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신약의인간과 구약의인간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19-12-20 05:15:31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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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오늘 좀 춥죠? 영하 10도까지 떨어졌는데, 다른 데보다는 더 춥습니다.

 

황당한 얘기를 하나 할까요?

보좌신부가 없는 본당은 사람들이 많이 오면 수녀님들도 성체를 분배해야 될 때가 있지요.

그런데 어느 시골본당에 신부님과 수녀님이 같이 성체를 분배하는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신부님 줄에는 안서는 거예요. 수녀님 줄에만 길게 서고.

아 그래서 왜 그런가? 성체를 주면서 혼을 내키나?

그런데 진상을 알아보니까 그게 너무너무 웃기는 거여.

평소에 신자들이 신부님을 볼 때 마다 꼭 오른손가락 가지고 코딱지를 후비는 거여.

그 오른손으로 성체를 주니 신부님 줄에 섰다가도 수녀님 줄로 가더라는 거야.

몰라요. 누가 꾸며낸 얘긴지.

 

여러분들도 사람에게 한 순간에 실망하는 경우를 겪어보셨죠?

내가 초등학교 때 교생을  엄청 좋아했던 것 같아요. 교생도 나를 예뻐해 줬고.

어느 날 그분이 막 웃으시는데, 바깥쪽 이빨 사이에 진짜 큰 고추 가루가 끼어 있는 거야.

그 어린 나이에도 상처를 받습디다.

완벽한 사람으로 알았는데, 고추 가루가 끼어 있는 것을 보는 순간에 순식간에 싫어져요.

여러분은 그런 경우 없었어요?

 

내가 왜 이 얘기를 하느냐? 공인이 정말로 조심해야 되겠다는 애기를 하려고.

공인은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돼요.

 

오늘 복음을 보면 세례자 요한이 정말 많이 흔들리는 모습이 나와요.

불안에 떠는 모습이 나와요.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이 나와요.

세례자 요한은 지하 감방에 갇혔습니다. 왜 갇혔습니까?

헤로데 안티파스가 로마에 있는 자기 동생 집을 방문했다가 제수를 겁탈했어요.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조강지처와 이혼하고 동생에게서 뺏은 제수와 결혼을 해요.

온 백성이 다 알아도 헤로데가 무서워서 아무 말을 못할 때 세례자 요한은 회개하라하지요.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감옥에 갇힌 거죠.

 

요한은 감옥에 갇히기 전에 어떠한 삶을 살았습니까? 그야말로 자유인.

광야 출신이에요. 넓고 탁 트인 광야에서 맑은 바람 호흡하고 하늘을 지붕 삼아 살던 사람.

메뚜기, 벌꿀을 먹고, 낙타 털옷을 입고 자유롭게 살던 그 사람이

햇빛도 안 드는 지하 감방에 갇혔으니, 답답했을 지 상상만 해도 알 거에요.

 

나도 옛날에 두 달 정도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어요.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목사 두들겨 패서요. 목사가 성모님께 쌍욕을 했거든요.

독방에 두 달 있는데 미치겠습디다. 합의도 안되고..

 

지하 감방에서 세례자 요한이 얼마나 죽음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을까 짐작이 가요

아무리 대가 센 세례자 요한이었지만 그러한 환경 속에서 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실 요한은 자기 존재가 메시아를 예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죽는 거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불안했던 것은 뭐냐? 답답함에다가 불안함이 더해져 힘들었는데,

요한은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주었던 예수가 정말 메시아인지 헷갈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리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든 거예요. 그래서 제자들을 보내서 묻게 합니다.

‘당신이 정말 메시아냐?’ 다시 말해서 조바심의 질문을 해요.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줄 때는 ‘이분은 내가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는 분’이라고 분명히 선언했건만,

감옥에 갇히니까, 우울증도 올 수도 있고,  사람에 대한 불신도 생기고. 이러다 보니까 조바심의 질문을 자꾸 던지죠.

 

사실 요한이 광야에서 했던 메시지는 심판의 메시지였죠.

요한은 길을 닦아 놓으면 예수님이 오셔서 확실한 심판을 할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하고 다니시는 얘기를 감옥에서 들으니 심판이 아니야.

죄인들과도 어울리고 다니고 병 고쳐지고, 마귀 쫓아내는 일만 하지, 악의 뿌리를 뽑는 것 같은 느낌이 안 드는 거예요.

내가 이 정도 예비해 놓았으며, 저 분이 와서 끝장을 내리라 생각했던 거죠.

언제 그 예수가 행동에 옮길까, 언제 원수를 멸망시킬 것인가?

