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버리지 말아야할 것과 버려야할 것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16-06-28 07:14:40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1,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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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티성지 - photo by - 느티나무 신부님

 

 

 

+찬미예수님

여러분들, 4년째 회복 피정을 하는데, ‘회복’ 피정 때마다 회복되세요?

 

주어진 시간이 90분으로 촉박하기에 오늘 여러분들에게 화두를 던져주고 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세상이 무법천지입니다.

이런 병든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버리지 말아야할 것과 반드시 버려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버리지 말아야할 것은 무엇인가?

첫 번째 신앙입니다.

두 번째 십자가입니다. 저마다 크기가 다른 십자가입니다.

세 번째 신공(기도)입니다. 기도는 핑계가 없습니다.

네 번째는 천국을 향하는 마음(향주삼덕)입니다.

다섯 번째 버려서 안 되는 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입니다.

균형 있는 가족사랑, 교회의 가르침대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반드시 버려야할 것 첫 번째 상처입니다. 치유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 마귀와 인연을 끊어야합니다. 그러려면 구마의 은혜를 받아야합니다.

세 번째 버려야할 것은 미움입니다. 미움과 분노는 쌍둥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무관심의 삶을 버려야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늘 죽을 때까지 기억하고 묵상해야 하는 것 있습니다.

3대 불감증(은총의 불감증, 말씀의 불감증, 지에 대한 불감증)을 늘 묵상하고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이 3대 불감증으로부터 발목이 잡히면 절대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지금 말씀드린 것들이 순서가 바뀌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늘 영적으로 피곤합니다.

 

회복이라는 개념은 부러졌던 다리가 다시 붙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원인을 알아야합니다.

회복이라는 말 아래에는 ‘상처’ ‘어둠’ 이라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그 악습하나만이라도 반드시 버려 내년 이 자리에 올 때는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오리라’는 각오가 없다면 피정은 그냥 행사입니다.

그냥 체육관에 모여서 노래 부르고 박수치고..신앙은 ‘감정 따먹기’가 아닙니다.

물론 하느님은 뜨거운 마음을 통해서도 오시지만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의지와 지성으로 분명히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자, 이제까지 이야기한 것들을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하는 데까지 해봅시다.

 

버려서는 안 되는 것 5가지 중 첫 번째는 신앙(믿음)이라 했습니다.

물론 신앙을 교리서에는 ‘영원한 생명’이라 합니다.

순교영성의 차원에서 신앙은 ‘죽기까지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핵심은 이렇게 한 줄로 요약이 되지만, 그 안에 앞에서면 태산 앞에 서있는 느낌입니다.

여러분. 매일같이 하느님 첫째 자리에 있습니까?

우상숭배의 개념은 하느님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것은 다 우상입니다.

자매들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자식 중심입니다.

그것이 죄는 아닙니다. 하지만 순서가 바뀌면 죄가 됩니다.

은총의 비라는 것은 위에서 밑으로 뿌리지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비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가정의 첫째 자리에 앉아계실 때에만 그 밑의 가족들은 은총의 비를 흠뻑 맞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픈 몸이, 교만이, 돈이 하느님보다 더 위에 있습니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우리는 하느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길 때가 많습니다.

저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어떤 때는 하느님보다도 내가 개발하는 성지, 일이 더 윗자리에 올라가있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기도를 놓치면 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긴 시간 봉사를 했으니, 긴 시간 기도를 한 것이라 착각을 합니다.

천만의 말씀!!! 그것은 마귀의 소리입니다.

기도와 봉사,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하라면 당연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 주신 사랑이 넘쳐흘러 이웃에게 갈 때 겸손함이 생깁니다.

 

그 다음 죽기까지라 했습니다.

제가 있는 곳은 ‘배티성지’라고도하고 ‘배티순교성지’라고도합니다.

