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예수님은 정말로 당신을 사랑하는 이에게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15-04-12 07:04:06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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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신부님의 책 - phdto by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지금 여러분은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에 와 있습니다.

년 배티성지에서 맞이하는 부활대축일은 눈에 보이는 주임신부, 보좌신부뿐만 아니라

사도의 유해가 지키고, 20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회개시킨 성경을 집필했던 복음사가의 유해,

전 세계의 본당신부님들의 주보성인이신 비안네 신부님, 기울어져가눈 교회를 일으켰던 프란치스코 성인, 글라라 성녀, 필로니아 성녀, 그 외에도 많은 성인성녀의 유해가 여러분과 같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

 

초대그리스도교를 깊이 묵상해보면 수난에 대한 체험이 아니라

부활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합니다.

 

믿음은 두 종류인데 교리적인 믿음과 체험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교리적인 믿음만으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교리적인 믿음에 체험을 가미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체험만 있는 믿음은 기복이 되기 쉽습니다.

 

초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체험과 교리를 바탕으로 계승시킨

교회공동체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부활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계승시킨 공동체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말씀으로 산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성사생활을 철저히 지킵니다.

세 번째는 애덕의 삶을 실천합니다.

이 세 가지 특징, 즉 말씀으로 사는 공동체, 성사로 사는 공동체,

애덕의 삶을 실천하는 공동체는 성화됩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에 나오는 부활한 공동체의 특징입니다.

부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가 바로 그리스도교입니다.

 

저는 천주교사제이지만 저의 의사와 상관없이 전국구, 세계구 사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누구보다 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어떤 교구에 들어가면 열정적 사제들이 있어서 교구전체가 살아있습니다.

어떤 교구는 일 년 내내 교구 전체에서 피정 몇 번도 안 합니다.

부활한 모습의 교구가 있고 죽어있는 교구가 있습니다.

 

부활한 모습의 성당이 있고, 죽어있는 성당이 있습니다.

공기가 다르지요~

부활한 성당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따뜻한 공기가 나옵니다.

신자들의 얼굴에는 열정과 기쁨이 넘치지요~

죽어있는 성당이 있습니다.

쳐다보려면 고개가 꺾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성당이지만 찬바람이 나옵니다.

피정 일곱 시간 내내 인상이 굳어져 있어요.

웃어야 할 때 안 웃고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성당에는 대선배이신 주임신부님이 피정지도 사제를 분 전부터

바깥에 나와서 반갑게 맞아주어요.

그러나 죽어있는 성당에는 새파랗게 젊은 신부가 사제관에 있으면서도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습니다.

 

부활한 모습의 성지가 있고, 죽어있는 성지가 있습니다.

신자들은 여러 성지를 다니실 겁니다.

누구나 성령의 바람은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성지에 얼마나 많은 사랑의 숨결이 스며있는지~

 

부활한 수도회가 있고, 죽은 수도회가 있습니다.

부활한 수도회의 수녀님과 수사님들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겸손합니다.

죽어 있는 공동체 작은 공동체 안에서는 온갖 파가 생기고 난리 법석입니다.

땅 가지고, 지위 가지고 싸움질을 합니다.

 

동네전체를 현대판 교우촌으로 만들어내는 살아 움직이는 공소가 있고

할머니 몇 사람만 겨우 나오는 죽어있는 공소가 있습니다.

 

부활한 구역반이 있는가 하면 죽은 교회도 있습니다.

늘 새롭게 부활하는 나 자신이 있는가 하면 늘 시체처럼 살아가는 자신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는 살아 있는 공동체입니까? 죽어있는 공동체입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사람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대개는 두 종류입니다.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준 사람을 잊을 수가 있을까!

반대로 나를 정말 비참하게 지옥까지 떨어뜨린 인간도 있을 겁니다.

내가 저 인간만 안 만났어도 내 인생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오늘 복음에 운명적인 세 사람이 나옵니다.

첫 번째,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루가 복음사가는 그녀로부터 일곱 마귀가 나갔다고 했습니다.

한 마리 마귀가 들어와도 힘들 텐데 일곱 마귀가 들어왔으니~

그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마귀를 예수님이 쫓아내어 주신 겁니다.

창녀인 자기 목숨도 살려주시고 정갈하게 해주신 그분을 어찌 잊을 수가 있으며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오직 예수님을 향한 사랑뿐이었습니다.

 

천하의 죄인으로 비참하게 죽어서 돌무덤에 버려진 예수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습관으로는 사흘 안에 무덤 곁에 갈 수가 없었지요.

 

제자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예수님의 무덤에 가지 못했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사흘째 되는 날, 제일 먼저 찾아갔어요.