그렇지만 예수님의 생각을 달랐습니다.

요한은 두 가지를 선포했어요.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심판을 선포했어요.

예수님도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했지만, 하느님의 뭘 선포했습니까? 사랑을 선포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요한의 제자들에게 본인이 메시아라는 말은 한마디도 않으시고,

너희들이 본대로 전하여라. 본 것의 내용이 뭐에요?

첫 번째가 치유. 소경이 눈을 뜨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거리가 듣고 죽은 이가 다시 살아난 것.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치유는 육신의 주인임을 전하여라.

두 번째는 기쁜 소식이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전하여라.

그래서 가난에 찌든 그들이 희망과 기쁨을 가지고 사는 너희들이 본대로 전하여라.

다시 말하면, 영혼의 주인이심을 전하여라.

 

그러시면서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자는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떼로 몰려와서 다시 확인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 쪽에서도 서운한 마음이 드셨어요.

그렇지만 또 요한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셨죠. 감옥에서 얼마나 몸과 마음이 고생을 할까?

그 생각을 하면서 군중들에게 요한을 들어 올려주죠.

“사람의 몸에서 난 사람 가운데 요한만큼 위대한 사람은 없다.”

요한은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다. 광야에서 살던 요한이 사치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그러고 나서 또 바로 내려뜨립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라도 요한보다는 클 것이다.”

 

런데 신약의 우리보다 세례자 요한이 무엇이 모자라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아시다시피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이고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메시아를 예비하는 자이지만 어디까지나 신약의 인간이 아니라 구약의 인간이에요.

신약의 인간과 구약의 인간은 차이가 커요.  

그 이유는 세 가지의 신비를 요한은 모르기 때문이에요.

첫 번째, 십자가의 신비를 세례자 요한은 몰라요.

요한은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움을 알고 선포하였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할 수 없었어요. 십자가의 신비를 몰라요.

두 번째로 부활의 신비를 세례자 요한은 몰라요.

요한은 예수님의 부활을 못 보았어요. 그러나 우리들은, 신약의 인간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우리들도 부활할 것을 믿죠.

세례자 요한은 부활이라는 개념조차 모르고 죽었어요.

세 번째로 복음의 신비를 몰랐어요.

요한이 전한 메시지는 멸망의 경고였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였죠.

세 가지 신비의 내용은 거룩하심과 심판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라고 하는 신비죠.

 

이론상으로는 우리가 세례자 요한보다 훨씬 위대합니다.

아브라함보다도, 이사악보다도, 야곱보다도, 그리고 세례자 요한보다도 위대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삶이 지금 얘기한 십자가의 신비, 부활의 신비, 복음의 신비를 느끼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몸뚱이는 신약에 살지만 여전히 구약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정리해봅시다.

세례자 요한의 오늘 상황, 왜 제자들을 보내 예수님을 확인하고 싶었던 가를 이해가 되죠?

예수님은 메시아라는 것을 바로 말하지 않고

 ‘본 것을 전하여라. 내가 치유시킨 것 보지 않았느냐, 말씀 듣지 않았느냐’ 그 두 가지를 전하라.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위대한 사람이지만,

이제 내 말을 듣고 지키는 신약의 백성들이 세례자 요한보다 훨씬 더 위대해질 거다.

조금 전에 얘기해 드린 대로 세례자 요한은 십자가의 신비도 몰랐고, 부활의 신비도 몰랐고,

하느님의 메시지 내용이 심판만이 아니라 심판보다 더 큰 사랑과 용서라는 것을 모르고, 살로메의 춤에 목이 짤렸어요.

 

오늘 복음에서 마지막으로 명심해야 될 것이 있다면,

내가 세례자 요한보다 더 위대한 신약의 인간이라는 자부심도 가져야 되지만,

거듭 강조했듯이 몸뚱이는 신약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마인드(mind)는 구약의 인간처럼 살아간 적은 없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구약의 인간들은 자기네들은 죄인이라기보다는 의인 쪽에 속해 있다고 착각을 해요.

또 구약의 마인드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늘 혀를 다스리지 못해요.

그리고 주님이 내 곁에 계시는, 주님의 임재하심에 대해서 늘 거부하고 부정해요.

 

예수님이 우리를 신약의 백성들로 들어 올려 주셨어요.

그 칭찬에 걸 맞는 삶을 살고 있는지, 또 그렇게 못 살았다면 그것을 회개하는 시기가 바로 대림시기요,

고해성사의 내용이 되어야 될 것임을 명심하도록 합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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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19/12/20 09: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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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펠릭스1254 (2019/12/20 10: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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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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