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18-05-17 14:01:37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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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동순례지성당 - photo by - 느티나무 신부님
 

 

+ 찬미예수님

오늘 입당성가(414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를 들으며 들어오는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렸어요.

성가도 그 내용을 보면 참 아름답고 가슴에 와 닿는 것이 많아요.

 

“사랑합니다.”

어색하세요?

여러분들 1년에 사랑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세요?

 

사랑에는 에로스적인 사랑, 아가페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에로스적인 사랑은 정(情)의 사랑이고 아가페적인 사랑은 의지의 사랑이에요.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나도 그 사랑을 되받고 싶다가 바로 에로스적인 사랑입니다.

여러분 부부 사이에, 고부지간에, 같은 형제끼리 상처를 왜 받습니까?

상처받을 때 보면 법칙이 있어요.

내가 베푼 것을 되받지 못할 때 무언가 서운해요

물론 다는 아니어도 5를 주면 1이라도 주어야하는데 1은커녕 받은 것도 몰라요.

그러면 이 때 서운한 씨앗이 하나 떨어져요.

그런데 이 씨앗은 물도, 비료도 안줘도 잘 자라요.

그 서운함의 씨앗에서 미움의 싹이 비집고 올라와요.

그 미움의 싹에서 분노의 줄기가 올라오고, 줄기 끝에 무관심이라는 열매가 맺어요.

무관심은 성서적으로는 영적 죽음, 나아가 영적 살인을 의미해요.

한 집안에 살면서도 식탁보 보듯이 관심이 없습니다.

 

준 것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에로스적인 사랑은 한계가 있어요.

어릴 때는 엄마사랑에 만족하던 자식이 그 사랑에 만족하지 않고 짝을 만나 떠나요.

그리고 둘째로 에로스적인 사랑은 불확실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동시에 죽을 수 없어요.

나는 너밖에 몰라 했던 사람이 한 순간에 배신하고 신의가 다 깨져버립니다.

이런저런 이유들이 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어요.

 

이렇게 한계가 있고 불확실한 에로스적인 사랑을 극복을 하는 방법이 뭘까?

이미 답은 나와 있어요.

줄 때부터 받을 생각마세요.

그냥 늘 주면서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세요.

그 사람한테서 고맙다는 말 못 들어도 그 빈자리는 하느님이 채워주십니다.

이 빈자리를 채워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 입에서 나오는 그 무엇과도 비교가 안돼요.

사람 입에서 나오는, 내 귀에 쏙쏙 들어가는 그 달콤한 말은

안개처럼 해 뜨면 사라지고 손에 쥐어도 물처럼 빠져나갑니다.

 

믿거나 말거나인데 보좌들이 제일 살고 싶은 신부님이 나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나는 최선을 다해서 보좌신부님을 편하게 해주고 취미생활하면 도와주려도 애써요.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도와줬는데 다른 본당 가서 축일에 전화도 없어.

‘이놈 괘씸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애초부터 못 도와줘요.

어차피 내리사랑이에요.

나중에 본당 신부되면 보좌에게 이렇게 해야겠구나하는 것을 깨달으면 충분해요.

 

되돌아올 것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요

줄 때부터 조건을 걸지 마세요.

조건을 달기 시작하면 자꾸 상처가 쌓아요.

무조건 주는 걸로 행복하세요.

그 빈자리는 하느님께서 채워주십니다

하느님이 채워주시는 그 사랑을 아가페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의지의 사랑입니다

에로스적인 사랑은 괜히 좋은 정(情)의 사랑이지만

아가페적인 사랑은 기를 쓰고 마음을 정리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주겠소, 아무 조건 없소’

하느님의 사랑이 바로 그것입니다

모든 것 다 주시고도 보채는 아이 계속 주세요.

하느님이 우리 사랑하면서 조건 걸었습니까? 그런 적 없어요.

오늘 복음에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사실은 사람들끼리 아가페 사랑을 하는 것도 힘들고 용서하는 것도 힘들어요.

하지만 주님이 나를 사랑하고 용서하신다는 믿음이면 사랑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어요.

 

여러분 고해소에서 용서받기를 원하면서 들어가시죠?

그런데 만약에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해주지 않으면 얼마나 서운할겁니까?

내 죄가 진홍색처럼 붉어도 겸손되이 하느님께 고백하면 주님은 그 죄 다 사해주십니다.

 

오늘 주님은 아주 중요한 원칙을 말씀하십니다.

무조건 첫 마디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앞에 어떤 말이 붙습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그 어마어마한 하느님의 자비를

든든한 백으로 살아갈 때는 우리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말을 하신 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냥 앞에 아무 말 없이 ‘서로 사랑해라’했다면 어떻게 사랑해야할지 모릅니다.

사랑하면 손해 보는 것 같고 바보 되는 것 같고,

저놈은 사랑하는 법도 모르고 당연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더 안 주냐고 보채기만 하고 내 속은 썩어 들어가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너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여라.’

그리고 저 사람에게서 돌아오는 것이 없어도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위안을 받고 위로를 받아라.

