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성령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실 때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16-07-12 09:02:21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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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예수님

 

세상에는 많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있습니다.

우리들도 넓은 의미에서 특별한 능력을 가진 동물인데, 그 특별한 능력 중 하나가 신접입니다.

신을 접하는 능력은 개나 고양이에게는 없습니다.

신접도 두 종류로 악령을 접하는 경우도 있고 성령을 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령이나 악령이나 다 능력은 있습니다.

무당이 되려면 신내림 굿을 통해서 마귀의 힘, 악령을 받습니다.

우리 천주교인은 세례를 통해서 성령을 받습니다.

 

예전에 고속버스를 승차해 딱 하나 남은 빈자리에 앉으려는데 기분이 아주 나빴습니다.

앉아 있는 사람은 60이 넘은 여자였는데 나를 아주 불쾌하게 쳐다봅디다.

그래도 서서 갈 수는 없고 그 자리에 앉아 그 사람을 향해 구마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은 저를 향하여 저주의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주먹 내두르고 싸우지만 않았을 뿐이지. 저는 즉시 눈치 챘습니다. ‘무당이구나!’

아마도 그 사람도 예사 사람이 아님을 눈치 챘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기 싸움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30분, 이 여자가 땀을 뻘뻘 흘리더니 기사에게 자기 죽을 것 같으니 갓길에 세우라는 거예요.

위급환자가 생긴 줄 알고 버스는 옆에 섰고, 그 여자는 하차해 가드레일을 넘어  밑으로 도망갑디다.

 

마귀는 성령 받은 사람을 알아봅니다.

흔히 천주교신자가 친구 따라 점집에 가면 부정 탄다고 이 방에서 나가라고 무당이 호통을 칩니다.

피정이나 은총의 밤 후에 마귀는 ‘하느님께 푹 빠졌다가 왔구나! 성령 받고 왔구나!’ 너무나 잘 압니다.

또, 성령 받고 살아야 될 사람이 시원찮게 사는 것을 악령도 압니다.

저는 교우들을 피정시키고 난 후에 마지막 파견 축복을 드리면서, 항상 마지막 부탁을 드립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7시간 죽을 힘 다하여 말씀을 전했습니다.

또, 여러분은 긴 시간 동안 피정을 준비하고 오늘 피정 받고 은혜 넘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동네 마귀들도 한 달 전부터 비상대책 회의를 하며 성당 앞마당에 모여 있을 겁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느님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서는 꼴을 못 봅니다.

여러분 피정 끝나고 기쁜 마음으로 나가다가 분명히 유혹이 올 것이고, 특히 가까운데서 도전받습니다.

오늘 뿐 아니라 은혜 받은 후에는 침묵하면서 말씀(성경, 강론등)을 가까이 하십시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귀지만 우리가 침묵하면서 말씀에 젖을 때면 항상 손을 떼고 물러납니다.

 

그러면 분명 성령 받은 사람의 특징이 있을 겁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 특징을 얘기하는데, 성령 받은 사람의 첫 번째 특징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담대합니다. 영적으로 소위 깡다구가 생깁니다.

인간에게는 4대 두려움(세상에 대한, 상실에 대한, 고통에 대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함께 하지 않으면 미사를 다녀도 늘 마음이 편치 않고 두렵습니다.

가슴 속에 하느님을 담지 않고, 늘 인간을 담고 살기에 늘 피를 흘립니다.

사람은 믿음의 존재가 아니라 신의의 존재이고, 그 신의는 분별이라고 하는 나사로 늘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신의를 깨려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정말 분별치 않으면 그 다리는 흔들리고 부서져 버립니다.

믿을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입니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늘 따라 옵니다. 물질, 권력, 혈육을 잃어버릴까 늘 전전긍긍 합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 고통 그 자체는 철학적으로 보면 악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고통중의 고독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길이 열리기에 고통의 신비라고 하는 겁니다.

‘고통=축복’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앞에서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짙습니다.

성령을 가득 받은 사람은 그 고통 너머에서 빛을 강하게 비춰주시는 하느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 하지 않으면 어둠 그 자체만을 보고 하느님과 인생을 저주하고 원망합니다.

