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개신교 신자들은 성모마리아 발현 사건에 무관심 합니다. 개신교측에서 보면 마리아 발현은 난감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마리아 공경을 경외시하는 다수 개신교의 사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들이 있어 나누어 봅니다.
먼저 30년 전쟁 (종교전쟁) 전 개신교 대 카톨릴의 갈등이 심화될때 1608년 결성된 카톨릭 제후들의 연합 Katholische Ligar 의 깃발이 마리아 기였습니다. 30년 전쟁이 끝나는 1648년까지 중에 활약했었지요. (사실 공식적으로 이때 전쟁이 끝났지만 국지전은 개속되었구요. 카톨릭측에서 상대편 적장이었던 발렌슈타인 백작과 협상을 시도하자 카톨릭 제후연합은 해산해 버립니다. )
30년 전쟁 발발에 직접적 시작이 프라하의 투척사건인데요, 프라하의 2차 투척사건에서 개신교측 시민대표들이 칼5세의 섭정관들을 창박으로 던져버린 일이 있었어요. (사실 칼 5세가 보헤미아의 왕이되고 개신교 많이 탄압했는데 보복이었죠.) 떨어지는 상황에서 섭정관들은 성모님께 기도했는데, '성모님이 보호해 주시면 떨어져도 니가 살겠지!' 하며 던졌는데, 떨어진 3명이 21미터 높이에서 떨어져는데 살은거예요. 성모님 편애고 기적이지요.
그 전 프라하에서 종교개혁을 외치던 얀 후스가 화형당해 죽고, 이에 반발한 후스파의 반란과 전쟁이 있었는데, 1430년대 후스파 일당이 폴란드의 국가상징물 격인 챙스터호바의 검은 성모 성화를 훔치다, 성모상이 수레에서 떨어지자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고 해요. 화가난 후스파 병사가 성모상을 칼로 두번 내리치고 세번 내리칠 때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합니다. (폴란드의 챙스터호바는 대표적인 성모신심 성지입니다.폴란드 출신의 비오2세교황님이, 자신의 조국을 이 성모님께 헌정한다고 기록하기도 했어요. 지금도 얼굴에 칼자국 2개있는 이 성모상은 폴란드의 국가상징물입니다.) 당시 후스파 군사라고 해봐야 거의 민병대 수준이고 약탈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성모성화를 칼로 내리치는 판단이 신앙심과 연결때문이라고 생각진 않지만, 죽었잖아요! 이 이야기는 폴란드에서 유명해요. 이렇듯 유독 카톨릭 편만드시는 많은 성모님의 일화는 개신교들에게 소외감과 심리적 반발을 만들었습니다.
영국 청교도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넘어간 뒤 (남미는 스페인, 포르투갈 식민지, 카톨릭이었죠. 아주 독실한)북미대륙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기 위해 카톨릭의 확장을 경개했습니다. 이에 관한 두개의 정책이 있었는데, 1> 성모공경 거부와 2> 금주령 이었어요. '와인없이 생활도 전례도 안되는' 카톨릭에게 상당한 방어효과가 있었습니다. 성공한 거죠! 그 정책을 미국발 한국 개신교가 그대로 이용하는 거예요. 술과 성모님에 관한 한국개신교의 태도는 독립전쟁시대 미국의 사회분위기에서 고스란히 기인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성서적 근거는 많이올라 오길래, 역사적 흥미로운 사건들로 접근해 보았습니다. 전 성모공경 거부가 성서적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거든요. 혹시 역사적이고 감정적이며, 전략적인건 아닐까요? 나눕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