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유혹 앞에서

양승국 스테파노신부 2025/06/13 오전 12:33 (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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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유혹 앞에서

지난주에 저희 피정 센터에 한국에 진출해있는 여러 수녀회 젊은 수녀님들이 기도 세미나를 하러 오셨습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젊은 수녀님들을 보니 그래도 아직 우리 교회에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각 수녀회에서 막내로 사느라 고생이 많은 기색이라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4박 5일 동안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주방 내려가서 수녀님들 아침 식사 준비했습니다. 올라와서 미사를 봉헌하고, 마침 성가 끝나기도 전에 초스피드로 내려와 빵도 굽고, 수녀님들 좋아하는 라면도 끓였습니다.

9시 반에 또 올라 와서 강의를 하고, 바로 주방 내려가서 점심을 준비했습니다. 저녁 식사 성체 강복. 하루 종일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어두워지면 씨알 굵은 우럭들이 활성도가 높아지니, 밤낚시를 갔습니다.

정말 온 몸이 녹초가 되었지만, 하루 온 종일 정신없이 뛰어다니니, 좋은 점도 있습니다. 엉뚱한 생각 하나도 안 하는 것입니다. 유혹이니 뭐니 생각할 힘도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극한 표현까지 사용하시며 유혹 앞에 당당하게 맞서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마태 5,29-30)

유혹 맞서는 데 특효약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 경험한 우리가 맡고 있는 사목에 제대로 헌신할 때, 거기서 큰 보람을 느낄 때, 유혹은 경감됩니다.

아이들로부터 진한 사랑을 받을 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에 몰입할 때, 우리 삶은 자연스레 영적, 육적으로 탄탄해지고, 유혹 앞에 강건해집니다.

반대로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일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보람도 없고 기쁨도 없을 때, 유혹은 순식간에 찾아옵니다.

이런저런 유혹 앞에 자주 갈등하고 방황하며 쓰러지는 우리입니다. 때로 도가 지나쳐 그냥 포기한다든지 유혹의 깊은 구덩이 속에 푹 빠져 살아가고, 거기에 또 적응해서 머물러 있습니다.

그럴 때 치유책은 우리가 행하고 있는 이 소중한 영혼 구원 사업에 더 깊이 몰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봉헌하는 최고의 선이요 가치인 성체성사에 더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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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lssigu 📱 (2025/06/13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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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어스름 속,
주방에서 라면을 끓이시고
빵을 굽고
강의를 하시고
다시 주방으로,
그리고 밤낚시로 이어지는 나날을 읽으며
저는 거센 유혹보다 더 깊은 수면 아래에서
숨 쉬지 못하는 어떤 영혼을 떠올렸습니다.

삶이란, 신부님,
언제나 유혹을 부른다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어디로든 흐를 수 있는 물처럼,
우리 마음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요.
그런데 오늘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 유혹은 때로 너무도 부드럽고 따뜻한 온기를 하고 있어서,
거절하기는커녕
차마 밀어내지 못한 채
기꺼이 안기곤 한다는 것을요.

그러다 문득,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극단적인 문장 속에 담긴 간절한 염원이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의 일부를,
우리의 습관을,
심지어는 익숙한 위로의 손길까지도
잘라내야 할 때가 있다고
그분은 말씀하셨지요.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유혹을 이기는 특효약은,
아마도 더 깊이 ‘몰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몸을 던지듯
하루의 모든 틈을
사랑과 헌신으로 채우는 삶.
아이들의 웃음에,
성체의 침묵에,
고단한 봉사의 시간에
자신을 비우는 사람만이
무너짐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저의 나날을 돌아보았습니다.
무언가를 하는 것 같지만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움직이고 있지만
실은 멈춰 있는 내면,
그런 저에게 유혹은
말없이 스며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침투를 너무도 쉽게 허락했습니다.
거기에는 땀이 없었고,
기도가 없었고,
기다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묵상글은
마치 거울처럼 제 안을 비추었습니다.
일상의 고단함 속에 숨어 있는 은총,
몸이 지쳐 쓰러지기 직전까지 바친 사랑이
어쩌면 유혹을 이기는 가장 단단한 벽일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신부님.
당신의 피곤한 손끝에서 구워진 빵과
묵상 사이를 오르내리던 숨 가쁜 걸음들이
저에게 오늘
한 문장보다 더 큰 복음이었습니다.

저도 이제,
그 조용한 전쟁터로 돌아가겠습니다.
유혹의 그림자 속에서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주님의 빛을 선택하겠습니다.
 
파스칼 (2025/06/1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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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지혜로 📱 (2025/06/13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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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큼 힘을 얻어갑니다.
 
서홍준 안셀모 📱 (2025/06/1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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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더 몰입해서 이겨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모님군사 📱 (2025/06/1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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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신부님.
당신의 피곤한 손끝에서 구워진 빵과
묵상 사이를 오르내리던 숨 가쁜 걸음들이
저에게 오늘 한 문장보다 더 큰 복음이었습니다.'
urlssigu님의 댓글을 읽고 감동했슴다.
그리고 영혼 구원 사업에 더 깊이 몰입하는 스테파노 신부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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