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사제들의 영적 무기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1-07-16 14:53:30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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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6, 7 – 13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오늘이 초복이죠?

온몸을 다 바쳐서 우리들의 건강을 챙기는 닭들을 위해 잠시 묵념~.

오늘 점심은 삼계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둘씩 짝을 지어 파견하십니다.

제가 생각할 때 오늘의 파견은, 뭐랄까 교생실습 나가듯 한번 나가봐 라고 하셨을 것 같아요.

그리고 권한을 주셨다고 했죠.

받은 권한과 믿음을 갖고 사람들에게 나가서 한 번 부딪쳐보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을 갖고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고쳐주었다 나옵니다.

 

사실 오늘 복음은 사제들이 듣고 깨달아야 하는 복음입니다.

은퇴를 앞둔 사제로서 오늘 강론을 준비하면서 저는 동료 사제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강론을 교우들뿐 아니라 사제들, 특히 젊은 사제들이 듣기를,

더 나아가서는 신학교에 있는 신학생들이 좀 많이 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강론을 준비했습니다.

왜 젊은 사제들이냐 하면, 나이가 들으면 많이 굳어져 있죠.

저도 유연하게 살려고 애썼지만, 신자들이 볼 때는 굳어진 부분이 있을 거예요.

젊은 사제들이 앞으로 사제 생활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또, 교우들은 이 강론을 들으면서 사제들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주 오래전, 70년대죠?

저는 신학교에서 두 가지의 확신을 갖고 사제라는 목표를 향해 살았습니다.

첫 번째 확신은 성소에 대한 확신입니다.

내가 사제직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선택하여 신학교에 들어왔다 생각,

이 생각이 흔들려 버리면 신학교에서 못 버팁니다.

‘내가 일이 없는데, 어디 가면 신부가 되나?’라는 생각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제가 성소를 받게 된 동기를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길을 저는 갔습니다.

그것은 내 의사가 아니라, 마치 열두 제자를 예수님께서 시험을 친 후 부르신 것이 아니라,

‘따라오너라’ 하는 말 한마디로 부르셨듯이,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나를 부르셨습니다.

‘나는 사제가 될 것이다.’라는 이 확신이 첫 번째 신학교에서 나를 버티게 했던 믿음입니다.

 

두 번째는, ‘세월이 지나면 사제는 분명히 될 것인데, 과연 사제가 되어 그 양들을 내가 어떻게 이끌어야 하나?’

생각만 해도 두려웠습니다.

교우들보다 잘난 것도 없는데도 사제라는 것 때문에 어느 때는 어른 노릇도 해야 하고,

어느 때는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방향을 제시해야 할 텐데, 과연 사제로 바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이 험악한 세상에서 목자가 양들을 늑대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까?

또, 사제인 나 자신도 사제직을 죽을 때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당연히 들었겠죠.

그랬을 때, 저한테 왔던 확신은 사제가 되어 세상에 파견하실 때절대 빈손으로 보내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빵이 아니라 총과 총알입니다.

총과 총알은 나를 지키고 적을 물리치는 도구입니다.

사제가 본인 자신을 지키고 신자들을 지키고 교회를 지켜낼 수 있게, 즉 영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반드시 무기를 주시고 사제로 생활하게 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확신이 드는 순간, ‘그래, 지금 이 긴 시간은 신학교에서 성소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사제직에 대한, 앞날에 대한 것도 주님께서는 분명 준비해 놓으셨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이 두 가지, 첫 번째 성소에 대한 확신, ‘내가 하느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나를 선택하셨고 이 때문에 내 쪽에서 배반하지 않으면 나는 반드시 사제가 될 수 있다.’라는 확신과

두 번째 사제로 이 세상에 파견하실 때 절대 빈손으로 내보내지는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제가 되면 사제에게 합당한 무기를 주실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절대로 이 세상에 파견하시면서 빈손으로 내보내지 않고,

어둠과 싸우고 양들을 구해내는 강력한 영적 무기를 주시며 파견하리라는 것을 의심한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 영적 무기는 예수님의 구원 사업의 협력자로서 반드시 필요한 무기입니다.

공부하여 자격증 시험 보고 받는 것이 아니라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당신의 권한으로 주신 것입니다.

권한을 받는다는 것은, 그 권한을 시행해야 할 의무가 있고, 실천해야 할 의무가 있고, 유지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권한의 내용이죠. 힘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권한, 세 가지 영적 무기를 주신다고 성서에서는 알려줍니다.

첫 번째는 치유시키는 능력입니다. 모든 사제에게는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두 번째 마귀를 떼어 내는 구마의 능력을 주십니다.

세 번째 말씀 선포의 능력을 분명히 주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치유와 구마와 말씀 선포의 능력은 완제품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씨앗만 뿌려줍니다.

서품받을 때, 어느 사제든 이 세 가지 능력의 씨앗을 받고 사제가 됩니다.

하지만, 씨앗만 뿌린다고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 아니죠.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주변 풀도 뽑아 주어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은 사제들의 몫입니다.

치유, 구마, 말씀 선포의 씨는 하느님이 공평하게 모든 사제에게 뿌리지만,

그것의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따서 그 열매가 본인을 지키고 교우들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는 울타리가 되게 하는 것

사제 본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능력을 품고 있는 정말 귀중한 씨앗이라도 가꾸지 않으면

성서 말씀대로 새가 와서 먹든지, 타버리든지, 밟혀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습니다.