왜냐하면 최양업신부님의 영성과 무명순교자들의 영성이 큰 두 개의 기둥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배티성지를 다녀오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기념대성당 옆길을 올라가다보면 길죽한 ‘순교현양탑’이 있습니다.

그 돌은 채석장에서 다듬어 글자 새겨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 옛날 우리 신자 죽기 전날 그 돌에 앞뒤로 굴비처럼 엮어 묶어 놓고 술판을 벌였대요.

포졸들이 술이 잔뜩 취하면 신자들 얼굴에 오줌 누고, 자매들 옷 벗기고...

이 수모당하지 않으려면 배교하라고..

그래도 절대 배교 안했습니다. 얼마나 서슬이 시퍼랬는지 포졸들이 움찔움찔 뒤로 물러났다고 해요.

이 돌은 1942년 저수지가 생기면서 수몰되었었어요.

그런데 1985년에 백곡에 대가뭄으로 저수지바닥이 드러날 때 군수님이 빼 내주신거예요.

그리고 그 돌은 잘 닦기고 ‘순교자 현양탑’이 새겨져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또 박물관 가기 전 잔디밭에 앞의 구멍은 크고 뒤에는 작은 형구돌 두 개가 있습니다.

우리 교우들의 목에 줄을 걸어 그 구멍으로 빼서 포졸들 몇이 힘껏 잡아당겼다합니다.

그러면 교우들의 목뼈가 연필심 부러지듯 똑똑 부러졌다합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신자들은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래도 배교 안합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목에 줄을 걸고 목이 부러지는 순간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여러분은 자신 있습니까? 죽기까지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 것!

저에게 물으면 지금은 자신 없습니다. 하지만 그 때가 되면 성령의 도와주실 거라 확신합니다.

그 순교자들도 우리처럼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천주교 신자들의 목을 자를 때 썼던 칼은 일부러 비를 맞혔대요.

녹슬게 하여 한 번에 자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에 끊어내려고..

최양업신부님의 아버지는 최경환프란체스코, 성인이지죠?

어머니는 이성례마리아 복녀, 지난 교황님오셔서 복녀되셨지요?

왜 남편분과 함께 성인이 못되셨나요? 배교전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큰 아들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는 것이 들통이 나 최경환프란체스코는 끌려가 매맞아죽습니다.

그리고 이성례마리아는 젖먹이 아이와 함께 옥으로 끌려옵니다.

아가는 결국 옥에서 굶어죽습니다. 애가 죽자 이성례마리아가 순간 눈이 돌아버립니다.

‘나 천주 버리겠소! 나가서 애들 넷 데리고 살겠소!’

죽은 아이 시신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애들이 문 앞에서 팔을 벌리고 못 들어오게 합니다.

‘엄마, 애기는 우리가 묻을 터이니 오던 길 되돌아가세요.

나중에 형이 사제가 되어 왔을 때, 천주님을 배반한 엄마가 어찌 형의 얼굴을 대할 수 있겠소?’

정신을 차린 마리아는 그 길로 감옥을 찾아가 일주일 후 참수형이 결정됩니다.

엄마가 일주일 후에 참수를 당한다는 소리를 듣고, 아이들은 잔칫집 상가 등을 찾아다니며 쌀 한말과 엽전 몇닢을 모읍니다.

그리고 그 전날 망나니를 찾아갑니다.

‘아저씨 이 쌀과 엽전을 받으세요. 그리고 녹슨 칼 밤새 갈아서 엄마 목자를 때 안 아프게 한 번에 잘라주세요.’

망나니이지만 아이를 키우는지라 ‘알았다’ 밤새 칼을 갑니다.

그 다음날 북소리가 둥둥울리는 가운데 이성례마리아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나옵니다.

사람도 모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토록 나오지 말라했건만 아이들 넷이 숨어 지켜봅니다.

그러다 엄마를 보자 막내꼬맹이가 ‘엄마’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어찌 에미가 자식의 소리를 잊겠습니까?

