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우리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면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16-07-21 10:54:19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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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 소나무 신부님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엔 갈릴리 호수가 등장합니다.

갈릴리 호수는 남북이 약 20km, 동서가 한 12km 그리고 수면이 바다보다는 200m 낮아요.

호수 뒤쪽의 산과 계곡을 통해서 바람이 불면 온도가 떨어지면서 아주 센 바람이 갈릴리 호수를 향해서 붑니다.

예고 없이 부는 거예요. 잠잠했던 호수가 갑자기 풍랑이 일면서 뒤집어 지겠죠.

요즘은 일기예보를 들으며 배를 띄우겠지만, 2천 년 전에는 바람이 잠잠하면 배를 띄웠겠지요.

어부가 생업이던 제자들도 바람 잠잠하던 날 배를 띄웠고, 예수님도 같이 계셨지요.

예수님이 어떻게 하고 계셨어요? 주무셨죠.

아! 그런데 예상치 못한 돌풍이 부는 거예요.

나무로 만든 배였으니 바람이 칠 때마다 풍랑이 일면서 뒤집어 지겠죠?

제자들은 당황스러워서 난리가 났는데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어요. 왜 주무셨을까요?

①번: 전날 수면제를 세게 드셔서, ②번: 실눈 뜨고 그 상황에서 제자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시려고.

아마 ②번일 거예요.

 

예수님은 3년 동안 주변에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셨는데 못 미더웠어요.

이제는 수난이 가까워 오는데 제자들이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메시아라고 하는 것은 알고 있을까? 자리싸움이나 하고. 엄마를 동원해 로비나 벌이고..

예수님이 기도하시다가 분심이 들 수도 있겠죠? ‘아, 나를 뭐로 알고 있을까?’

3년 동안 열심히 하느님 나라를 가르쳤고 또 분명하게 가르치기 위해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일으켰는데..

 

제자들에게 묻죠.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하더냐?’

‘예언자라고 그럽디다.’ ‘예레미아나 엘리아라고 그럽디다.’ 정답이 아니지요?

예수님은 그 소리를 들도 얼마나 큰 실망을 느꼈었겠어요.

‘사람들이 단순히 예언자로 알고 있구나! 그래도 내 열 두 제자들은 알겠지.’

예수님이 원하시는 답을 못 들었기에 얼굴 표정이 밝지 않았겠죠.

‘그러면 너희들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제자들은 가슴이 철렁~ 왜냐하면 그 당시 열두제자들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예수님을 세속의 왕으로, 로마를 물리치고 왕이 되실 분으로요.

그런데 베드로가 정답을 얘기하죠.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떠날 때가 가까이오자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에 대한 것. 그것은 예수님도 벗어나실 수 없었죠.

아마 그런 분위기 가운데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해요.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탔어요.

아마 예수님은 뱃머리에서 잠든 척 하시고 바람을 일으키시고 실눈을 뜨고 보시니~

배 안에 난리가 났어. 배에 물이 첨벙첨벙 차오니까 갈릴리 호 한 가운데서 전전긍긍 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그 꼴을 보니 ‘나를 개떡처럼 아는구나!’

이 배에 지금 누가 타고 있는 거예요? 메시아!

‘하느님이 타고 있는데, 나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저렇게 호들갑을 떨고 난리를 떠나?’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죠. 그렇게 산 적 없어요?

방마다 십자가 다 걸려있고 그것도 모자라 아파트 문 앞에 십자가가 걸려 있잖아요.

예수님이 집에 계신데, 하느님한테 무릎 꿇고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날 것인데,

그저 걱정만 하고 호들갑 떨고 전화통 붙들고 해결되지도 않는 사람한테 매달리고.

배는 교회를 뜻해요. 더 나가서 가정을, 또 내가 몸담고 있는 레지오, 반, 구역을 뜻해요.

 

제자들도 자기끼리 배를 돌려보려고 하다가 안 되니까, 마지막 예수님을 대개 원망했어요.

‘세상에 난리가 났는데,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거들어주기라도 하시지 잠을 주무시다니!’

여러분도 똑 같죠. 우리들 기도하는데 응답이 안 올 때. ‘난 이렇게 힘들어 죽겠는데..’

하느님한테 버림받은 느낌 받을 때 있잖아요, 사막 한 가운데 내팽개쳐진 느낌.

캄캄한 밤에 아무리 기도해도 기도가 되질 않고..

아마 제자들은 예수님을 쳐다보면서 ‘당신 어떻게 좀 해보세요.’라고 했겠죠.

하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버티다가 일어나셔서 제자들을 꾸짖어요.

공동번역에는 먼저 제자들을 꾸짖어요. ‘왜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 겁이 많으냐?’

제자들을 꾸짖고 그 다음에 바람을 향하여 명령을 내리죠 ‘멈춰라!’

그렇게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은 바람이 잠잠해지고 고요해져요.

