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고통은 공유하는 것입니다!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1-01-31 19:00:03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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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2, 22 - 40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모든 교우에게 평화를 빕니다.

지금 실시간으로 약 천 명 정도는 미사를 보고 계실 텐데 궁금한 것이 있어요.

어떤 자세로 미사를 보고 계실까?

소파에 앉아서 TV로 연결해서 큰 화면으로 보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휴대폰으로 보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혹시 간식이나 식사하며 미사 하시는 분은 안 계시지요?

절대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화면을 통해서 보는 미사라고 하느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환자들은 어쩔 수 없겠죠.

비대면 미사 볼 때 어떤 자세와 마음인지 짚고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성가정 축일입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성가정은 세례받은 신자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바로 가정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가정이든 그냥 가정이든 중요한 것은 똑같습니다.

교우 여러분은 가정의 가장 중요한 덕목, 가정의 중요한 의미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가정의 중요한 덕목은 많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공유하고 나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나누고 무엇을 공유하는가?

물론 밥을 공유하고, 한집을 공유하면서 비바람을 피할 수 있습니다.

돈도 가족이기에 같이 공유하고 나누어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냥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이죠.

 

그렇다면 정말 가정은 무엇을 나누고 무엇을 공유해야 할까요?

고통을 공유해야 합니다.

어느 가정이 정말 참다운 가정, ‘성(聖)’자가 붙으려면 고통을 나누어야 합니다.

가정은 가족의 고통을 바라보는 장소입니다.

가정의 가족이 아프면 그 아픈 사람의 고통을 바라보고 의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족의 아픈 부분을 해결할 방법을 지혜롭게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온 가족이 그 아픈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이야기한 바로 이것을 한마디로 하면 ‘가정은 운명 공동체다.’입니다.

신학적이고 철학적이고 그런 것을 떠나서, 아버지가 아프면 아내가 아픈 것이요, 자식이 아프면 부모는 더 아픈 것입니다.

고통을 같이 공유하고 나누고 바라보고 의식하고, 그리고 희생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가정입니다.

 

지구촌도 운명 공동체입니다.

넓은 의미의 지구 가족입니다.

그런데 이 지구촌이 너무 많이 아픕니다.

이제는 지구촌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벽이 허물어진 지 오래입니다.

교통의 발달과 SNS의 극대화로 문화가 순식간에 확장됩니다.

이렇게 문화만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전염병, 질병 등 어두운 문화도 순식간에 전염됩니다.

지구촌이 하나이다 보니, 어두운 원인을 제공하지 않는 나라도 같이 고통을 공유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코로나 생긴 것 아닙니다. 하지만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봐야 하고, 해결책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지난 2월부터 우리는 여러 달 동안 비대면 방송 미사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부활 대축일을 못 드린다는 것이, 판공성사를 못 본다는 것이 청천벽력과 같았죠.

그 후 좀 날이 따뜻해지면서 방역을 철저히 하면서 미사에 나오더니, 이제 다시 비대면 방송 미사를 해야 하는 암담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우리는 보내고 있습니다.

1월 3일까지라 하지만, 새로운 변종 때문에 영국은 인구의 40% 이상이 집 밖을 못 나가고 있고, 아프리카도 변종이 생겼다 합니다.

이런 불확실함 속에 지금 두 번째로 비대면 미사가 시작되어, 성탄 전야 미사도, 성탄 미사도, 오늘 성가정 미사 못하고, 1월 3일까지 남아 있는 미사를 못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몇 달 비대면 미사를 했었기에, 처음보다는 그 두려움, 놀라움, 안타까움의 체감지수와 충격지수가 훨씬 덜 합니다.

 

제가 사제로 살면서 요즘처럼 생각이 많은 적은 없었다고 여러 번 이야기 했습니다.

내년에 은퇴하면 이제 사목 일선에서 물러나는데 왜 그렇게 고민을 해? 아니지요.

사제는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양들을 생각하고, 뭔가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다면 전달해 줘야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못 느끼고, 자각을 못 하고, 무디어진 병을 우리는 불감증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대면 미사가 자꾸 반복되면 교우들은 어떻게 변할까, 그들의 생각이 어떻게 바뀔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봅니다.

