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지금 어디에 미쳐 있습니까?

양승국 스테파노신부 2025/06/11 오후 11:15 (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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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지금 어디에 미쳐 있습니까?

교회 역사 안에서 물건이나 외모,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기로 가장 유명한 분이 아르스의 비안네 신부님입니다. 그분의 사제관은 아무것도 없이 너무 황량해서 마치 유령의 집과도 같았답니다.

신부님은 단 한 벌 밖에 없는 수단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습니다. 워낙 전반적으로 너덜거렸기에 수선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구두는 한 번도 약칠을 하거나 솔을 댄 적이 없이 그냥 되는 대로 신었습니다. 보기 흉한 모자, 시골스런 외모...누가 보아도 노숙인으로 밖에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비안네 신부님을 두고 동료 사제들이 화가 나서 이렇게 수군거렸습니다. “도대체 비안네 신부는 우리 사제단 모두를 욕 먹일 작정인가? 검소한 것도 정도가 있지. 남부끄러워 같이 있을 수가 없구먼!”

이런 면에서 돈보스코도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남겨진 돈보스코의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살펴보면 외모에 신경을 쓴 흔적이 조금도 없습니다. 헤어스타일도 자연 그대로입니다. 얼굴은 상습 과로로 항상 퀭했습니다. 인화된 돈보스코의 사진들 가운데 어떤 사진들은 너무 없어보인 나머지 비서단에서 공개하지 않기고 결정했습니다.

이분들이 왜 그렇게 사셨을까 묵상해봅니다. 이분들은 하루 많은 시간을 고해소 안에서 보냈습니다. 사제로서 고해소에만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남은 시간을 쪼개 미사도 봉헌해야 했습니다. 강론준비도 해야 했습니다. 잠도 자야했습니다.

이분들은 외모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쓰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목에 전념하느라, 영혼 구원에 전념하느라, 자신의 외모에 신경 쓸 시간이 도무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보다 상위에 가치를 선택하고 집중하느라 다른 부차적인 가치들을 뒤로 미룬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예수님의 말씀도 일맥상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 여행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선택과 집중을 하라고 권고하십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그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 10, 9-10)

이것 저것 물건들에 신경쓰지 말고 보다 본질적이고 우선적인 가치, 곧 복음 선포에 우선권을 두고 집중하고 헌신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돈보스코 생애 내내 부르짖었던 삶의 모토가 있습니다. 라틴어로 이렇습니다.

“Da mihi animas, cetera tolle”

우리 말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나에게 영혼을 주십시오. 나머지는 다 가져가십시오.”

돈보스코가 영혼 구원에 얼마나 우선권을 두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돈보스코의 애제자로 스승과 같이 성인 반열에 오른 도미니코 사비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영혼 구원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모릅니다.

초창기 돈보스코 오라토리오 안에 살았던 청소년들 사이에 전해오던 전통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버지 돈보스코의 영명 축일 날 청소년들이 작은 쪽지에다가 자신이 원하는 선물 내역을 적어내면 그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전통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가 쪽지에 적은 내용은 이랬습니다.

“제 영혼을 구해주십시오. 그리고 저를 성인(聖人)이 되게 해주십시오.”

성인들의 영성생활 안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선택과 집중, 그리고 본질에 대한 충실성입니다. 그들은 사목자로서 비본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단행했습니다. 그리고는 오직 영적인 것, 하느님, 신자들의 영성 생활에만 초점을 맞추었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습니다.

오늘 과연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습니까? 어디에 우리 삶의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지금 어디에 미쳐 있습니까? 오늘 우리 내면에도 복음 선포와 이웃의 영혼 구원을 위한 간한 열정, 그런 헌신이 다시금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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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lssigu 📱 (2025/06/1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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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안네 신부님의 너덜너덜한 수단,
솔 한 번 대지 않은 구두,
지나가던 이들이 노숙인이라 여길 만큼 황량했던 모습 앞에서
저는 오래 서 있었습니다.
무언가가 저를 응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아니라,
그분이 버린 것들?
지팡이, 여벌 옷, 전대 속 동전, 그 모든 ‘지니지 않음’이
제 눈앞을 무겁게 스쳤습니다.

어떤 결핍은 그 자체로 빛이 되기도 하지요.
그들의 허름함은
세속의 무늬로부터 스스로를 지워낸 자들의 표정이었습니다.
지워졌기에 더 선명해지는 빛,
버렸기에 더 환해지는 무게가
그들의 생을 감싸고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는 조용히 제 삶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벗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입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생각의 주름들,
사람들 앞에서 놓지 못하는 체면과 기준들,
나를 증명하려 애쓰는 말들.

어떤 침묵은 외침보다 컸습니다.
“나에게 영혼을 주십시오. 나머지는 다 가져가십시오.”
그 문장은 돌처럼 묵직하게 제 가슴에 내려앉았습니다.
그 문장을 바라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금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어디에 제 시간과 마음을 쏟아 붓고 있는지를.

저는 지금 ‘복음’이 아니라
‘인정’에 미쳐 있는 건 아닌지요.
하느님의 일보다는
사람들의 눈빛에 더 민감해져 있는 건 아닌지요.
겉모습을 다듬는 시간은 많지만
기도 속에 오래 머무는 시간은 점점 적어지는 건 아닌지요.

신부님,
저는 오늘, 성인들의 생애가
거창한 영웅담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그분들은 오히려 가장 단순한 선택,
가장 날것의 고통을 통과해
오직 한 가지를 바라보다 숨을 거두신 분들이었습니다.

그 길 앞에서 저는 아직 멀고 어설프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기도하고 싶습니다.
저도 그런 가난함을 선택할 수 있기를.
저도 그런 선명한 집중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조용히 걸어가겠습니다.
말 대신 땀으로,
외침 대신 침묵으로,
조금씩, 그러나 멈추지 않고
‘본질’이라는 언덕을 향해 걷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신부님.
오늘 저의 무거운 옷깃을
조용히 내려다 주셔서요.
그저 바라보게 해주셔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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