 

자매님들. 물 항아리 져 본 적 있어요? 똬리를 놓고 항아리를 머리에 올리죠.

똬리를 놓기 전에 지혜로운 분들은 나뭇잎이나 가지고 다니는 막대기를 물 위에 올려놓죠.

그러면 물이 덜 출렁거려 쏟아지는 물이 거의 없게 되죠.

아무리 출렁거리는 험한 세상에 살아도 우리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면 그렇게 동요하지 않아요.

동요하는 것은 예수님이 없이 자기 혼자 해결하려고 하니까 늘 출렁거리는 거죠.

 

제가 신자들에게 한 평생 얘기한 것 중에 하나가 가슴 속에 사람 품지 마라는 겁니다.

사람을 미워하라는 말은 아니죠.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죠.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하느님뿐이다. 사람은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고 신의의 관계다.

아내와 남편 사이도 마찬가지에요. 혼배성사 할 때 ‘사랑과 존경, 신의를 바치겠습니까?’

그 세 가지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신의죠. 신의가 깨지면 사랑이고 존경도 다 헛것에요.

그리고 그 신의의 다리는 ‘분별의 나사’가 잘 조여져 있어야 흔들리지 않죠.

 

여러분 가슴 한 가운데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 있어야 합니다.

이 허우적거리는 열두 제자들 한 가운데 예수님이 계셨는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안 보여요.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위험, 두려움에 예수님이 손만 뻗치면 닿는 위치에 계신데도 벌벌 떨었죠.

 

우리가 유혹을 당하거나 마음이 불안하고 일도 안 될 때 ‘내 안에 주님이 계시구나.’ 믿으면 해결 되요.

하지만 많은 교우들이 걱정만 하고, 걱정을 기도로 착각을 해.

걱정하면 마귀만 들끓어요.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기도까지 못가고 걱정에서 헤매게끔 만들죠.

열두 제자가 배에서 걱정만 하고 헤매듯이.

왜? 마귀는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나고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어요?

‘왜 그렇게 겁이 많으냐? 왜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 내가 네 옆에 있었잖아. 너 내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어.

너 혼자만 걱정하다가 한 세상 다 보냈지.’

 

예수님은 미사 때 마다 감각적으로 주님의 성체로 우리 안에 들어오시잖아요.

하느님은 안 보이시고 잡을 수도 없다 해도 미사 중에는 잡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밥이 되시잖아요.

예수님이 들어오시는데 해결 못 할 일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영하면서도 의식을 안 해요.

 

오늘 복음은 길지 않은 복음이지만, 흔들리는 배는 내 영혼일 수도 있고, 흔들리는 내 가정일 수도 있고,

또 서로 갈라져 있는 우리 본당 공동체일 수도 있습니다.

그 안에 예수님은 – 오늘 복음처럼- 액션을 취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냥 있지 않으시겠죠.

아이 걸음마 시킬 때 잡고 가다가 엄마가 슬그머니 놓죠.

얘가 느낌이 이상해서 넘어지려고 하면, 엄마는 사실 안 보였을 뿐이지 숨어서 보고 있었죠.

아이가 넘어지려고 하면 언제라도 다이빙 캐치를 해서 다치지 않게 하려고.

내 쪽에서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 그 순간이라도 주님의 시선은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는데..

예수님이 눈을 감고 자는 게 아니라 실눈을 뜨고 봤잖아요.

그래서 하느님의 전능을 말 한마디로 다시 한 번 보여 주시죠.

제자들은 도대체 저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까지도 말을 듣느냐고 합니다.

열두 제자들은 전에 있었던 일들을 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거죠.

우리는 세상을 많은 기적 속에 살고 있어요.

아침에 눈 뜨는 것이 기적이요. 내 심장이 속에서 뛰고 있는 것도 기적이에요.

아무리 잘나고 세상의 재산을 다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똑똑 뛰던 심장이 멈추면 가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인생 별거 아니에요. 세월 참 빨리 지나가죠.

 

앞으로 우리가 주님 만날 때까지 얼마나 많은 풍랑에 시달릴지 어떤 종류의 풍랑을 만날지 몰라도

그럴 때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풍랑 가운데서도 주님이, 예수님이 계시다.’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풍랑을 만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걱정하지 마세요. 예수님께서 해결 주실 것입니다.

 

 

 

 

 

♣2016년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6/28) 배티성지 느티나무신부님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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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릭스1254 (2016/07/21 13: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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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장미♡모바일에서 올림 (2016/07/21 15: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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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백발 (2016/07/21 15: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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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신부님강론말씀너무감사합니다, 아   멘,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황박 (2016/07/22 14: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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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감사합니다.
  
  성모신심모바일에서 올림 (2016/07/22 14: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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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 감사합니다
  
  라나나 (2016/07/27 15: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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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감사합니다~~언제나 신부님 강론을 읽고 항상 힘을냅니당 감사합니당

  
  김성숙 마리아모바일에서 올림 (2016/07/31 19: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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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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