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한다. 그 사람이 그런 일을 시작하리라고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 그 사람이 어떤 일을 시작하더라도 응원하는 사람들, 한 사람이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자체를 가치롭게 보는 사람들이 그에게 격려를 보낸다.
시간이 흐르고 그 사람이 새로 시작한 어떤 일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게 된다. 별다른 진전도 없이 늘 하던 일을 하고 있는 그 사람을 그가 아닌 사람들은 점점 잊어간다. 별다른 진전이 없음과 사람들의 무관심은 그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그 일을 계속해야 할 당위성도 타당성도 의미도 없어 보인다. 가끔은 그 일을 지속할 수 없는 극적인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인해, 그 사람은 그 일을 계속하기로 마음먹는다. 서두르지 않고 한 번에 한 걸음씩 나아가기로 작정한다. 얼핏 보기에는 똑같은 일의 반복이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지루할 수 있으므로 이 부분의 필름은 빠른 속도로 감긴다.
점진적 프로세스를 단숨에 축약하여 보여주는 방식이다. 영화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물론, 영화니까 그렇다. 이를테면 같은 동작에서 몇 번이나 넘어지던 체조선수가 연습을 거듭하여 그 동작을 클리어한다거나 숟가락으로 하루에 1센티미터씩 구멍을 파던 죄수가 마침내 그 구멍으로 탈출을 한다거나 손가락을 다친 피아니스트가 불굴의 의지로 연습을 거듭하여 라흐마니노프를 치게 된다거나. 꽃이 피어나는 모습이나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촬영하여 고속으로 돌리는 것과 흡사하달까.
스토리도 주인공도 목적도 다르지만 이런 장면이 나오는 영화는 무수히 많다. 이상한 것은, 왜 그런 장면을 보여주는지, 그래서 결국 어떤 결과에 이를지 너무나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장면 앞에서 눈물이 솟구친다는 것이다. 그 솟구치는 눈물은 감동인 동시에 반성이기도 하다.
나무는 일 년에 하나씩 나이테를 만든다거나 매미는 나무껍질 안에서 일 년을 머문 다음 알에서 깨어나고, 유충이 되어 삼 년에서 칠 년 동안 열다섯 번을 탈피하고, 날개를 얻어 세상으로 나와 한 달을 산다는 이야기 같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한번에 모든 것을 얻으려 하는 욕망을 벼슬처럼 이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고 불평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자각 때문이다. 나는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의 잠정적 프로세스를 실시간으로 지켜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많은 시간을 쏟아붓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고 하지만 시간을 쏟아붓지 않고는 인생에서 무엇을 얻어야 할지 알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 때문이다."
- 황경신, 시에나의 시에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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