내가 지금 고통의 짙은 그림자 속에 있다고 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하느님의 은총의 빛을 강하게 받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 늘 하루하루를 마지막으로 알고 살기 때문에. 종말론적인 삶을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죽기까지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는 것이 믿음의 핵심이요, 믿음의 중심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분명히 한 번은 겪는 죽음의 순간이 눈앞에 오더라도 ‘죽음아, 너희의 독침은 어디에 있느냐?’

그런 마음으로 세상의 어둠을 대하다 보니 분명히 승리합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은 사람은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살아갑니다.

 

두 번째로 성령을 받은 사람의 특징은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생깁니다.

모든 것에 앞서서 하느님이 첫째 자리입니다.

묵주반지도 14k, 18k, 아니면 순금이냐 순도의 차이가 나듯이 신앙에도 순도차이가 있습니다.

군인들이 눈뜨면 연병장 나가 구호를 외치듯, 우리들도 눈을 뜨면 영신전쟁에서 승리를 위한

순도 100프로를 지향하는 하느님께 대한 구호를 외치고 시작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께 대한 사랑, 오직 예수님께 대한 충성, 오직 예수님께 대한 순명>

앞에 오직 이라는 단어는 순도를 나타냅니다.

순도 100프로를 지향하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 충성과 순명으로 목표를 잡아야 합니다.

적당히 하느님 사랑하고 기분 내키면 하느님께 순명하고 마음에 들면 하느님께 충성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는

절대로 우리들은 하느님께 대한 뜨거운 사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서 살아 숨 쉬셔야 순도 백프로를 지향하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으로 불타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는데 혼신을 다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오신 배티성지는 최양업신부님영성과 무명순교자영성이 결합되어 있는 성지입니다.

최양업신부님은 이곳에서 본당 신부님을 하면서 이 근방 뿐 아니라 전국 127개 교우촌을 다니면서 사목하십니다.

밤에만 산길로, 1년에 7천리, 11년 6개월 돌아가신 날까지 무려 9만리 길을 걸어서 사목하십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그게 가능할까?

양 하나라도 더 찾기 위하여 한 달에 삼 일만을 잘 수 있었던 그 힘은 자기 과시도 아니고 자기 능력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할 때는 우리는 하느님을 안 알리고는 못 배깁니다.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알릴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던 고(故)이태석 사제의 이야기를 압니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에 제가 감곡에 있을 때 찾아 왔습니다.

미사를 드리려는데 뒤에서 모자를 쓰신 분이 뚜벅뚜벅 제의실로 들어와 약식 제의를 입고 나오더군요.

신부가 늦게 왔구나 생각하고 미사 드리며 보니, 이미 병색은 완연했고 복수는 배가 터질 정도였어요.

미사 후 제의실에서 그 신부님은 수도회소속으로 아프리카 선교하고 있고 동시에 의사라 인사하시며,

우연히 한국에 들어와서 검사하다가 말기 암으로 발견되었다하셨습니다.

그 신부님의 눈을 보니까, ‘신부님, 매괴성모님께 매달리려 왔습니다.’

그 옆에서 누님들은 동생 좀 살려주세요.

저는 그 때 신부님의 눈을 보면서 죽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분에게 다음을 기약하며 안수를 줬어요.

“신부님 정말 만나보고 싶었고, 매괴성지도 꼭 오고 싶었습니다. 누님도 울지 마세요. 저 괜찮아요.”

나중에 그분을 보러 간다고 하다가, 사실은 성탄이 가까워오니까 판공 때문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분이 세상을 떴다는 얘기가 인터넷에서 떱디다. ‘아이고 한 번 더 봤어야 되는데.’

저는 그 날 밤중에 차를 몰고 살레시오 수도회로 갔었습니다.

제의로 갈아입고 시신은 여전히 그 털모자를 쓰고 있습디다.

저는 가까이 가서 ‘참, 고생했소. 순서로 보면 내가 먼저인데. 그래도 성모님의 성지에 와서 준비 잘 했을 테니까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는 수많은 아프리카의 사람들, 이제는 하느님께 맡기고 가시오.’

 

그 후에 이태석신부님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매스컴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대단하다!

이렇게 양들을 위해서 예수님을 닮은 마음으로 내란이 나서 포탄이 날아다니는 동네에 성모님을 전한 그 힘은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성령이 함께 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느님을 세상에 외칩니다. 알립니다. 그리고 어떤 것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비록 육신의 병이 생명을 좀 먹어 갈 때라도 끝까지 의연합니다.

