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작품 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단편이 있다. 간략하게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세상에 내려가 아무개의 생명을 거두어 오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죽음의 천사가 그 아무개에게 가보니 얼마 전에 남편을 잃고 쌍둥이 여자 아이를 낳은 젊은 여인이었다. 쌍둥이 아기를 자기 손으로 키우게 해달라는 여인의 호소를 외면할 수 없어 죽음의 천사는 그대로 돌아간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다시 내려가 산모의 혼을 거두어라. 그러면 세 가지 뜻을 깨닫게 되리라. 즉 사람의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그것을 알게 되면 하늘나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죽음의 천사는 다시 인간세계로 내려와 산모의 혼을 거두었지만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헐벗은 몸으로 인간 세상에 남겨진다. 그는 어느 가난한 구두장이에게 발견되어 그 밑에서 구두 만드는 기술을 배워 6년간 성실한 구두장이로 살아간다.
그 6년간 죽음의 천사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뜻을 깨닫고 마침내 하늘나라로 올라간다.
어느새 한 해가 다 저물고 있다. 매번 묵은 달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지난 한 달 무얼 하며 살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나는 매일 매일의 일정표를 비교적 상세하게 적는 편이다. 미리 잡혀 있는 약속이나 행사는 물론이고 그 날 그 날 무엇을 했는지 메모한다. 그러지 않으면 일주일 전의 일은 고사하고 하루 이틀 전의 일도 내 기억 속에서 증발해 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으로 살았는지는 고사하고라도 무얼 하며 하루하루 보냈는지는 알면서 살고 싶은 거다.
매 달 거의 공백으로 시작되었던 달력은 중순을 넘어가며 빈 칸 없이 메워진다. 내용을 훑어보면 어느 날은 누군가를 만나 외식을 하고 차를 마셨으며 손주들과 놀기도 하고 틈틈이 책도 읽었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린 날은 없다는 말이다. 소파에 누워 리모컨을 이리 저리 돌리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건 내 생리에 맞지 않는다. 어느 집에나 다 있는 티브이도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필요한 정보나 볼거리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이면 다 해결이 되니 티브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말 즈음이면 시간을, 세월을 도둑맞은 것 같은 이 상실감은 무어란 말인가. 그건 아마도 시간을 어떻게 촘촘하게 사용했는가 하는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인 거 같다. 하루하루를 아무리 충실하게 살아도 정신 줄은 어딘가에 저당 잡힌 것 같은 표피적인 삶 말이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사색하지 않으면 독서의 의미가 없는 것처럼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이 없다면 나의 영혼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고 옛 성현들은 가르쳐왔다.
남은 시간, 그게 일 년이든 내게 주어진 생의 마감시간까지든 나를 돌아보고 내 소리를 듣는 마음의 여유를 되찾으리라 다짐해 본다. 온전히 사랑으로 살지는 못한다 해도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찬 무거운 마음속을 헤집는 공허의 바람소리에 나를 맡길 수는 없지 않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