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 조윤호 요셉(1847-1866), 농업, (19세로 1866년 12월 23일 순교)

가톨릭 성인 조윤호 요셉
나눔지기~♡ 2011/04/02 오후 08:16 (2,354)
聖 조윤호 요셉(1847-1866), 농업, (19세로 1866년 12월 23일 순교)

조윤호 요셉은 순교자 조화서(베드로)의 아들로, 1848년에 충청도 신창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친을 따라 1864년에 전주 성지동에 이사한 후 이곳에서 이 루시아와 결혼하여 부친과 한 집에 살면서 교우 본분이나 규범을 충실히 지켰으며, 모든 신자들이 그를 좋아했다. 조 요셉은 부친의 성품을 닮아 용감하면서 신심생활을 대단히 열심하였다.
이들 부자간에는 토론도 종종 하였고, 한편 결혼 후 부모 밑에 사는 처지라 말다툼도 자주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은 깊은 부자간의 정 을 나누며 부자가 신앙생활에 전 생애를 걸고 살아나갔다.
그러던 중 박해가 시작되어 12월 4일에 포졸들이 아버지 조 베드로를 체포하여 그의 집에서 심문을 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달려가니 그의 아버지 조 베드로는 아들에게 머리 피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요셉은 "아버지 저더러 이제 어디로 가란 말씀이십니까? 저도 같이 묶어 가기가 소원입니다. 이제껏 믿어온 믿음이 결코 헛되지 아니하게 저도 잡혀 가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저는 순교하는 날을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모릅니다"하며 아버지와 함께 잡혀 압송되었다.
전라감사 앞에 불려가간 요셉은 먼저 문초를 받은 아버지가 배교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배교하라는 감사의 말에 "아버지의 일은 아버지가 처리하실 줄 압니다. 저로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배교할 생각이 없으니 통촉하십시오"하고 말하였다.
감사는 성교 도리를 가르쳐준 사람과 서양책을 어디에다 숨겼는냐고 묻자 그는 "성교도리를 가르쳐준 분은 1839년에 치명하신 할아버지이며 책은 가진게 한권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조 요셉은 오랜 문초와 심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확고 부동하게 그이 부친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렬하게 자신의 신덕을 용감히 증거하면서, "내가 살고 죽는 것은 당신들의 권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달렸으니 그런 말을 아예 그만 두어라"고 그들에게 당당하게 대답하였다.
얼마 후 그보다 먼저 사형장으로 끌려 나가는 그의 부친을 보고 마지막 헤어질 때, '아버지! 아버지은 영복소로 떠나십니다. 거기에 가시더라도 저를 잊지 마십시오'라고 하자, 그의 부친은 "물론 나는 영복소로 간다. 그러나 너도 마음을 단단히 다져먹고 곧 나를 따르도록 하여라"고 격려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부자를 죽이지 못한다는 국법이 있어 아버지는 먼저 순교하고 그는 기다리게 되었다.
전주감사는 다시 한 번 이 젊은이를 배교시켜 보려 시도했으나 허사로 돌아갔다. 포졸들은 사형장으로 향햐는 긴 여행중에서까지 배교하면 잃어버린 재산을 모두 다시 찾아주겠다고 하면서 그를 꾀어보았다. 그러나 "나의 생사의 결정짓은 것은 당신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그만 두십시오"라고 하엿다. 그러자 앞에 가던 포졸이 목에 쓴 칼을 잡고 거의 5리가량 뛰는 바람에 조 요셉은 그만 지처 녹초가 되어 버렸다.
그날을 장날이었으므로 감사는 젊은 사형수를 동정하여 아낙네가 벌려놓은 음식물을 사주자 성호를 정성껏 긋고 먹었다. 그러자 감사가 "맛이 어떠냐?"고 묻자 "천주님이 주신 것이라 썩 좋습니다"하고 대답하자 "어쩌면 그렇게도 맛있는 음식이 있는 세상을 들지려 하느냐?" "우리 아버지를 끊어버려야 살려 주신다 하니 어찌 끊을 수 있겠습니까?" "너는 죽은 뒤 천당에 간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아직도 믿느냐?" "틀림없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도리 없다고 생각한 감사는 바지를 벗기고 엎드리게 하였다. 손은 머리 위로 묶고 양쪽에 서서 곤장을 교대로 치기 시작했다. 곤장은 수 없이 부러져 나갔고 얼마는 쳤는지 친 사람도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렇게도 빳빳하던 고개가 드디어 푹숙여졌다. 이른 본 사람들은 요셉이 죽은 줄 알았다.
그러나 요셉이 죽은 것이 아니었다. 뒤늦게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안 포졸은 장터로 모여든 거지떼를 시켜 밧줄로 목을 매고 양쪽에서 당기니 숨을 거두었다. 조 요셉의 장안 순교로 그의 집은 연 3대의 순교자 가문이 되었다.
그의 시체는 그의 부친과 함께 서문 밖 서천교 위에 있는 용머리 재에 묻혔다.

<교훈>
"우리 가운데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없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더라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7-8). 이 성서의 말씀과 "나의 생사를 결정짓는 것은 당신들이 아닙니다"한 조 요셉의 말을 배교해 봅시다.
우리는 지나치게 생에 애착을 가지기에 오히려 생을 좀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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