 

이 세 가지의 능력을 보이는 사제는 비단 성령 운동을 한 신부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체험을 많이 하고 살아가는 사제들에게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느 사제에게나 서품받을 때 이 세 가지의 능력의 씨앗은 떨어집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말 많은 신부님이 그 능력을 받았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오늘 같은 복음으로 강론할 텐데, 신부님들은 무어라 강론하시렵니까?

오늘 복음은 사제에 대한 복음입니다.

사제가 예수님에게 무엇을 받았고, 그것을 제대로 쓰고 사는지 본인이 신자들 앞에서 신앙 고백하는 강론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제가 그런 어마어마한 능력을 받았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어느 때는 답답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너무나 당연하게 알게 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파견할 때 ‘너희가 알아서 해’가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오늘 ‘권한을 주셨다.’라고 나옵니다.

 

병 고치는 능력, 마귀 떼어 내는 능력, 말씀 선포의 능력을 주셨다고 성서 여러 곳에 분명히 나오는데,

왜 신부님들은 거기에 대한 확신이 없을까?

왜 뜨겁게 살지 못할까?

그 세 가지 무기만 있으면, 원자탄이 두렵겠습니까? 미사일이 두렵겠습니까?

얼마든지 본인과 교우들과 교회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닙니다.

 

가끔 어느 신자들이 하는 말, 피정 후 강의하셨던 신부님께 안수 청하면,

본인은 오웅진 신부님이나 김웅열 신부님처럼 안수해도 안 쓰러지니 본인에게 받을 필요 없다고 하신대요.

그런 소리를 들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쓰러트리는 것이 무슨 안수의 효과예요?

물론 농담 반 진담 반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오웅진 신부나, 김웅열 신부에게만 치유와 구마와 말씀의 은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제에게 다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신부님은 교우들이 안수 청하면 부담스러워하시는 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안수는 선택이 아닙니다.

양들이 목자에게 ‘신부님, 예수님처럼 제 머리에 손을 얹어서 축복 좀 해주세요. 치유 기도해 주세요.’ 하면,

이것은 의무입니다.

안수를 주고 안 주고 자기 선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파견된 모든 사제는 반드시 신자들이 안수를 청하면 해주어야 합니다.

안수는 사제에게 주어진 선물이요교우들을 향한 의무입니다.

 

저는 정말 많은 사제가 본인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이고 사제서품에 얼마나 엄청난 능력을 받은 존재인지 깨닫기를 기도합니다.

본인에게 주님이 주신 그 권한이 얼마나 큰지 깨닫기를 바라면서 늘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영적인 능력은 본인의 공명심이나 자기만족을 채우라고 주신 선물이 아님을 또한 깨달아야 합니다.

오로지 양들을 위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사제들은 늘 겸손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필요한 것만 갖고 다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한마디로 영적 청빈을 강조하신 겁니다.

천국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복음을 전하는 임무보다 물질적인 것에 얽매여

복음 선포가 늦어지거나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권한을 받은 자는 그 권한을 소중히 여겨야 하고그 권한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을 믿어야 하고,

그 권한의 원천이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제들에게 주어진 그 엄청난 영적인 능력이 본인 자신에게 나온다고 착각하는 그 순간부터 교주가 되는 겁니다.

 

사제들이 치유의 능력구마의 능력말씀의 능력으로 무장하고 겸손의 옷을 입고,

양들을 지키고 구원 사업에 협력하는 주님의 제자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아멘

 

2021년 연중 제15주일 (07/11)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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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릭스1254 (2021/07/17 10: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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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사랑과영혼 (2021/07/18 20: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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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성물 판매소에서 마지막 뵈었던 로사 어머니 선종을 기리며 인사맨으로 통했던 미카엘을 성가대 옆좌석으로 함께하고 정추기경님 집전 녹번 봉헌 미사 모든 성인 호칭 선창 어제의 기억은 약현 어린시절로 더욱 낯설지 않은 감곡에서 따듯하게 다가오시어 손내미시던 신부님 어느덧 하비에르 신부님과 같은 숫자로 이날 여흥시 김승덕의 아베마리아를 부른것도 신비였고 감히 삼만여명 고해 주시어 헤롱헤롱하시는 신부님께 수녀님 도움으로 허락하시어 장엄 성모찬송 그레고리오 봉송 구텡이에서 부르려는데 제대 앞으로 부르도록 밀어주신 것도 영광이었습니다. 그런 성금요일 태생 아들 베드로 성사혼 결렬과 가슴 아픈 실비아와의 별거 13년 새로운 보속의 길, 33년 외사랑 로사와 2013년 천주의 모친 성모마리아 대축일 온라인을 떠난 미국교포 은하작은별 친구에게 스텔라 가세례명을 봉헌하오며 묵주기도를 나눠봅니다. 도민고 오늘도 용서의 하늘 화해의 바다 가로지으신 주님과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시나브로 사랑으로 지상의 아버지 약정 이영찬 사도요한 신부님을 향하여 요양 3등급 요안나 어머니와 함께 가족요양 공부 열공 기쁜 추억 만들기로 향유합니다. 오른쪽 1회 방문 줄 잘서서 선물주신 머플러 바라보며...
  
  백발 (2021/07/22 11: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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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합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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