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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양승국 신부님 /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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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기억 한구석에 늘 자리하고 있는 한 자선 모임이 있습니다.
> 이 모임의 특징은 그럴 듯한 명칭도 정기 모임도 회장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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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따뜻한 영혼을 지닌 사람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보태는 모임입니다.
> 이 자선 모임에 가입한 구성원들은 물론 넉넉한 분들이 아닙니다.
> 새벽 시장을 운영하는 시장 상인들지요.
>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하면 두 명의 당번은
> 잠시 일손을 놓고 신속한 동작으로 시장을 한 바퀴 돕니다.
> 다들 환한 얼굴로 기쁘게 내 놓습니다.
> 트럭 위에는 팔다 남은 것이 아니라 최상급의
> 따뜻한 정성들이 차곡차곡 쌓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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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한 마음을 가득 채운 트럭은 새벽 공기를 가르며 힘차게 내달립니다.
> 가장 어려운 이웃들을 향해.
> 생각만 해도 흐뭇한 정경입니다.
> 모두가 잠든 꼭두새벽부터 치열하게 부대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새벽 시장.
> 그 한가운데서 이루어지는 훈훈한 사랑의 나눔이
> 극단적 개인주의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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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분들이 몇 년째 활동을 계속해 오면서 불문율처럼 지켜오고 있는
> 세 가지 원칙은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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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는 익명의 자선입니다.
> 모든 활동은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몰래 한다는 것이지요.
> 그래서 아직 사람들이 깨어나지 않은 꼭두새벽에 배달을 갑니다.
> 그리고 몰래 문 앞에 가져다 놓고 얼른 돌아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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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원칙은 활동 대상으로 가장 어려운 시설이나 개인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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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원칙은 팔다 남은 물건이 아니라 가장 싱싱한 물건,
> 가장 품질 좋은 물건을 내놓는다는 것입니다.
> 정말 착한 마음씨의 소유자들이지요.
> 그분들 마음 씀씀이는 진정 하늘에 닿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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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선 중에 가장 으뜸가는 자선은 익명의 자선입니다.
> 보란 듯이 떠벌리는 자선이 아니라 끝끝내 자신의 이름을 숨기는 자선.
> 할 일을 다했으면 미련 없이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자선.
> 끝까지 기자들의 취재를 거부하는 자선.
> 그것만큼 아름다운 자선은 다시 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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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눈만 뜨면 외치는 것이 이웃 사랑 실천입니다.
> 아침 기도 때마다, 미사 때마다,
> 강론 때마다 선포되는 말씀의 핵심 역시 이웃 사랑 실천입니다.
> 그러나 부끄럽게도 우리가 선포하는 사랑이란 단어는
> 많은 경우 혀끝에서만 맴돌다 사라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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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대한 많은 정의가 있겠지만,
> 저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기울이는 정성'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 '사랑 이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향해 내뻗는 따뜻한 손길'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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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삶이란 잡지에 소개되는 고급 인테리어처럼,
> 감명 깊은 영화의 어느 한 장면처럼 그렇게 단정하거나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 삶은 때로 얼마나 불공평하고 섬뜩한 것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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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면 너무도 큰 십자가 앞에
> 할 말을 잃고 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 너무도 깊은 슬픔에 잠겨 밥숟가락을 들 힘조차 없는 분들도 부지기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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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깊은 상처로
>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 없이 다가서는 의인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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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흐믓한 모습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 말없이 다가가 그들의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 주는 봉사자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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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이 한 가지 진리만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 사람이 죽어 입고 떠나게 될 수의의 특징은 호주머니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 알몸으로 이 세상에 온 우리는 결국 알몸으로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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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우리에게 남게 될 것은 우리가 가난한 이웃들에게 건넸던 사심없는 마음,
> 내밀었던 한번의 따뜻한 손길입니다.
> 임종 중에 있는 병자들을 찾아갔던 일,
> 사회 복지 시설을 방문했던 일,
> 갇힌 이들을 찾아갔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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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때까지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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