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일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물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는데요. 두 가지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영상을 보는 저의 모습입니다. 한국에 들어와서 유튜브를 많이 봅니다. 재미있는 것들도 많이 있고, 배울 거나 필요한 강의들도 많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한 번 보면 끊지 못하고 계속 볼 때가 있습니다. 하나를 보면 비슷한 것들을 추천해 주는데, 마음이 ‘재미 하나를 더 하자’고 외치거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유익한 거 하나를 더 하자’고 외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연이어 영상을 시청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면, 내가 왜 영상을 보고 있는지도 잊어버리고, 때로 필요하지 않은 내용들을 한 가득 담아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영상의 바다에서 나를 건져주는 것이, 예수님처럼 산에 올라 기도하는 모습인 것 같습니다.
한 인지 심리학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갈망이나 갈증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개는 자신의 갈증이 배고픔인 걸 분명히 알고 또 먹던 사료를 쉽게 바꾸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먹는 것으로 채우거나,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다른 중독으로 채우려고 할 때가 있죠.
때로 분명하지 않아서 무언가 갈증이 있으면, 그 갈증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채우려고만 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갈망이나 갈증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영상이라는 바다에서 무언가를 마구 채우게 되면 배부르고, 배부르면 정말 내 갈망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바라보지 못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채우고 싶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예수님처럼 자주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고요히 머무르고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 수 있을 때, 내 갈망이 무엇인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시간이 때로 영상 속에서 무언가 찾아 헤매며 허우적대는 나를 든든한 곳으로 끌어올려 주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는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어제 외국에 사는 동기 신부가 어떤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꺼이 도와주고 싶은 마음보다는 귀찮은 마음이 조금 더 앞섰던 것 같습니다. 약간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들고, 핑계를 대고 싶은 마음이 먼저 올라왔습니다. 잠자기 전에 그런 생각들이 밀려오는데 살짝 불안했습니다. 그 생각이 때로는 다른 불편한 생각까지 몰고 올 때가 있거든요. 그리고 그 생각들에 사로잡혀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이어지면, 늦게 잠이 드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걱정의 소용돌이 가운데에서 문득 며칠 전에 가슴에 품었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떠올리고 ‘그분이 내 안에 사신다..’ 는 말씀을 기억하니까, 불편한 마음이 힘을 잃으면서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연히 도와줘야지..’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는데, 제 목소리가 한 번 더 있긴 있었습니다.^^; ‘예수님 그렇게 도와주시다가 힘들어져요.. 더 많은 일을 부탁할 거예요.’ 물론 예수님은 별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방향의 일이 더 이상 귀찮은 마음이 들지 않고 기꺼이 감수할만한 느낌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 맞바람이 불어오고 혼란스러울 때, 잠시 멈추어 기도하고 있는지, 주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되새기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기도와 말씀이 나를 물속에서 건져줄 겁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한 신부님이 자기가 있는 곳이 너무 좋으시다며,
다른 신부들도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본인이 너무 오래 있는 건 욕심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시니까,
동기신부님이 한 마디 하셨다.
“괜찮아, 욕심 내도 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