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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죽는 것이 곧 사는 길입니다.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길입니다!

글쓴이 :  양승국 스테파노신부님이 2020-06-14 23:28:10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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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것이 곧 사는 길입니다.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길입니다!

 

 

사악함과 교활함에 있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왕비가 있었으니 사마리아 임금 아합의 아내 이제벨이었습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둘은 합세해서 힘없는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은 나봇이었습니다. 하필 나봇은 아합 임금 궁 바로 옆에 좋은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나봇이 싫다는데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아합은 나봇 소유의 포도밭을 팔라고 압력을 넣었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유산이기에 이를 거부하자, 부부는 의기투합해서 간계를 꾸밉니다.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위해 요즘으로 치면 뒷골목 조폭들까지 동원하고,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을 만드는 참으로 악랄한 부부입니다. 마침내 그리도 원하던 포도밭을 손에 넣은 아합 임금은 회심의 미소를 짓지만, 그 기쁨은 잠시뿐입니다. 부부가 합심해서 저지른 악행은 수천년이 흘러도 계속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사악함과 권모술수가 철철 넘쳐흐르는 아합 임금과 이제벨 왕비 부부를 보니 한 비슷한 부부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군인으로서 충실해야 할 국방의 의무는 뒷전이고, 어수선한 정국을 틈타 탱크를 앞세워 정권을 잡으신 분, 만만한 재벌들 등쳐서 천문학적 재산을 축척한 분, 부정축재한 돈 회수하려니 29만원 밖에 없다는 분, 그분이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보다 훨씬 멋질뿐 더러, 대한민국 민주화의 아버지라고 칭찬하는 그 부인!

 

 

지금이라도 진정으로 참회하고 반성하면 참 좋을텐데, 그럴 기색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아합 임금과 이세벨 못지 않은 비참하고 가련한 독재자와 부인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텐데, 그들 후손들은 참으로 불쌍합니다.

 

 

세월이 흘렀지만 아합 왕과 이제벨 왕비가 풍기던 악취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눈에 즉시 포착된 것이 백성들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을뿐 악행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사악한 왕과 왕비요 끄나풀들이었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습니다. 윗물이 탁하면 아랫물도 탁하기 마련입니다.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악행과 타락의 전문가들이며 권모술수와 착취의 달인이다보니, 그런 분위기는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퍼져나갔습니다.

 

 

최상위층에서 강탈해가니, 피해를 본 그 다음 층에서는 아랫 층에 화풀이라도 하듯이 강탈해가고, 강탈당한 사람들은 울분은 못참고 폭력으로 대응을 하고...이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를 눈여겨보신 예수님이셨기에 정반대의 가르침을 백성들에게 건네신 것입니다.

 

 

“악인들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오 복음 5장 39~42절)

 

 

예수님 말씀 언뜻 들으니 참으로 거부감이 느껴집니다.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으로서 그게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참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이며, 위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진리의 핵심은 언제나 수용하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그러나 기꺼이 수용하고 받아들일때, 그 순간부터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누릴 수 없는 대자유가 선물로 주어집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의 핵심 진리는 언제나 역설적입니다. 죽는 것이 곧 사는 길입니다.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길입니다. 내려서는 것이 곧 올라가는 길입니다. 작아지는 것이 곧 커지는 길입니다.

 

 

오른뺨을 제대로 한대 맞고 나서 강펀치로 대응하지 않고 왼뺨을 내미는 일,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주는 일, 천 걸음을 가자는 사람에게 이천 걸음을 가주는 일,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함께 하신때 가능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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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달샘맑은물 (2020/06/15 07: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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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세실리아99 (2020/06/15 17: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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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제자말따 (2020/06/16 10: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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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리스도교의 핵심 진리는 언제나 역설적입니다. 죽는 것이 곧 사는 길입니다.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길입니다. 내려서는 것이 곧 올라가는 길입니다. 작아지는 것이 곧 커지는 길입니다.

- 예, 명심하겠습니다.

기도와 신앙만 말씀하시지 않고, 우리나라를 걱정하시고 사랑하시는 여러 말씀들을 들을 때면 늘 공감하고, 이런 신부님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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