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부자와 가난한 라자로의 삶은 평행선을 달립니다. 삶의 조건은 정반대이며, 두 사람 사이에는 소통이 없습니다.
부자의 집 대문은 바깥에서 머물며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으려는 가난한 이들에게 닫혀 있습니다. 그는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매일 먹지만, 라자로는 종기로 뒤덮인 몸으로 배고픔에 시달립니다. 아무도 그를 돌보지 않지만, 개들만이 그의 상처를 핥아 줍니다. 이 장면은 최후의 심판에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다.'
라자로라는 이름의 뜻은 하느님께서 도와주신다입니다. 그의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섭리는 그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무시받았지만, 하느님께서는 기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지상에서의 불의에 대한 보상입니다. 이제 부자와 라자로를 가로막았던 문은 돌이킬 수 없는 큰 구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부자는 라자로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단순히 모른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외면했습니다. 만약 살아생전에 부자가 문을 열고 라자로를 도와주었다면, 그의 운명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를 알아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부자의 죄는 단순한 부유함이 아니라, 자신의 풍요 속에서 가난한 이웃을 외면한 무관심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부자는 이웃과의 관계를 닫았고, 결국 하느님의 자비에서도 멀어졌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 단순한 개인적 자선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불평등에 대한 책임도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원하면서도, 이웃에게는 닫힌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놀라운 사건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 우리 주변에서 가난한 이웃을 돌보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해야 합니다. 대문을 계속 닫아둔다면, 언젠가 그것이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큰 구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변을 살펴보고 이웃과 함께합시다. 작은 친절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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