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데레사(1796-1840), 과부, 교수형(44세로 1840년 1월 9일 순교)

가톨릭 성인 김 데레사
나눔지기~♡ 2011/04/02 오후 08:2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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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데레사(1796-1840), 과부, 교수형(44세로 1840년 1월 9일 순교)

순교자의 피로 물들여진 기해년도 거의 저물어가던 음력 12월 5일(약력 1840년 1월 9일)에도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게 되었으니 그 이유는 그해 7월에 큰비가 내려 전국적으로 수천 호의 집이 떠내려갔고 수백 명의 목숨을 잃었으며 8월 1일에는 일식이 생겨 해를 가리고 12월 15일에는 역대 임금의 화상을 모셔둔 경복궁이 불에 타버리게 되니 정권을 잡은 자들로서는 이러한 천재지변(天災地變)을 심상치 않을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정치가들은 그해 안으로 흉측한 일을 처리해 버림으로써 좋지 않을 운수를 씻어 버리고 행복된 새해를 맞으려고 부랴부랴 신자들의 사형집행을 서두르게 되었다. 이때 교수형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과부인 김 데레사와 동정녀 아가다였다.

성녀 김 데레사는 충청도 면천 고을에 살면서 일찍부터 천주교에 입교한 집안 출신으로 1796년(정조 20년)경에 태어났다. 그녀의 조부였던 김진후(비오)는 1814년(순조 14년)에 해미에서 순교하였으며, 부친인 김한현(안드레아)도 1816년에 대구에서 순교하였다. 또한 그녀는 최초의 조선인 신부였던 김대건(안드레아)의 당고모이기도 하다. 박해로 인하여 집안이 이곳 저곳으로 피해 다녀야만 하였으므로, 데레사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녀도 이러한 집안 환경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성교의 진리를 배워 실천하였으며, 그녀의 세속 이름이 나타나 있지 않는 이유도 집안에서 데레사라는 본명을 즐겨 불렸던 때문이다. 그녀는 단아하고 자선심이 많을 처녀였다. 열 일곱 살이 되어서 손연욱 요셉에게 출가하였다. 단란한 생활 가운데서 여러 자녀를 낳아 모두 하느님을 경외하도록 교육을 시켰으며 충실히 하느님을 공경하며 살다가 그녀가 32세 되었을 때 남편이 해미 감옥에서 순교하자, 그때부터는 가난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통으로 만족하지 않고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단식 할 정도로 고행에 전심하였다. 그녀의 이러한 모습은 어질고 착실한 아내요, 신자다운 미망인의 아름다운 덕행의 모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이 죽은 뒤에 서울로 올라왔으나 오래 머물지 아니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때마침 유방제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게 되어 신부의 처소를 보살필 사람을 구하였는데 김 데레사가 이를 기쁘게 받아들여 열심히 일하였기 때문에 유 신부와 다른 모든 이들이 그의 양순함과 겸손함을 칭찬할 정도였다. 유 신부가 그후 조선을 떠나고 앵베르 범 주교가 입국하게 되자, 그녀는 다시 주교의 처소를 보살피는 사람으로 선택되어 일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박해가 일어났다. 그녀는 위험이 닥쳐왔지만 피신하려고도 하지 않고 여러 신자들과 함께 7월 19일에 붙잡혀 오라로 결박을 당한 채 옥에 갇혔다. 옥에서 고문과 갖가지 괴로움을 당하였지만 배교하지 아니하고 신자들을 고발하거나 선교사들의 피난처를 말하지 않았으며 꿋꿋한 태도로 태형 300대의 고통을 참아 받았다. 한편 박해의 원흉이던 대신 조인영(趙寅永)은 일의 진전이 너무 부진하다고 생각하여 공식적으로 처형시키면 많은 시간이 걸려 설날 이전에 일을 다 마칠 수 없다고 보아,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죄수를 옥에서 교살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참수형 대신에 옥에서 교수형으로 신자들을 죽였다. 이 교수형에 의해서 순교한 첫 신자가 바로 김 데레사와 그와 함께 순교한 이 아가다였다.

김 데레사는 여섯 달 동안이나 옥중에서 고초를 겪은 후 마침내 교수형의 선고를 받자 형리들이 옥안으로 들어와 그녀를 끌어내어 특별한 옥으로 데리고 갔다. 형리들은 그녀의 목에 끈을 감고 양쪽에서 오랫동안 잡아 당겨 끈이 양쪽 끝을 말뚝에 단단히 감아놓으니 김 데레사는 44세의 일기로 남편의 뒤를 따라 순교의 영광을 차지하였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김 데레사의 집안처럼 대대로 순교자를 낸 집안이 많이 있다. 부모, 형제, 자매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가 하면 그들의 자녀와 손자들은 옥에로, 형장에로 선조들의 뒤를 어이 그분들이 피로 물들인 땅을 자기들의 피로 다시 적시니, 가지를 베어 내도 또 다시 돋아 나는 것처럼 순교의 은총은 이렇게 끊일 줄 모르고 대대로 주님을 증거 하는 데 앞장서게 하였다.


<교훈>
하느님께 대한 김 데레사의 항구심을 본받아 우리가 현실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어려움을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며 주님을 위한 평화의 도구로 각자의 삶에 충실하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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