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주님과 함께하는 여정

글쓴이 :  tina님 2007-02-25 16:10:35  ... 조회수(54)
 
  
 

 

사순 제1주일

주님과 함께하는 여정   
 
    글 :  양승국 신부님 /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장   심한 식중독에 걸려 호되게 고생하던 때가 기억납니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꼬박 일주일간  링거주사에만 의지한 채 단식을 했습니다.  담당 간호사님은 매정하게도 제 침대 앞쪽에  '절대 금식'이란 팻말을 달아놓았지요.  그리고 매서운 눈초리로 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이틀간은 그런대로 견딜 만했습니다만  사흘이 지나면서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매끼 식사 시간은 제게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옆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분이 병원밥 투정을 하면서  딱 한 숟가락만 뜬 식판을 물리며 '그냥 내어가라' 할 때 
    저도 모르게 제 입에서는 '저런저런!'하는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배가 출출해지는 9시 뉴스시간 때마다 통닭이다,  족발이다 몰래 야식을 즐기는 '날라리 환자'들이 얼마나 얄미웠는지 모릅니다.  어찌 그리도 야속한 사람들이 다 있던지요.  당시 제 머릿속은 온통 평소 제가 좋아하던 음식으로 가득 찼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떡라면, 푹 고아서 얼큰한 우럭찌개,  매콤한 갈치조림, 그리고 소주 한 잔.  닷새가 지나가면서 헛것이 다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가져온 꽃바구니는 싱싱한 사과가 가득 담긴  과일바구니로 보이면서 입에 침이 다 돌았습니다.  창밖에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보니 달콤한 솜사탕 생각이 나더군요.  인간 생리구조상 하루 세끼 식사는 지극히 기본적인 것입니다.  단식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기본적 욕구인 식욕에  통제를 가함으로써 나름대로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이어트나 건강진단,  질병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단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단식은 하나의 목적성을 지닙니다.  사순시기 동안 그리스도 신자들은 작은 몸짓이지만  단식을 통해서 예수 수난에 상징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40일간 단식해 오신 예수께서  악마로부터 유혹받으시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지니신 하느님이기도 하셨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와 똑같은 육체 조건을 지니셨던 인간이셨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고통과 배고픔을 똑같이 겪으셨던 참 인간이셨습니다.  휴가지에서 40일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겠지만,  단식하면서 보내는 40일은 정말 지옥 같은 나날입니다.  허기가 져서 거의 탈진상태에 도달한 예수 앞에 악마가 나타납니다.  갖은 감언이설과 달콤한 유혹거리를 미끼로 내세우며 예수를 현혹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모든 유혹들을 의연히 이겨내십니다.  허탈해진 악마는 힘을 잃고 떠나갑니다.  예수께서 악마의 유혹 앞에 끝까지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묵상해봅니다.  아버지께 대한 항구한 충실성과 철저한 순명,  아버지를 향한 지속적 신뢰와 끊임없는 자아포기,  그 결과가 유혹의 극복이란 결실을 가져왔으리라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아버지와 연결된 끈을  끝까지 놓지 않음으로 인해 우리는 강합니다.  우리는 나약하지만 아버지 현존 안에 뿌리내림으로 인해 우리는 강합니다.  세상 유혹 앞에 설 때마다 예수께서도 유혹을 받으셨음을 기억합시다.  아버지께 대한 간절한 기도를 통해  그 모든 유혹들을 물리치셨음을 기억합시다.  우리들 신앙 여정 주변에는 항상 갖은 유혹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광야를 걸어갈 때 우리가 느끼는 큰 유혹 중 하나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 그만 포기하고 돌아가거라'는 유혹일 것입니다.  아버지 집을 향해 순례를 떠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순례를 지속하기란 어렵습니다.  광야를 향해 출발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광야를 횡단하고 광야에 머무르기란 어렵습니다.  세례를 받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세례를 살기란 어렵습니다.  수도자로 서원을 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서원을 살고 지속적으로 서원에 충실하기란 진정 피곤한 일입니다.  가끔씩 포기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포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공통된 성격 유형을 지닙니다.  자신의 의지나 자신의 힘만으로 모든 것을 해보겠다는  자존심 강한 유형이지요.  하느님께서는 '끼리끼리' 혹은 '나 홀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함께 걸어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 광야를 횡단하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 한가운데 언제나 함께 계셨음을 기억합시다.  때로는 불기둥으로,  때로는 장막 안 성궤로 당신 백성들을 보살피셨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사순절이라는 광야 여정에는 악마에게서 유혹도 많겠지만 
    그 여정이 든든하신 우리 주님께서 언제나  동행하고 계심을 기억하는 은혜로운 나날이 되시길 빕니다.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댓글 쓰기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이전 글 글쓰기  목록보기 다음 글

 

본 게시물에 대한 . . . [   불량글 신고 및 관리자 조치 요청   |   저작권자의 조치요청   ]
| 마리아사랑넷 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메일추출방지정책 | 사용안내 | FAQ | 질문과 답변 | 관리자 연락 | 이메일 연락
Copyright (c) 2000~2024 mariasarang.net , All rights reserved.
가톨릭 가족공간 - 마리아사랑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