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가 행복하게 죽어???

글쓴이 :  나르다님이 2018-10-29 10:37:46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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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몇년전에 우연히 다윗과 밧세바를 읽으면서 제 빠른 생각으로,(2 사무엘 11장) 

과연 주님께서 우리야를 사랑하신다는것이 묵상이 되어질까, 순간 강렬한 호기심이 생겼어요. 

 

다윗은 밧세바와의 불륜을 감추기 위해서, 결국은 우리야를 전쟁터의 가장 치열한 격전지로 보내서 전쟁중에 죽게 하는데, 

우리야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죽음이 어떻게 주님의 사랑으로 묵상이 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입니다. 

 

“저는 기도중에 우리야의 이야기를 천천이 다시 되새겨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야의 미련하리 만큼 왕에게 우직하고 믿음깊은 신실한 성품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생각속에서, 이리저리 우리야의 성품에 대한 추측성 상념들을 따라가다보니, 

어느 순간에 갑자기 마음안으로 어느 순간에 확 들어오는, 어떤 그림같이 보여지는 것이 있습니다. 

 

제 마음으로, 보고있는 것이(이것은 환시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지는것인데, 

마치 눈으로 보이는것처럼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어디에선가 사람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들이 어떤 한 무리라는 생각이 들고, 이게 뭘까? 의문을 가지니, 곧 제 마음안에서 전쟁터라는 생각이 올라옵니다. 

 

그러면서 제가 아! 우리야의 전쟁터이구나! 하고 이해되어지면서 

다음 순간에 

누군가의 숨을 거두기전의 마지막 순간을 보고 있는것 처럼 느껴지면서, 

그런데 그게 숨을 거두기 위해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것이 아니라, 

마지막 숨까지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굉장히 장렬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아주 짧은 순간에, 굉장히 평온하면서 굉장히 만족스러운, 행복한 느낌이 들더니, 

그 순간에 벼락과 같이 어떤 생각하나가 올라옵니다. 

 

‘우리야를 위한 주님의 사랑은 그를, 우리야 자신이 믿는대로 명예롭게 죽게 하는 것’이라고요.”

 

그당시에 저는 이것이 어느면으로는 이해가 되었어요. 

만일에 이 전쟁에서 살아서 돌아간 우리야는 어찌할수 없이 , 

자신이 충성을 다해서 모셔온 주군 다윗의 불의함을 눈으로 보게 될것이고, (아내가 임신했으므로) 

그것이 우리야에겐 더할수 없는 고통이 되었겠구나. 

그러니 주님은 그렇게 충직한 우리야가 이중삼중으로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으시겠구나! 

어쩌면 주님보시기에 우리야가 자기의 믿음대로 그렇게 장렬히 죽는것이 우리야에게 베푼 최선이었겠구나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쩌면 그것이 주님께서 진정으로 의인을 돌보시는 방법일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그당시에 기도를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제가 우연히 제 파일에 들어있는 이 묵상을 다시 읽게 되면서 

이상하게 이묵상이 제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나는것을 느꼈어요. 

 

제가 치킨, 호프집을 인수해서 한창 수리중인데, 

오래전에 알고 지냈던 형님이, 그동안 통 제 근황을 모르시다가, 

치킨, 호프집을 인수한것을 아시고 너무나 놀라시고, 이어서 대뜸 제게, 

“ 아이고! 나르다야, 정신차려! 하느님이 너를 구한게 아니라, 산장 그 자매를 구한거야” 말씀하셨어요. 

 

저는 갑자기 뒤통수를 강타당한 느낌이 들었어요. 

“뭐라고요?!!!ㅠㅠ”

하지만 마음속에서

어떤 반발같은게 생겨서 기도를 하게 되면

저는  이상하게 우리야에게 가 있게 되더라고요.

 

그 형님의 말씀대로, 주님은 다윗과 밧세바를 구하시고자 우리야를 죽게 하신거구나’ 하는 

이미 알고 있었어도 그리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그러고보니,

이건 마치 제가 희생되어야하는 우리야입니다.

 

그래서 한 며칠은 엄청 마음이 상했는데, 

그런데 며칠의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도 제 마음안에서 어떤 행복한 마음이 실실 피어오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행복한 마음이

이상하게 우리야가 죽어가면서 느꼈을 그 행복함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흠.....그것은 제가 기도하면서 느껴왔던 그런 행복함보다 훨씬 더 깊은 평화입니다!!!!

 

그리곤 인정하고 싶진 않아도,

 ‘내가 우리야의 격전지에 나도 모르게 들어서 버렸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래서 제가 느끼는 이 평안과 행복한 마음이, 

‘우리야가 죽음의 순간에 느끼고 있었던 그 찰나의 행복한 시간을 가고 있구나!하고 알아집니다. 

그리고 ‘우리야는 그곳에서도 이기기 위해서 후회없이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는거,

그래서 죽음의 순간에도 행복할수 있을거라고요. 

 

그래서 그것은 

우리야, 자기의 지나온 매순간들, 

전쟁터분이 아니라

그 모든순간을,신실한 믿음으로 치열하게 살아와서 죽음의 그 순간에서도 평안하고 행복했다는것

(제게 느껴지는 그 행복함-저 죽을줄 모르고 행복한)이 마음깊이 이해가 됩니다.

 

그가 전장에서 돌아와서 왕과 아내의 현실을 맞닥뜨렸을때, 

우리야는 어떠했을까?

어쩌면 그는 그것을 극복하는거나, 타협하는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부러뜨렸을지도 모르지, 하는 생각이 드는것을 보면, 

주님께서 보고 계신것이 이것이었을까?

어쩌면 우리야는 강하되 구부러지지 않고 부러지는 사람이었을지도...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면 그것이 주님께서 허락하신 죽음이,

그런 우리야에게 주신 최선의 사랑이겠구나, 하고 생각해봅니다.

 

의인을 의인으로 남게 하시고,

그리고 우리야의 죽음을 잊지않고

나중에 다윗에게 죄값을 받아주시는,

 

그리고 제가 저도 모르게 들어와 버린 여기, 

우리야의 전쟁터, 그 격전지가 지금부터 저의 여정이라고요. 

그토록 치열한, 죽어야하는 전쟁터에서 저도 우리야처럼 매순간 마다 최선을 다해서 행복하게 죽어갈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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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총댁 (2018/10/29 16: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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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다님의 글을 읽으니 우리 부부가 종종 하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당신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우리의 사는 모습을 보면,

남편은 처복이 무척 많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저는 남편 복은 별로

없는 것이지요.

 

요즘에야 부부가 다 함께 일해서 먹고 살지만

예전에는 남편 잘 만나면 여자는 굳이 일하지

않아도 잘 살았거든요.

 

아무튼 이런 우리 부부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 맞아, 주님께서 당신을 엄청 사랑하시는가 보다.

그러고는 웃습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주님께서 많이 많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행복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제는 고생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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