고개를 들어보니 사람사이에 아이 넷이 숨어있었는데, 큰 애가 막내아이의 입을 막고 있었습니다.

망나니도 그 모습을 보고 미룰 수 없다 생각하여, 단 한 번에 이성례마리아의 목을 칩니다.

이성례마리아의 목은 선혈을 뿜으며 땅바닥을 굴러갑니다. 조금이라도 더 아이들 쪽으로...

 

신앙은 죽기까지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요?

우리에게 목이 잘리는 순교가 올지는 몰라도, 적어도 영적순교만큼은 하루 수십 번 옵니다.

영적순교 뭐가 있습니까?

제일 큰 것, 화날 때 참는 것. 아주 큰 영적순교입니다.

또 혓바닥 다스리는 것, 얼마나 혀로 많은 죄를 짓습니까?

‘혀를 다스리는 자는 영혼을 다스리는 자이며, 그에게는 천국이 보장되어있다’

또 모인 자리에 없는 사람 험담안하고 좋게 이야기해주는 것도 영적순교입니다.

며느리 밉다고 소문내면 그 며느리 점점 못되어지고 며느리 최고라고 자랑하면 변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선과 빛으로 변화시켜야합니다.

악을 악으로 싸우고 어둠을 어둠으로 싸우면 더 큰 상처만 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저녁에 가족들이 들어올 때 반갑게 맞아주는 것도 순교입니다 .

“오늘 어땠어?” 하는 말 한마디에 피로가 풀립니다.

이렇게 우리는 눈떠서부터 잘 때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 순교할 기회가 찾아옵니다.

 

신앙이 뭐라구요? 죽기까지 하느님 첫째자리에 모시는 것!

그런데 신앙은 지키기 어렵기에 우리는 기도가 꼭 필요하다.

이것만은 꼭 기억하세요.

 

그런데 기도 많이 하십니까? 기도를 어떻게 하십니까?

무슨 일이든 첫 단추는 중요해요. 그럼 기도의 첫 단추가 무엇일까?

우리는 이 자리에서 기도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첫 단추만 잘 채워놓으면 지혜와 분별이 생기고 성령의 도움으로 성숙한 기도를 하게 됩니다.

달라는 기도만이 아니라 베풀 줄 아는 기도를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예전 보좌신부시절 한 자매가 대입수험생 아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해 달라고 했어요.

나름대로 야무지게 미사를 드렸건만 전교1등 하던 그 아이만 떨어지고 같이 간 친구들은 합격.

그 자매가 제가 오더니 미사 봉헌금을 도로 달라고 합디다.

 

왜 웃으시나요? 색깔만 다르지 여러분들의 이야기거든요.

하느님의 뜻은 전혀 헤아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법으로 달라고 기도하지요.

‘자, 주님 지금부터 9일기도 들어갑니다. 9일기도 끝나는 날 OOO 해주세요.

그렇지 않을 시 냉담을 할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하는 바입니다.’

사실 많은 신자들이 하느님을 자판기로 압니다.

우리 기도의 스승님은 누구시죠? 예수님.

그러면 우리의 기도에 응답이 없을 때는 기도의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예수님이 어떻게 기도 하셨는지를 봐야지요.

예수님은 잡혀서 돌아가시기 전날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신다고 되어있죠?

사람은 극심한 고통 앞에 땀에 피가 섞여 나와요. 의학적으로 ‘혈한증’이라 하지요.

이 밤이 지나면 어떻게 돌아가실지 알았기에 예수님의 인성은 그 고통 받기 싫으셨지요.

그래서 “이 잔은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이것이 예수님의 인성의 기도 청원의 기도였어요.

하지만 즉시 신성의 기도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마시고 아버지 당신 뜻대로 하소서”

인성의 기도 하지 말라는 것 아닙니다.

구하라하셨잖아요? 두드리라하셨잖아요? 주실 것이라 하셨잖아요?

