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랑도 믿음이고 미움도 믿음이다.

글쓴이 :  전 요셉님이 2022-03-11 19:51:14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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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다해 사순 제1주간 토요일

 

 

 

 

<사랑도 믿음이고 미움도 믿음이다>

 

 

 

 

복음: 마태오 5,43-48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어제 복음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이 세상에서 감정의 통제가 가능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하십니다. 

    새로 태어난다는 말은 ‘다른 세상에 산다’는 말과 같습니다. 부모는 자신이 사는 세상입니다. 고정원 씨는 세례를 통해 새로 태어남으로써 자신의 가족을 죽인 원수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아 이 세상이 두려운 세상이 되어버렸다면 당연히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미워지기도 합니다. 이 상태에서 누군가를 용서하고 사랑하려고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감옥에 갇혀서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거기에서는 쳐다보기만 해도 화가 날 수 있습니다. 에스키모인들이 화가 나면 무작정 걸어서 화가 발생한 곳에서 멀어지는 전통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미움의 세상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이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지금 복음은 ‘산상설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내용입니다. 마치 이 지상에서 떠나 산에 오르는 것처럼 우리가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도 누구는 하느님 나라에 살고 누구는 지옥에 삽니다. 그리고 자신이 사는 대로 감정을 발산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어제 묵상 내용처럼 삼위일체 하느님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는 거울과 오은영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위해 하는 노력, 이 세 가지의 도움으로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은 그렇게 말썽부리며 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사는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다정함의 과학』, 켈리 하딩 박사는 의사로서 사람을 물질적인 것으로 보도록 훈련된 사람입니다. 그가 의대에 입학해 해부학 교수에게 처음 받았던 것은 한 인물의 간단한 소개였습니다. 

    “9번 테이블: 폴, 공장 노동자, 사망 원인: 폐 암종.”

처음엔 그래도 자신의 테이블에 누워있는 시체가 한 인간의 존엄한 존재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자르고 쪼개고 분해하고 하다 보니 점점 폴이라는 한 인물의 시신이 아닌 하나의 교육 보조재정도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영혼의 존재에 대해 점점 잊어가고 환자를 약물과 수술로 치료해야 한다는 물질적 세계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의사인 그녀가 『다정함의 과학』이란 책을 쓰게 된 것일까요? 이 책은 수술과 약물보다 사랑이 인간의 몸까지 더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의사로서 많은 비판을 받을만한 내용입니다. 그녀가 영혼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자신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서였습니다. 

 

 

    켈리 박사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2주 전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보다가 어머니에게 문법이 전혀 맞지 않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문자를 보낼 때 문법을 꼼꼼히 따지던 사람이었습니다. 의사인 딸은 이 문자를 받고 곧바로 엄마에게 뇌졸중이 왔음을 깨닫고 곧바로 병원에 도착하였습니다.

 

 

    병원에 도착한 지 몇 시간 만에 어머니는 오늘 손을 쥐었다 펴는 것 외에는 움직일 수도, 볼 수도, 말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켈리는 손으로 ‘사랑해’라고 말하는 신호를 만들었습니다. 

    “I(꼭 쥐기) LOVE(꼭 쥐기) YOU(꼭 쥐기).”

그날 켈리와 어머니는 수도 없이 서로의 손을 세 번씩 꽉 쥐었습니다. 말을 할 수 없는 어머니는 걱정하는 딸에게 괜찮다는 엄마만의 리듬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2주 동안 어머니 옆에서 서로의 손을 잡아주다가 더는 어머니가 손을 쥘 힘이 없음을 알았을 때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의사 수업을 할 때 그렇게도 세세하게 해부하던 인간의 육체만 남은 어머니. 어머니의 영혼은 어디 간 걸까? 영혼이 있는 것일까?’를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켈리의 거의 두 살이 다 된 사랑스러운 아들 제이를 자주 돌봐 주었습니다. 제이는 자신과 놀아주던 할머니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듯하였습니다. 더 자주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켈리가 할머니가 매우 아프다고 말할 때마다 제이는 “할머니는 내 마음 안에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를 화장하던 날 밤, 제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제이를 켈리에게 안겨주었습니다. 말을 갓 시작한 제이는 켈리의 품에서 “사랑해!”라는 말을 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예상하지도 못한 말이었습니다. 켈리는 어둠 속에서 활짝 웃으며 아들을 더 꽉 안아주었습니다. 그러자 제이가 갑자기 켈리의 손을 잡고 세 번을 꽉 쥐었다 폈다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처음 엄마 손을 꽉 쥘 때 엄마는 놀랐습니다. 두 번째는 이상하다는 점을 느꼈으며, 세 번째 잡아줄 때는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제이는 엄마의 품에서 잠이 들었고, 엄마는 완전히 잠이 달아났습니다. “사랑해”라고 말할 때 손을 세 번 꽉 쥐었다 펴는 것은 켈리와 엄마만의 비밀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말한 적이 없고 제이는 정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엄마의 손을 잡는 적도 없었습니다. 증거 중심으로 일하는 의사로서의 켈리는 그건 그냥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엄마의 딸로서의 켈리는 “얘야, 엄마는 걱정하지 마. 엄마는 괜찮아. 나는 여전히 네 곁에 있어”라고 말하는 사랑의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소위 ‘토끼 효과’를 발견합니다. 한 사랑 가득한 여성이 준 음식을 먹은 토끼들만 특별히 더 건강하다는 실험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은 그 사람을 사랑의 환경 안에 살게 하여 인간의 감정으로 일어나는 병까지 고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화병이 있는데, 이것은 약물이 아닌 새로운 환경에서만 치유됩니다. 다시 말해 사랑이 가득한 세상으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아웅다웅하고 미워하며 살았던 것들이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것이 용서고 원수까지 사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미국 드라마 ‘로스트’는 매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여객기가 무인도에 불시착하며 벌어지는 내용입니다. 괴물도 나타나고 이상한 생명체도 나타나지만, 또 그 사람들 안에서 불목과 의심과 미움과 살인까지 일어납니다. 가끔 죽었던 사람들도 등장하고 이전에 지었던 잘못과도 연결되며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참 궁금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이 깨닫게 되는 것은 그들은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무인도에 불시착한 것이 아니라 바다에 빠져 다 익사한 상태였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었던 곳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계’였고 여기에서 진짜 선인과 악인이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연옥의 역할도 하는데 이 지상에서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이들은 천국으로 올라갑니다.

    

 

    황당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그들은 생존하려고 서로를 죽이기까지 하면서 본인들이 이미 죽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믿기를 거부합니다. 하지만 용기 있게 자신들이 죽었음을 인정한 이들은 이 세상에서의 모든 감정을 털고 천국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죽었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들은 이 세상의 미움 속에 남겨집니다.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우리 감정을 규정합니다. 지옥에 머물며 천국의 감정을 느낄 수 없고 천국에 살며 화를 내거나 음탕한 마음을 품거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사는 곳을 바꾸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증거가 아니라 결단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믿고 살 것인가에 대한 용기 있는 결단이 내가 지금 사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12B2e8d5TEk

유튜브 묵상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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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uce! (2022/03/11 20: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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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고맙습니다.

  
  늘 햇살처럼 (2022/03/11 2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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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가시모바일에서 올림 (2022/03/11 2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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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침묵속의대화 (2022/03/12 10: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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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감사 드립니다.
  
  *자연미소* (2022/03/12 1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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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가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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