어둠이라는 것은, 마귀라고 하는 놈은 머리에 뿔 달린 채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상상도 못 했던 교활하고 지능적으로 우리를 하나하나 정복해 가면서, 정복당한 것조차 모르게 합니다.

그래서 제일 큰 것은 못 느끼는 것입니다.

이제는 소위 적응을 잘하고 있다라는 말로 사실 귀중한 것들을 많이 잃어버립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비대면 미사를 대하고 있는 우리 신자들의 생각을 두 부류 정도로 이렇게 정리해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두 부류 가운데 어느 쪽인지 스스로 진단하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부류는 완전히 적응된 사람들입니다.

주일 미사를 안 해도, 성체를 영하지 않아도, 레지오에 안 나가도 처음에는 그렇게 불안하고 속상하더니 지금은 그런대로 편해. 헌금 낼 일도 없고, 보기 싫은 사람 안 봐서 좋고, 이렇게 교회 안 가고 집에서도 신앙 생활할 수 있는 거라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성당을 가지 않아도 하느님을 떠나지 않고 신앙 생활할 수 있다는 소위 무교회주의적인 마인드를 갖게 된 것이죠.

‘교회 떠나면 죽는 줄 알았는데 성당 안 나가면 죽는 줄 알았는데, 성당 안 나가도 내 방에서 이렇게 혼자 기도하고, 성체 영하지 않아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는 성체 영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넘어가네.’

이러한 생각을 코로나를 통해 느꼈을 교우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거기에 대한 증거로 비대면 미사가 계속되다 어느 순간 다시 미사가 재개되었는데, 놀랍게도 미사 참석자가 3분의 1이었습니다.

전국이 모두 그랬습니다.

미사 참석이 충분히 가능해도 코로나 핑계를 대면서 신앙의 방향을 바꿔버린 교우들이 있다는 겁니다. 오히려 방송 미사를 더 편히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과연 우리 교회는 마음이 그쪽으로 돌아선 교우들에게 어떤 처방을 내리고,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사목 방향 문제입니다.

우리 교회가 당면한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다 해서 교회는 그런 사람들을 교회를 떠난 사람으로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억지로 나오라고 끌어당기기보다는 그분들이 그분들의 일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도록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해야 합니다.

또 그렇게 마음이 편해져서 ‘이제는 성당 안 나가, 방송 미사 하면 되지, 안 나가고 나 혼자 신앙 생활할 수 있어. 교회 필요 없어.’라는 마음을 먹고 계신 분들 역시 신앙을 합리화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자신을 속이지 말고, 세상 한복판에서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를 저는 진정 바랍니다.

 

비대면 미사라 낼 수 없었던 헌금을 돈 안 써서 좋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그 헌금을 진짜 여러분 주변의 가난한 이들에게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내 주변의 배고픈 사람들, 헐벗은 사람들,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난다면, 코로나를 통해 신앙의 핵심을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코로나가 주는 선물입니다.

그전에는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면, 내가 너무 무관심하게 살았다는 자각이 든다면, 코로나가 주는 선물입니다.

코로나를 통해 역설적으로 신앙의 핵심으로 진입하게 되는 겁니다.

비록 비대면 미사가 지속되더라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방송 미사를 보게 되는 상황이더라도, 우리 일상에서 만나는 가난한 이, 불우한 실업자, 노동자, 난민 등을 버림받은 예수님으로 알고 그들을 섬겨야만 우리들의 마음이 편안해질 겁니다.

주님께서는 이 어둠 속에서도 우리에게 할 일을 분명히 제시하십니다.

이제껏 거대하고 비대해졌던 교회에게 이제는 눈에 보이는 집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버림받은 예수님을 살리라고 강하게 요청하고 계십니다.

 

두 번째 부류는 놀랍게도 신앙이 성숙해지신 분들입니다.

지금껏 의무감으로 미사를 드렸고 습관적으로 영성체하던 분들이 미사에 대한 깊은 감사와 성체에 대한 뜨거운 갈망을 갖게 됩니다.

성체를 영하는 의미를 성찰하며, 미사의 의미와 소중함을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유럽 교회의 역사를 보면 세속화 과정을 겪으면서, 미사 참례하는 신자들이 급격히 줄었고 많은 교회가 텅텅 비었지만, 그래도 진짜 신자들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어둠 속에서 그 전보다 더 확고하게 신앙을 갖은 알짜배기 신자들이 나왔다는 겁니다.

