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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은혜롭게도 내게 와주신 예수 그리스도!

글쓴이 :  양승국 스테파노신부님이 2018-11-07 09:28:12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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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롭게도 내게 와주신 예수 그리스도!

 

 

살아생전 단 한번도 직접 대면한적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유일한 의미요, 삶의 전부인 주님으로 확신하는 바오로 사도의 고백이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기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바오로 사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분께 완전 매료되었으며, 홀딱 빠져버렸습니다. 그 결과 연인(戀人) 사이에서도 주고 받기 힘든 사랑 고백을 서슴치 않게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필리피서 2장 7~8절)

 

 

바오로 사도의 개과천선, 일생일대의 터닝 포인트를 마련하게 된 배경에 과연 무엇이 자리잡고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겪었던 낙마 체험 이후 바오로 사도는 즉시 파악하게 된 것입니다.

 

 

은혜롭게도 내게 와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고대해왔던 주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분은 종래 다른 예언자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신 분, 사랑 그 자체이신 분, 자비 그 자체이신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토록 미워하고 증오하고 박해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다려 주시고, 깨닫게 해주신 분, 마침내 보잘 것 없는 죄인인 자신에게 당신의 실체 전부를 온전히 드러내주신 분, 죄인들과 세리들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한 식탁에 앉도록 초대하시는 분이 그분임을 깨달은 바오로 사도는 완전히 무너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 소중한 깨달음 이후, 바오로 사도의 내면 질서는 완전히 뒤바뀌어버렸습니다. 그가 그토록 큰 의미를 부여했던 율법이나, 유다 사회 안에서 촉망받던 청년 지도자로서의 위치, 계획했던 대단한 꿈, 사랑, 청춘...

 

 

그 모든 것들이 부차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대신 첫번째 자리에 오직 주님 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말끔히 비우고 버린 자리에 가장 중요한 대상이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미국의 빌 브라이슨(1951~)이 쓴 ‘나를 부르는 숲’은 이른바 ‘애팔래치아 산맥 종주 실패기’입니다. 350개나 되는 산봉우리를 오르내려야 하며, 총길이 3,600 Km에 이르는 트래킹 코스를 종주하던 그는 이런 체험담을 남겼습니다.

 

 

“나는 애팔래치아 종주의 백미가 ‘상실’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모든 경험이 내 스스로를 일상생활의 편리함으로부터 철저히 격리시켰다. 가공 처리된 치즈나 사탕 한 봉지에 감읍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고, 코카콜라 한잔에 마치 처음 마셔보는 음료수인 것처럼 넋이 나갔다.”

 

 

더 큰 대상, 더 소중한 대상, 더 가치있는 대상, 더 아름다운 궁극의 대상이신 주님을 온전히 파악하고, 내 전부로 모시기를 원한다면 부차적이고 비본질적인 대상들에 대한 포기나 상실은 반드시 필요한 노력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S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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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8/11/07 12: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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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예수님제자말따 (2018/11/07 15: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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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람들에게 너무 집착하니까,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면서 참된 제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바라볼까,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을까를 걱정하면서, 여기에서 해방되지를 못하기에 하느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 저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왕따가 되고 자유를 얻었습니다. 밑바닥까지 가니 편안합니다. 남들이, 남의 시선이, 제가 인정을 받는 것이 무엇이 그리 중요했는지요. 오로지 하느님께 의지하자, 성모님께 의지하자 행복과 평화와 참된 자유가 찾아왔습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장미♡모바일에서 올림 (2018/11/07 19: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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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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