자신을 살려주신 그분을 찾아가는데 목숨인들 아깝겠어요?

이른 새벽, 예수님을 찾아간 막달라 마리아는 깜짝 놀랐어요.

예수님이 안 계셨거든요~

 

그것은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체를 빼돌리는 경우와 도둑들이 시체를 훔쳐서 흥정을 하는 겁니다.

이 둘 중에 하나라고 판단한 막달라는 혼자 이 사건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두 번째, 베드로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베드로!

경이롭게도 그는 아직 사도의 지도자였습니다.

소문이 모든 사람들에게 퍼져 있음에도 지도자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어떤 카리스마가 그에게 있었을 겁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을 찾아갑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말을 듣자마자 베드로와 요한은 뛰어갑니다.

 

젊은 요한은 베드로보다 먼저 도착했지만, 들여다만 보았지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베드로는 충동적인 성질이라 바로 무덤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 모습을 보면 둘의 성질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빈무덤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요한은 보고 믿었다~’

놀라는 것은 감성이고, 보고 믿는 것은 지성과 의지입니다.

신앙은 감성만이 아니라 믿는 것이며 감성이 아니라 지성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왜 수건을 잘 개켜놓으셨을까?

저는 이게 초등학교 때부터 의문이었습니다.

그토록 바쁘신 분이 왜 수건을 개켜놓고 가셨을까?

신학교 들어가서 성서공부를 하면서도 그 의문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제로 살아가면서 나름 해석을 해 보았지요.

한마디로 예수님은 떠나면서도 뒷정리를 깨끗이 하는 뒷정리의 달인이셨던 겁니다.

 

은총을 받은 사람은 흥분하기 쉽고 감성적이 되기 쉽습니다,

이 감성을 다잡는 것은 지성이며 교리적인 믿음입니다.

복음에는 부활이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에서도

예수님은 수건을 잘 개켜놓았다고 쓰여 있습니다.

 

은총을 받은 사람은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사랑의 역할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목숨을 내놓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당신의 목숨을 내어놓습니다.

처음으로 부활을 믿은 자는 예수님이 사랑했던 사도요한입니다.

예수님은 진심으로 믿는 자에게 당신 엄마를 맡기십니다.

나대신 아들노릇 해라!’

엄마, 오늘부터 요한을 아들로 의지해서 살아가세요.’

실제로 요한사도는 성모님이 에페소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지켜드립니다.

 

예수님은 진심으로 당신을 믿는 자에게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예수님을 찾았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다른 복음을 보면 마리아는 예수님을 동산지기인 줄 압니다.

 

사랑이 있으면 배우지 못했어도 예수님을 압니다.

비록 치매에 걸렸다 하더라도 성호도 긋고 기도문은 안 잊어버립니다.

비록 아들은 못 알아보아도 예수님 이야기가 나오면 웁니다.

사랑이 있으면 어떤 장애가 있더라도, 아름답게 살지요.

사랑은 위대한 해석가입니다.

 

부활 대축일 지내면서 부활 중에 가장 큰 부활은 사랑의 부활임을 명심합시다.

주님은 년 전에 이미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년 전, 한 번의 부활로 족합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이 아니라 우리자신의 부활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체성사는 예수님 최후의 만찬 미사부터 년 동안

매일같이 미사를 드릴 때마다 예수님의 몸으로 만들어집니다.

 

사도요한은 빈 무덤을 보고 믿었다~’

빈 무덤을 보고 믿기는 쉽지 않습니다.

충만한 것을 보고 믿기는 쉽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믿는 것은 어렵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거룩한 땅에 초대되셨습니다.

미사를 드리는 이곳에는 년 동안 예수님의 숨결과 설교를 들었던 사도의 유해와

복음사가, 많은 성인성녀의 유해가 지켜보고 계십니다.

오늘 이곳에서 부활대축일미사를 드리는 것을 감사드립시다.

 

믿음은 감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성이 필요하다는 것!

하느님께 고백하며 거룩한 미사의 은혜를 청합시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 (2015. 04. 05 예수부활대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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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릭스1254 (2015/04/12 11: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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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장미♡모바일에서 올림 (2015/04/12 15: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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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예수님빵주세요모바일에서 올림 (2015/04/13 00: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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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백발 (2015/04/13 09: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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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신부님강론말씀너무감사합니다,신부님영육간에 건강하시고하느님의은총이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머슴사랑 (2015/04/13 16:3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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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말씀 너무좋아 끝부분을 지인들고 공유하렵니다.

고맙습니다.영육간에 건강하십시요.

  
  김성숙 마리아모바일에서 올림 (2015/04/15 1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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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아지세 (2015/10/27 14: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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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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