제 동생 신부님이 사목하고 있는 일본 교회도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전에 드렸습니다.

동생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500년 전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성인이 전교할 때나 지금이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없지만, 지금 성당 나오는 일본 신자들은 한마디로 순교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 합니다. 뜨내기, 발바닥 신자들이 아니라, 세속의 마인드로 살아가는 신자들이 아니라, 순교할 수 있는 신자들이라 이야기합니다.

교회가 세속화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신앙생활이 성숙해지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사회뿐만 아니라, 신앙과 삶 속에서도 우리 교회는 많은 것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껏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신령스럽게 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수님처럼 남을 위해 살지 못했습니다.

십자 성호를 그으면서도 다른 이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사제들은 사목한다고 하면서 가난한 이의 영혼을 돌보지 못한 것을 반성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코로나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코로나19는 신앙의 위기를 앞당겨 보여주면서 교회가 나갈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고통만 주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열게 하고 신앙의 근본으로 돌아서게 해주는 계기를 주었습니다.

어느 신학자분은 1, 2차 세계 대전에 많은 사람이 죽고 난 후에 교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었듯이, 지금은 3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려야 될 시기라고 합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3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면서 이 시대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 것인지를 교회는 분명히 세상에 제시해야 합니다.

 

서운동성당은 열흘 전에 만명 천사분들이 기부한 1억 2천만 원을 아프리카와 국내의 버림받은 예수님을 위해 자선했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따져보면 돈은 만명 천사들이 내고, 칭찬은 서운동 신자들이 다 받았습니다.

이제는 서운동 본당 신자들이 자선기금을 봉헌할 때입니다.

지난 24일부터 1월 3일까지 비대면 미사 6대가 계속됩니다. 성탄 전야 미사와 구유 예물, 성탄 대축일, 성가정 축일, 송년 미사, 성모 마리아 대축일, 그리고 주님 공현 대축일, 위의 6대 미사 중 5번의 헌금이 있고, 구유 예물이 있습니다.

해마다 이 기간에 평균 2천만 원의 헌금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 2천만 원이 증발해 버렸습니다.

연말이 되면 교회는 교구에 낼 교납금에 전전긍긍합니다. 올해는 더더욱 어려웠습니다.

신부님 말하는 품새가 그거 내라는 이야기인가 보다 하고 감 잡으셨지요?

네, 맞습니다. 내십시오, 그런데 성당에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봉헌하십시오.

비대면 미사라 못 냈던 헌금을 내시기 바랍니다.

성당 살림에 쓰는 데 도움 되라고 내시라는 것이 아니라, 빈첸시오회를 통해 이제는 서운동 관할 구역의 힘드신 분들을 위해 쓰이게 될 것입니다.

서운동 신자들은 이번 자선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칭찬받았으니, 이제 칭찬 값을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 적금 깨서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미사가 있었으면 당연히 냈을 헌금 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이 편하실 겁니다. 기쁘게 자선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통장에 은퇴 자금 딱 천만 원 있는데, 그 천만 원 내놓겠습니다.

 

자, 오늘 성가정 축일을 봉헌하면서, 성가정의 중요한 덕목이 무엇이라 그랬습니까?

고통을 공유하는 겁니다.

고통을 같이 바라보아야 하고, 그 고통 받는 가족을 위해 뭔가 지혜를 짜내서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것이 운명 공동체의 제일 중요한 역할입니다.

지금은 우리 성당 울타리가 아니라, 우리 울타리를 벗어나서 이웃에게 항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성가정 축일을 맞이하여 모두가 다 힘들고 어렵지만, 여러분 각 가정에 주님의 축복이 내려가기를, 성령이 함께 머무시길 기원합니다. 아프신 분들이 있으면 치유의 은혜가 내려가길 기원합니다. 실업자가 되고 물질 때문에 힘드신 분이 계시면 천사가 나타나기를 기원합니다. 이 지구촌 가족들이 이번 계기를 통하여 서로 아끼고, 서로 죽이려는 이기적인 삶에서 벗어나 하나로 거듭나길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2020년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12/29)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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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21/02/01 10: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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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펠릭스1254 (2021/02/01 11: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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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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