비록 몸은 뼈와 가죽 밖에 안 남고 복수가 터질 정도로 찼다 하더라도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의심치 않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 주변에서 그렇게 아름답게 살다 가신 분들.

최양업 신부님, 이태석 신부님, 그리고 정말 거룩한 사제로 살다 가신 분들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

그 분들이 그렇게 하신 힘은 성령께 힘을 청했다는 겁니다.

 

세 번째로 성령을 받은 사람의 특징은 말에 대한 분별력이 생깁니다.

반드시 해야 할 말, 안 해야 할 말에 대한 분별력이 생깁니다.

우리는 혀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도 있고 혀로써 썩은 냄새를 풍길 수도 있습니다.

이 세 치의 짧은 혀로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판단하고 단죄하고 죽였다 살렸다 했습니까?

또 우리들 역시 다른 사람의 혓바닥에 수도 없이 죽음을 당할 때가 많았을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늘 혀를 다스리려고 애씁니다.

침묵을 지켜야 할 때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침묵을 지킵니다.

또 의롭게 얘기해야 될 때는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예언자의 목소리를 내고 성령을 대신해서 세상에 하느님을 알립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자기 꼴을 찾게 됩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 저에게 한 마디만 해 주십시오. “신부님은 참 꼴값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듣고 싶었는지.

 

지금은 부정적으로 사용되지만, 누구보다 자기 처지를 잘 아는 사람에게 쓰였던 말이 ‘꼴의 값’입니다.

사제에게도, 수녀에게도, 부모, 학생, 공무원에게도 각자의 꼴의 값이 있습니다.

자기의 꼴값을 못 찾을 때는 나쁜 의미의 꼴값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은 사제를 사제답게, 신자를 신앙인답게, 봉사자를 봉사자답게 만드는 힘입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는 기운이자 힘입니다.

하느님을 하느님답게 하는 힘이요, 아들을 아들답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들에게 성령을 빼고 나면 빈껍데기요, 허수아비입니다.

 

33년 동안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김웅열 신부를 이 자리에 사제로 머물 수 있게 한 힘은 성령입니다.

성령을 알았기에 성모님을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알 수 있었고, 하느님의 일을 해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성령을 받아들이는 신접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으로 성령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실 때 지금 말씀드린 네 가지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첫 번째,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어떤 두려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야훼이레. 주님께서는 내 앞길 선하게 예비하심을 믿습니다’를 외치게 됩니다.

두 번째는 하느님을 늘 첫째 자리에 모시고 순도 100%짜리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순명과 충성의 길로 가려고 열심히 삽니다.

세 번째는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있고 사탄의 도구가 될 수도 있는 혀에 대해 늘 묵상하고, 감출 때는 철저하게 감추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때는 주위에 어떤 시선이 있어도 담대하게 혀로써 하느님을 증거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늘 잃어버린 하느님의 모상을 찾으려고, 다시 말하면 하느님이 주신 그 꼴을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여러분들도 정말 꼴값 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정말 사제로서의 값을 찾으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갖고 있는 우리 인간들이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최대의 찬미요, 염원이라는 것을 묵상하면서,

오늘 배티성지의 수많은 무명순교자들이 살다가 간 이곳에 내가 선택해 온 것이 아니라 성령이 이끌어주셨고,

성령께서 주시는 많은 은사가 이 미사 중에 내린다는 것을 우리들이 조금도 의심치 말고,

 비록 이 자리에 같이 오지 못했다 할지라도 봉헌해야 될 어떤 사람이 생각이 나면,

순도 100%짜리 믿음을 갖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갖고 그 사람을 봉헌합시다.

믿는 대로 될 것임을 믿습니다.

 아멘.

 

 

 

 

♣2016년 07월 배티은총의 밤(7/2) 느티나무신부님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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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16/07/12 09:3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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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신부님강론말씀너무감사합니다, 아   멘, 신부님, 영육간에 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펠릭스1254 (2016/07/12 09:4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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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예수신심모바일에서 올림 (2016/07/12 21: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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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
  
  장미♡모바일에서 올림 (2016/07/13 19: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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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보운당 (2016/07/23 00: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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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신부님,

신부님의 말씀, 심금을 울립니다.

야훼이레,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제 자신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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