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끔찍한 세월

글쓴이 :  tina님 2007-03-25 00:15:37  ... 조회수(54)
 

3월 25 일 사순 제 5 주일 일요일

 끔찍한 세월  
 
 
    글 : 양승국 신부님 /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요한, 8,1-11) 안개가 심하던 새벽 고속도로를  과속으로 달리던 한 젊은이가 추돌사고를 당했습니다.  다행히 생명은 건졌지만 후유증이 컸습니다.  하반신을 못쓰게 되었고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야만 했습니다.  워낙 자존심이 강했던 젊은이는  자신의 처지가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싫었습니다.  그 누구의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시 암담했던 자신의 심정을 그는 이렇게 글로 표현했습니다.  "나는 물 한잔을 마시려고 휠체어를 밀어  냉장고 앞으로 다가갔다.  물을 따르던 나는 실수로 유리컵을 놓쳐 버렸다.  바닥에 흩뿌려진 유리 파편들을 바라보던  나는 이런 생각에 잠겨 들었다.  <이 유리 조각들은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어버리고  회색 빛 나날을 살아가고 있는 내 신세와 어찌 그리도 똑같은가?>" 그렇게 끔찍한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월이 약이겠거니" 하고 견뎌 왔지만 마음 같지 않았습니다.  당장 죽을 것만 같은 깊은 슬픔에,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은 심연의 고통에  젊은이는 가까운 성당을 찾았습니다.  젊은이는 힘겹게 휠체어를 밀고 앞으로 나갔습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대성당 한 가운데 통로를 거쳐  십자가상 바로 아래까지 도착했습니다.  올려다보니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  고통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마치 이런 말씀을 하시는 듯 했답니다.  "애야, 힘 내거라.  네 십자가도 무겁겠지만 내 십자가는 더 무겁단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말없이 서로 고통스런 십자가를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뒤쪽 배경은 은은한 빛깔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성당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색조가 마침내 젊은이 마음에 와 닿던 순간,  머릿속이 환해지는 느낌과 함께 이런 생각이 밀려왔답니다.  "그래!  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도 결국은  유리를 조각 내어 만든 작품이 아닌가?  그렇다면 산산조각 나 버린 내 인생으로도  아름다운 작품 하나 정도 만들 수도 있겠지?  그래, 충분히 방황했으니 이제 다시 한번 일어서야겠어." 하느님께서는 가끔씩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방법을 통해서  우리를 치시고 우리를 바닥에까지 끌어내리십니다.  용광로같이 뜨거운 시련을 통해서 우리를 재창조하십니다.  우리를 일으켜세우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지혜의 말씀 한마디로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온  한 여인을 죽음으로부터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 오랜 질곡의 세월에서 해방시키십니다.  그 여인은 갈 데까지 갔던 여인이었습니다.  더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던 여인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손을 내미십니다.  그녀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녀에게 새 인생을 되찾아 주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단죄가 아니라 구원"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 지요.  복음서 전체는 "단죄가 아니라 구원"이라는  예수님 사명을 구체화시키는 하나의 장(場)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예수님 손을 잡고 다시 한번 일어서는 여인의 삶을 묵상합니다.  여인 안에 자리잡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그 여인이나 저나 크게 다를 바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여인 못지 않게 밥 먹듯이 많은 죄와  과오 속에 살아온 제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아마도 인간이란 존재는 현재를 살면서도 과거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그래서 평생 자유롭지 못한 존재인가 봅니다.  늘 돌아보면 돌아볼 때마다 부끄럽고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부끄럽다, 창피하다" 면서  살아서 만은 안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젊은 시절, 미성숙함으로 그어졌던  우리 인생의 빨간 줄을 지우고  싶지 않은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한 순간 판단착오로 저질렀던 초대형 과실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느님 보시기에 인간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상처 때문이리라 확신합니다.  허물이 있기에, 부끄러운 과거가 있기에,  그로 인해 괴로워하기에 우리는 하느님 자비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인생여정에 상처는 필수입니다.  상처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존경하는 정호승 시인의 말씀처럼  "상처없는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진주도 상처가 있고, 꽃잎에도 상처가 있습니다.  장미꽃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그 상처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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