 

“신부님 말은 쉽죠, 신부님은 조건 없는 사랑을 줘 본적 있으세요?”

그렇게 살려 애를 써요

하루하루를 마지막으로 ,내 마지막 본당으로 알고 살고 있어요.

 

우리 인간에게 조건 없는 사랑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할 수 있다 이겁니다.

 

옛날에 기찻길 옆에는 아이들이 많은 가난한 집들이 많았어요.

그러니 등에다 업고 앞에다 안아도 애들 몇은 기찻길에서 놉니다.

하루는 엄마가 밖을 보니 기차가 들어오는데 둘째가 아직도 그냥 기찻길에 앉아있는 거야.

엄마는 어떻게 해요? 뛰어나가죠, 맨발로 뛰어 나가요.

뛰어나가서 아이를 밀쳐요 그리고 엄마는 그 무거운 기차에 깔려 죽어요.

엄마가 아이를 밀쳐내고 기차 속으로 뛰어들 때 얼마나 아플까 생각합니까?

생각 안 해요.

내 새끼니까 아무 조건 없이 뛰어들어요.

이게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어느 본당부임 후 첫 주일미사에 화상으로 얼굴이 망가진 자매님이 첫줄에 앉았어요.

그 옆에 아이 둘이 앉아 미사시간 내내 엄마를 물고 빨아요.

화상 때문에 눌러 붙어 흉악해진 얼굴을 만지고.

미사 후 사연을 들어보니 애들이 꼬마였을 때 집에서 불이 난거야.

부모들은 일보러 나갔다오니 소방차가 오고 난리가 났는데 가서보니 우리 집이야.

아이 둘은 안에서 자고 있는데.

그 때 엄마는 뛰어든 거예요.

자기는 머리카락에 불이 붙어서 온 몸에 번졌는데, 양 팔에 애 둘을 끌고 나온 거예요.

처음에 아이들은 크면서 엄마를 괴물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사실을 말을 해주었고, 아이들은 엄마에게 용서를 청했대요,

그리고 엄마의 그 흉측한 괴물 같은 얼굴이 나를 살린 것이라고 생각했죠.

엄마는 불 속을 뛰어들 때

아무 생각 안했어요, 아무 조건을 붙이지 않았어요.

이것이 바로 아가페 사랑이에요

 

이 두 엄마는 자기 자식이니 그럴 수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피도 살도 안 섞인 사람을 대신해서 죽는 사람들이 있지요. 많아요.

 

2차 세계대전에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는 한 사람이 탈출하면 10명을 죽였어요.

그런데 한 명이 탈출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교도소장은 10명을 끌어냈죠.

교도소장이 콜베 신부님 옆에 사람을 쿡 찌르면서 ‘너 나와’하는데

이 사람이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그 때 콜베 신부님이 “제가 대신 죽겠습니다.”

“넌 뭐하는 놈이야?”

“전 천주교 신부입니다. 이 사람을 살리고 저를 죽이십시오.”

“허허 신부 값 하려고 그래? 대신 죽어라”

소장은 10명을 물과 음식을 일체 주지 않고 굶겨 죽이도록 감옥에 계속 가둡니다.

콜베 신부님은 죽어가는 사람 마지막까지 영적으로 케어를 합니다.

하느님을 원망하고 저주할 때마다 신부님은 기도하며 천국이 가까워졌다고 위로합니다.

9명을 다 천국으로 보내고도 신부님은 살아있자 결국 독살을 시킵니다.

그분은 성인이 되셨어요.

 

자식 죽인 살인범을 수양아들로 삼고 옥바라지 하는 사람도 저는 보았어요.

피도 살도 안 섞인 것을 넘어 원수인데도 불구하고 아가페 사랑을 실현합니다.

 

우리 인간 역사에는 참으로 어두운 부분도 많지만

아무런 조건을 붙이지 않고 남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의 선한 역사도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겁니다.

다 못된 사람만 많은 것이 아니라 정말 선하고 착하고 아무 조건 없이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많아요.

 

오늘 주님은 우리가 하느님의 선택받은 자임을 잊지 말고 열매를 맺으라 하십니다.

가지가 줄기에 붙어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파리만 무성해도 안 되고 반드시 열매가 열려야합니다

사과나무에는 사과 열매가 마지막 목표입니다

꽃은 폈는데 열매가 맺지 않는다면 주인은 곧 나무를 벨 것입니다

어차피 과일을 얻으려고 심은 나무입니다

 

신앙의 나무에 신앙의 열매가 맺어져야 합니다.

그 신앙의 열매는 서로에게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조건 없이 베풀 때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을지라도

하느님은 그 빈자리를 반드시 채워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기쁨이요 평화입니다

 

저는 교우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사목을 해 왔습니다.

아무리 힘든 곳에 가더라도 저는 조건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기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교우들을 위하여 조건 없이 목숨도 바칠 수 있습니다.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기억합시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아멘

 

♣2018년 부활 제6주일, 생명주일(5/6)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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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모바일에서 올림 (2018/05/17 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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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백발 (2018/05/18 08: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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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합니다,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8/05/18 14:5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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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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