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하고 출시되는 신제품의 홍수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쓰던 물건이 고장 나면 쉽게 버리는 게 또한 현대인들의 생활 습관이다. 수리하는 비용이 새 물건을 사는 것보다 더 많이 든다는 게 그 이유다.
나만 해도 쓰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휴대폰이 여러 개나 된다. 고장이 나서가 아니라 신제품에 밀려난 것들이다. 어쩌다 집안을 정리할 때면 한 때 요긴하게 쓰였지만 지금은 허접 쓰레기로 변해 공구함에 처박혀 있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잠깐씩 감회에 젖는다. 거기에는 버려서는 안 되는, 버릴 수 없는 내 지나간 시간들의 추억이 묻어 있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예전에는 한국의 아파트 상가나 주택 골목에 전자제품 수리점이 있었다. 쓰던 물건이 고장 나서 버리고 새로 산다는 건 언감생심이던 시절, 수리점은 병원만큼이나 필요한 곳이었다. 오래 되어서 말썽을 부리던 물건을 수리해서 다시 사용하는 게 상식이었던 그 때는 모든 게 소중하고 애틋했다.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물건이나 사람을 귀한 줄 알고 아꼈다.
손주들의 생일이 돌아오면 무언가 요긴한 물건을 선물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쇼핑몰을 기웃거린다. 아무리 뒤지고 살펴도 요즘의 아이들에게는 필요한 물건이 없어 보인다. 학용품은 넘쳐나도록 많고 옷은 어미의 감각을 따라갈 수 없으니 할머니가 선물할 게 못된다. 우리 집 아이들은 게임기라든가 오락기기 같은 건 가지면 안 되는 줄 안다. 그렇게 교육시킨다. 그렇다고 장난감이나 바비 인형을 선물로 받고 좋아할 나이도 지났으니 그럴 때마다 나는 엉뚱하게도 내가 지나온 궁핍의 세월을 그리워한다. 양말 한 켤레, 연필 한 다스, 열두 가지 색깔의 크레용 한 갑만 받아도 오래도록 기쁘고 행복하던 그 시절을 말이다.
우리 집 큰 딸은 오래 된 토스터를 쓰고 있다.
딸이 신혼살림을 차릴 때 장만한 물건이니까 올 해 열 네 살인 첫 아이보다 더 나이를 많이 먹었다. 표면의 칠이 벗겨지고 여기 저기 지워지지 않는 얼룩도 생기고 눋기도 한 토스터에 빵을 구우며 나는 가끔 딸을 꼬드겼다.
이거 좀 개비하지?
그러면 딸은 펄쩍 뛰곤 했다. 아무리 뒤져도 저만한 기능의 토스터를 찾을 수 없다는 거였다. 오븐 역할도 하고 냉동 제품과 냉장 제품을 분리해서 조리할 수 있는 그 물건의 성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내가 독립해 살면서야 깨달았다.
내가 현재 사용하는 신제품이란 토스터는 사용방법에 서툴러서인지 몰라도 자칫하면 빵이 토스트가 아닌 숯검정이 되곤 한다.
이처럼 오래 된 물건이 더 빛나는 경우도 있다. 하물며 사람의 관계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