청원기도하세요. 하지만 마지막은 뭐로 맺어야한다고요?

기도의 첫 단추는 “내 뜻대로 하지마시고 아버지 당신 뜻대로 하소서”

 

기도의 두 번째 단추는 ‘기도가 내 집 울타리를 뛰어넘어 가야합니다.’

이것은 첫 단추를 잘 채우면 저절로 채워집니다.

현재 우리가 하는 기도의 99%는 나의 가족이나 아는 사람입니다.

성숙하지 못할 때는 기도가 내 집안에서만 머뭅니다.

하지만 성숙해지면 기도는 햇살처럼 이웃을 향해 퍼져나갑니다.

내가 가장 존경했던 평신도 두 분, 소록도의 스테파노 할아버지와 명동성당 앞에 계시다 꽃동네로 가신 바오로할아버지.

그 두 분은 100% 남을 위한 기도만 하셨어요.

신학생 때 팔다리 없고 배에 고무창을 대고 기어 다니시는 스테파노 할아버지를 소록도에서 뵙습니다.

그 분은 돌아가실 때까지 매일 오후 3시만 되면 십자가의 길을 힘들게 하셨어요.

왜 이렇게 힘들게 기도하시나하니 육지에 살면 죄짓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보속이라 하셨어요.

저는 그 분을 통해서 사제가 되려면 반드시 남을 위해 기도해야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분의 소원은 부활하면 손가락 2개만 갖으시는 거였어요. 그 손가락으로 묵주 한 번 넘겨봤으면..

김수환 추기경님도 기도를 부탁하셨다는 바오로할아버지는 뇌성마비여서 몸이 정신없이 흔들거립니다.

그런데도 늘 남을 위한 기도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성숙한 기도는 나의 울타리를 넘어섭니다.

어려운 남의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중환자실 환자위해 기도하세요.

내 자식, 나의 암덩이를 위한 기도는 따로 바치지 않아도 저절로 올라갑니다.

 

기도의 세 번째 단추는 “기도는 걱정이 아닙니다.”

걱정은 마귀가 들끓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면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마귀는 걱정이 기도로 이어지지 못하게 방해를 해요.

기도는 100% 하느님께 맡기는 것, 결과를 보지 않고 미리 당겨서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기도의 시작은 걱정으로 시작했을지라도 우리는 걱정의 잔가지를 자르고 기도해야합니다.

 

버려서 안 되는 것, 버려야하는 것, 기억하고 묵상해야하는 것을 잘 기억하고 실천하여 행복한 삶을 삽시다.

시간이 다되어 여기까지만 말씀드리네요.

 

 

 

 

2016년 6월 16일 삼성산 성령봉사회 주최 피정<회복> 말씀, 배티성지 느티나무신부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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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글벙글 (2016/06/28 08:3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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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복된 말씀 감사합니다.

주님 은총 안에서 늘 행복하세요!

  
  백발 (2016/06/28 09: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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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신부님강론말씀너무감사합니다, 아   멘, 신부님영육간에건강하시고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장미♡모바일에서 올림 (2016/06/28 09: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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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펠릭스1254 (2016/06/28 10: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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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하늘에서땅끝까지 (2016/06/28 10: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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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아멘 !

  
  진달래 (2016/06/30 17: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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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멘!! 감사합니다.

올바른 기도위해 많이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따뜻한 천사모바일에서 올림 (2016/07/06 12:2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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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성령 충만하신 신부님께 감사드려요!
  
  이모니카모바일에서 올림 (2017/03/04 23: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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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전 이야기라 실감으로 와닿지 않는 이 땅의 순교자들이 오늘 신부님의 강론을 통해 한 분 한 분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들으니 정말 그분들이 바로 내 부모형제 살붙이처럼 가깝게 다가옵니다. 그때 당시의 참혹했던 현장을 떠올리며 다시금 생각하니 정말 눈물과 함께 절로 옷깃이 여미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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