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은총의 밤... Come and See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0-03-09 21:38:45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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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오늘은 1월이라 은총의 밤에 많이 오셨네요.

여러분들, 남자가 더 질투가 심한가요? 여자가 더 심한가요?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요.

남자들한테 물어보면 당연히 여자 질투는 못 당한다 하고, 자매님께 물으면 반대죠.

경우에 따라서는 남자들의 질투가 여자들을 질투보다 더 강할 수가 있어요.

저는 사제로 살면서 질투를 느낄 때가 딱 한 경우! 언제냐?

나보다 겸손한 사람을 만나면 질투가 나요.

왜? 내가 겸손 하질 못 하니까. 제일 힘든 것이 겸손입니다.

이제 몇 년 지나면 사제로 산지 40년이 되는데도 그 겸손이라는 화두와 싸워야 되요.

그래서 신자든 사제든 수도자든 몸에서 겸손이 우러나오는 분을 보면 괜히 짜증납니다.

신학 공부를 한 사람도 아니고, 어디서 저런 겸손을 익혀 온몸에서 우러나올까?

전 저보다 잘 생긴 영화배우에게는 질투 안 해요.

내가 질투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뿐입니다.

그런데 이 겸손도 보면 색깔이 다 달라요.

이 양반은 이런 쪽으로 겸손이 꽉 찼구나!

또 어떤 분을 뵈면 내가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겸손인데, 또 하나의 겸손을 배우는구나!

이런 질투는 질투라도 남에게 상처를 주는 질투가 아니죠?

 

세례자 요한이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그럽니까?

본인을 메시아로 알고 따랐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지나가시니,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 가신다.’

요한은 그렇게 이야기함으로 제자들이 자기를 포기하고 예수님께 갈 것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이리 질투가 없을 수 있을까?

자기를 구세주로 알고 따르던 제자들을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겸손이었습니다.

 

인간의 욕망에 소유욕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중 제일 무서운 것이 사람소유욕입니다.

내 편을 만들어야 되죠,

동그랗게 금을 긋고 ‘이 안에는 내 사람이야, 때 되면 먹을 것 줄게, 고마워해야 돼’

사람에 대한 소유욕이 강한 사람은 대부분 본인이 외롭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에요.

혼자여도 늘 자유인이 있는가 하면,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외로워하는 사람이 있죠.

 

요한은 소유욕으로부터의 해방, 그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상남자 중의 상남자 예요.

무엇을 남자답다고 합니까?

힘이 센 거? 회식자리 가서 팍팍 쓰는 거?

아니지요.

 

최고자리에서 차석자리로 떨어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만 안 나타났으면 세례자 요한을 다 메시아로 알고 있었어요.

다 받들어주고 있었죠.

그런데 6촌동생인 예수님이 나타나니, ‘가라! 저분이 너희들이 찾던 메시아다’

세례자 요한은 어중간하게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헷갈리게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저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는 저 분의 종중의 종이요, 저분은 하느미의 어린 양이다.

내가 너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이제 끝났다. 너희들이 찾던 그 메시아가 바로 저분이다.’

요한은 예수님이 나타나자 사람들도 하여금 예수님을 따르게 하는

그 자세 이외는 다른 어떤 사심을 가질 수 없었던 겁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이 나타난 이상 이런 말 저런 말로 본인 자신을

들어 높이기 위하여 허세 떠는 말을 다 필요 없었던 겁니다.

‘가면 돼. 나는 저분을 기다렸던 저분의 종이요, 길을 닦는 사람이야.’

이렇게 요한은 아끼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는 결단을 보이며 등을 떠 밉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의 두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보면 정면으로 직접 예수님께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높으신 분은 앞장서고, 늘 두세 발 뒤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예수님을 따라 갑니다

그때 예수님이 뒤돌아보시면서 오히려 반대로 그 두 제자에게 다가오십니다.

 

늘 내게 첫걸음을 내디디시는 쪽은 예수님이십니다.

언제나 손을 내미는 쪽은 하느님 쪽입니다

우리가 걸어서 예수님께 가면 예수님은 나를 향하여 뛰어 오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향하여 뛰어가면 그분은 우리를 향하여 날아오십니다.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하느님 쪽에서 먼저 인간을 사랑하시는 종교요,

하느님이 먼저 사람에게 다가서는 종교’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스스로 당신에게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팅 성인은 ‘하느님 쪽에서 먼저 우리를 찾지 않았다면 우리는 과연 하느님을 찾을 수 있었을까?

 그 분의 그림자라도 볼 수나 있었을까?’하십니다.

오늘 이 은총의 밤에도 여러분 각자각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찾아가실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다가오셔서 두 제자에게 인생의 가장 근본이 되는 질문을 하십니다.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너희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

이 질문만큼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나는 무엇을 바라고 살아가고 있는가?’

