리에서 발가락까지 치유되었음을 믿고 감사하는 것이 아멘입니다.

 

두 번째 임마누엘의 두 번째 뜻은 ‘하느님은 나의 어려움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사제될 때부터 순탄하지 못했어요. 서품식 4시간 전에 서품이 보류가 되었어요.

왜? 허리디스크 때문에. 그런 신부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동창들은 아름다운 제의를 입고 서품받는 시간에 저는 차에 실려 수원 빈센트병원으로 끌려갔어요.

교구에서는 아프다고 하는 것으로는 부제를 내쫓을 수 없기 때문에 내 쪽에서 스스로 포기하기를 기다렸어요.

2달 동안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하지만 저는 믿었어요. 하느님은 나의 이 어려움 이 김부제의 현재 어려움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었어요.

2달 후에 김대건 신부님 유해 앞에서 전구한 다음에 빠져 나와 있던 디스크가 들어갔고,

의사가  검사해서 주교님께 보고해서 원래 1월 26일이 서품일이 5월 14일로 4개월 늦어져서 신부가 되었어요.

‘사제직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갈까?’. 그 몸으로 사목 못한다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포기하라고도 그랬어요.

그렇지만 나는 하느님과 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내 쪽에서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은 내 어려움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았죠. 물론 그 이후에도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 십자가에 짓눌릴

때마다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것은 ‘지금은 내가 죽을 만큼 힘들지만 주님은 분명히 이 어려움 해결해 주실 것

을 믿습니다.’ 하면서 수백 번을 저는 속으로 되뇌었어요. 이게 바로 임마누엘의 두 번째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 임마누엘의 세 번째 의미는 ‘하느님은 나의 앞길 선하게 예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 앞길은 불확실합니다. 그러니 그런 믿음이 없다면 얼마나 광야에서 길에서 헤매겠습니까?

주님은 나의 앞길 선하게, 넘어질까 언제라도 달려 나오셔서 일으켜 주실 준비가 되시고,

계곡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는 몸소 내려와서 등에 업고 끌고 나오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

정말 주님 계신 천국에 갈 때까지 내 앞길 선하게 예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겠다고 하는 것이 임마누엘의 세 번째 뜻입니다.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합시다.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하느님은 나의 어려움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느님은 나의 앞길 선하게 예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저도 죽을 때까지 이 세 가지를 놓치지 않을 겁니다. 

이제까지 저를 사제로 서 있을 수 있게 한 이 세 기둥을 폭풍이 불고, 쓰나미가 오더라도 놓치지 않을 겁니다.

아멘

 

 

 

♣ 2016년 예수성탄 대축일 낮미사 배티성지 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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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17/01/05 12: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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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신부님강론말씀너무감사합니다, 아   멘, 신부님영육간에건강하시고하느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펠릭스1254 (2017/01/05 14: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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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사랑많이 (2017/01/05 15: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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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공감이 되는 너무 좋으신 말씀 감사합니다

올해도 하느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 주실 수 있도록 신부님의 영육간 건강을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우 요한 (2017/01/05 21: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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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하느님은 나의 어려움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느님은 나의 앞길 선하게 예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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