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파에 지친 나그네를 따뜻이 환대하는 우리 교회!

양승국 스테파노신부 2025/06/09 오후 10:54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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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파에 지친 나그네를 따뜻이 환대하는 우리 교회!

각종 진귀한 예술품과 문화유산을 간직한 고색창연한 유럽의 대성당들을 방문하며 감탄이 저절로 흘러나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많은 성당들은 그저 수많은 관광객들이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이지, 주님의 은혜로운 복음이 우렁차게 선포되는 장소가 더 이상 아니었습니다. 주일 대미사가 거행되는데, 미사 참례자 수는 손을 꼽을 정도였습니다.

이제 조만간 우리 한국 교회에 닥쳐올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유럽 교회는 성당 여기 저기 설치된 성화며 값진 예술품으로 관광객들을 끌어모을 수 있지만, 우리 성당들은 그럴 상황도 아니니, 참으로 암담할 뿐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예수님께서 던지시는 말씀 한 마디가 더욱 가슴을 찌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13)

오늘 우리 교회를 바라보면 제맛을 잃어버린 소금 같은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됫박으로 덮어버린 등경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저만 그런 건가요?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의 지나친 폐쇄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녀야 할 가장 근본적인 속성은 순례성, 개방성, 유연성, 연대성...이런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어떤 성당은 세상과의 경계가 되는 담을 너무 높게 쌓아 올렸습니다. 어떤 성당은 마치 대단한 성채, 단단한 철옹성 같아서 감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어떤 성당은 그 구성원들이 다들 뭐가 그리도 바쁜지 찾아온 나그네를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한마디로 교회의 문턱이 너무 높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묵상해봅니다. 지상의 나그네를 환대하는 집이 교회가 아닐까요? 목말라하는 나그네에게 시원한 물 한잔과 쉼터를 제공하는 곳이 교회가 아닐까요? 세상과의 전투에서 상처 입은 부상병들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야전병원이나 응급실이 교회가 아닐까요? 사회적 약자들과 날개가 부러진 사람들과 기가 꺾인 사람들이 원 없이 에너지를 충전시킬 수 있는 기쁨과 희망의 에너지 충전소가 교회가 아닐까요?

우리 모두 고립되고 폐쇄된 교회에서 빨리 걸어 나와야겠습니다. 더 이상 우리만의 교회, 끼리끼리 교회를 고집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세상의 현실에 무관심했던 지난날을 가슴 쳐야겠습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교회, 그 누구든 스스럼없이 찾아올 수 있는 열린 교회, 산 위의 등불 같은 우리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좀 더 매력적인 교회로 탈바꿈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교회로 돌아오게 할 수 있겠는지 각고의 노력을 다해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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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2025/06/10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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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네 맞습니다.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서홍준 안셀모 📱 (2025/06/1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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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나로부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urlssigu 📱 (2025/06/1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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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자주 나 자신에게 묻습니다.
교회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나는 진정 교회를 알고 있었는가?
혹은, 내가 사랑한 것은
그저 교회라는 이름 아래 안온하게 포장된 관성의 울타리였는가?

성당은 언제부터인가 쉼터가 아닌 요새가 되었습니다.
높은 담벼락, 굳게 잠긴 문,
그리고 내부를 지키는 이들의 조용한 경계.
그 속에서 나는,
환대받지 못한 이방인처럼,
문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교회 ‘안’에 있다고 믿었지요.
이 얼마나 정직하지 못한 믿음이었던지요.

양승국 신부님의 글을 읽으며,
나는 어떤 오래된 자명한 사실에 눈을 떴습니다.
소금은 녹아야 한다는 것.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을 다 바쳐야 그 맛을 내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나는 외면해 왔습니다.
내 안의 믿음은 맛을 잃었고,
그 사실을 모른 척하며
나는 사람들에게 무미건조한 복음을 들려주곤 했습니다.
내 스스로 먼저 살아내지 않은 말씀을요.

교회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무릇, ‘하느님의 집’이라 불리는 곳이
울고 싶은 이들이 조용히 울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
그 집은 과연 누구의 집입니까?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그토록 많은 나그네들이 문 앞에서 돌아서는가?
왜 우리 청년들의 발걸음은 교회를 지나쳐가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그 모든 외면에 그토록 무감한가?

이 질문들은 날카롭고,
때때로 내 신앙의 뿌리마저 뒤흔듭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회피하고 싶지 않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불편하며,
믿음은 때로 그 불편 속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나는 그 말씀이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훈계가 아니라,
가장 먼저 나 자신에게 향한 통렬한 질문임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교회는
지친 이들의 숨소리를 들어주는 귀여야 하고,
아물지 않는 상처 위에 조심스레 얹어지는 손이어야 하며,
두려움에 떨며 들어서는 이를 향해
먼저 눈 맞춰주는 시선이어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아니라면,
우리는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
스스로를 위한 성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그 성벽에서 한 걸음 나와
바람 부는 광장에서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기꺼이 소금처럼 녹고,
빛처럼 드러나는 길을 택하려 합니다.

그리하여 언젠가,
우리의 교회가 누군가의 고백처럼 들릴 수 있기를,
“거기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환대받았다.”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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