‘내 인생에서 찾으려 하는 것의 궁극 목표는 무엇인가?’ 묻습니다.

 

이 세상에서 안전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 안정된 지위, 충분한 돈.

그게 절대로 잘못된 목적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보다 낮은 목적이지 인생을 걸기에는 합당치 않은 목적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출세’ 라고 부르는 것을 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개인적인 야망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분명히 나쁩니다.

이웃에게 봉사하겠다는 동기에서 시작된 갈망이라면 그건 높은 목적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이 세상에서 평화를 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바라는 목적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만족시킬 수 있고 충족시켜줄 수 있는 그러한 목적입니다.

 

멀찍이 서서 두렵고 어려워서 예수님께 오지도 못하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은 뒤돌아서서

오히려 그 제자 쪽으로 가시어 던지신 첫 번째 말이 뭐라구요??

‘너희들이 나에게 바라는 게 무어냐?’

성체가 여러분의 입 안에 녹아들어 가시면서 여러분에게 물으실 겁니다.

‘마리아야, 루시아야, 베드로야, 요셉아, 오늘 너희들이 나한테 바라는 게 뭐냐?’

좀 전에 얘기한대로 ‘이 세상 그냥 안전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출세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가장 듣기 좋고 예뻐하시는 말이 뭘까요?

자, 여기에 대한 답을 제자들이 뭐라 그랬죠?

랍비! 스승님 이라는 뜻입니다

‘당신이 어디 계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랬어요.

 

그렇게 물을 때 돈을 달라고 하든지 뭐 확실하게 이야기를 하지 엉뚱한 대답을 하죠.

하지만 엉뚱한 얘기가 아니었지요.

예수님이 어디 계시는지 아는 것이 바로 첫 단추입니다

예수님 계신 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우리는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 나갈 수 없죠.

당신이 어디 계시는지 알고 싶다는 이 말은 그냥 무심히 길에서 지나치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한번 걸어보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을 풀이하면 이겁니다

‘주님, 지금 주님의 질문에 대하여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어디 있는지 과연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잘 사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런 두 제자에 답에 예수님은 화답을 합니다.

‘와서 보라!’ ‘ Come and See’

본 다음에 와라가 아니라 와서 봐라.

그대는 과연 지금 해결하고자하는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알기를 원하느냐?

그러면 와서 함께 고민해 보자,

그 고민을 우리들은 기도라고 그럽니다.

그분 앞에 무릎 꿇으면 ‘이야기 해봐. 너의 가장 힘든 거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거야’

오너라, 와서 봐라. 함께 생각해보자.

 

오늘도 오라하시어 여러분들은 은총의 밤에 초대되어 오신 겁니다.

아까 촛불봉헌하기 전에도 제가 얘기했죠?

여기 오게 된 동기는 다 다를 것이다.

여러 해 전부터 당연히 첫 토요일은 가야되는 걸로 알고 오시는 분도 있고

친구가 가자가자 해서 유세 떨면서 폼 잡으면서 오신 분도 있고

어떤 분은 부인한테 잘 보이려고 기사노릇으로 온 분도 있습니다.

아까도 보니 두 분이 시동 걸도 그 안에 계시 길래 가서 두드렸어요.

‘형제님, 여기 왜 계세요? 어차피 못 버티세요. 몇 달 못가요. 지금 들어오시죠.’

지금 저 중간에 앉아계시네요.

제가 감곡부터 은총의 밤을 했는데, 부인기사로 왔다 오신 분 많아요.

 

예수님의 초대로 오늘 여러분들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 은밤 중에 나한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와서 봐라’

아마 여러분들이 오늘 알고 싶은 것,

그리고 이 세상 살아가면서 안개처럼 선명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답을

오늘 이 미사가 진행이 되고, 성체가 여러분 안에 들어오시고, 성인들의 유해를 친구하고

 사제의 안수를 받을 때, 확실하고 선명하게 그 답이 떠오를 겁니다.

 

2020년 이 첫 번째 은총의 밤, 저는 늘 그랬지만 더 힘주어

오늘 이 사제의 입이 예수님의 입으로 변하길 간절히 청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귀가 최후의 만찬 때 주님의 곁에 있었던 열두 제자의 귀가 되고,

산상 설교할 때 귀를 쫑긋하고 예수님의 진복팔단을 들었던 그 수많은 선한 백성의 귀가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들이 봉헌하는 미사성제와 또 거룩한 성시간을 통하여,

주님께서 올 한 해 동안 우리들이 무엇을 붙들고 무엇을 고민해야 되고 무엇과 싸워야 될지,

그래서 종이 아니라 자유인이라고 하는 바오로 사도의 그 가르침대로

자유인이 되는 길을 알려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2020년 1월 은총의 밤(01/04)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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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20/03/10 08: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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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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