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살던 고장(샌디에고)에는 팜트리가 많았다. 집주변 도로에는 미끈한 팜트리가 줄지어 서 있었다. 산책을 하다가 다리쉼을 하기 좋은 곳에 이르면 벤치에 앉아 아득한 높이에서 팜트리 잎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듣거나 훤칠한 청년의 등판처럼 든든한 팜트리 몸통에 기대서서 나무의 심장에 귀를 기울이곤 했었다. 마치 건강한 심장의 박동소리와 같은 수액의 왕성한 흐름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그 때는 잘 가꾸어진 팜트리만 내 눈에 들어왔다.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온 뒤 내 눈에 들어온 나무의 세계는 종류도 다양했고 모두 연륜의 깊이가 느껴지는 투박한 모습이었다. 유목이 아닌 성목은 어느 것 하나 성한 것이 없었다. 바닷가의 찬바람에 견디느라 몸통은 거칠고 상처 투성이었으며 그 상처의 옹이가 무늬처럼 선연했다.
산책을 하다 보니 주변의 나무들이 잔가지가 모두 잘려나간 추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아마도 전지작업을 한 모양이었다. 잔가지라고 표현하지만 그건 잔가지가 아닌 유목의 몸통보다 더 굵은 가지들이었다. 가지가 더 굵어지면서 잎도 무성해지면 미관도 해치고 걷는 이들의 시야를 막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나무의 속살은 그저도 부드럽고 촉촉했다. 여전히 싱싱한 체취를 풍기며 십여 개의 나이테마저 고스란히 드러낸 상처의 흔적. 그 연한 속살이 원래의 나무 등걸과 같은 빛깔의 옷으로 갈아입고 아름다운 무늬로 자리매김 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고통의 시간들을 견뎌야 하는 것인지.
벼르기만 하다가 매번 개장 시간을 놓치곤 하던 집 근처의 분재 가든을 둘러 볼 기회가 생겼다. 젊은 시절부터 분재에 관심도 많았고 아무 생각 없이 그 정교한 아름다움에 취한 적도 있었다. 그 아름다움 이면에는 인간의 취향과 강제성에 따라 변형되는 성장의 아픔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는 그랬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저녁식사를 마칠 즈음의 그 시각에, 손을 꼭 잡고 마치 2인 3각 경주라도 하듯 발맞춰 정원을 몇 바퀴고 도는 중국인 노부부가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다정하게 속삭인다. 그들 뿐 아니라도 정이 두터워 보이는 노부부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그들이 이 시점에 오기까지 늘 좋고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시련도 있었을 것이고 유혹이나 난관에 부딪쳐 절망하던 시기가 왜 없었을까. 그래도 인생의 모든 아픔을 잘 견디고 일생을 살아낸 그들의 모습은 꽃보다 더 아름답다.
한 송이의 들꽃조차 개화의 진통 없이 거저 피는 꽃은 없을 터인데 하물며 인생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래서 모든 사물의 뒷모습은 처연하지만 숭고하기에 더욱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