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성당 판공 성사를 위해 고해소에 들어갔습니다.
고해소에 들어가자마자 신자들이 들어왔지만 고해사제와 고해자 사이를 가로막은 창살의 문을 바로 열지 않습니다. 저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고해소에 마련된 자주색 영대를 걸칩니다. 그리고 한쪽에 마련된 생수병을 열어 물 한 모금을 마십니다. 고해성사를 집전하기 전 짧은 개인 기도를 바치고 사죄경을 다시 확인합니다. 그리고 창창살의 문을 열어 고해자의 고해를 듣습니다.
성사를 집전하기 위해 고해사제와 고해자 사이를 가로막은 창살을 열 때마다 마치도 죄로 인해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단절시킨 굳게 잠긴 문이 활짝 열려 다시 하느님과 인간이 소통한다는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
주님의 수난과 돌아가심을 더욱 깊이 묵상하기 위해, 그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 고해소를 찾는 분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몸과 정신은 피곤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 성사를 보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고해사제석에 예전에는 없었던 물건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파란색 꼬깔입니다. 작은 목소리로 죄 고해를 하는 분의 말을 잘 듣기 위해 마련된 것인지, 귀가 어두운 분들을 위해 고해사제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해 마련된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저는 잘 듣기 위해 작은 구명을 귀에 대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해 성사는 고해사제가 말이 아닌 잘 듣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꼬깔을 귀에 대고 고해자의 이야기를 듣는데 사용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늘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고 공감하시고 그들을 이해해 주셨을 것입니다. 판단하고 단죄하기 위함이 아닌 받아들이고 용서하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고해성사를 집전하면서 유혹에 빠지기 쉬운 고해자의 죄에 대한 판단과 고해성사를 보는 자세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도록 늘 조심합니다.
고해자가 들어올 때마다 고해사제는 늘 성호를 긋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해자와 함께 성호경을 읊으며 성호를 긋거나, 성호경을 읊으며 성호를 긋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러고보면 고해사제는 고해성사를 집전할 때마다 늘 기도를 드립니다. 성호경도 최고의 기도문이고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며,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이름으로 모든 것이 이루지길 바란다는 의미가 성호경에 녹아있다면, 고해자의 수만큼 저는 거룩한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인자하신 천주 성부께서는..."
짧은 훈계 후에 바치는 사죄경. 고해성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자의 죽음과 부활로 세상을 당신과 화해시키시고,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성령을 보내신 하느님. 거룩한 가톨릭 교회에 부여하신 성사집전이라는 직무 수행의 권한을 통해 사제는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고해자의 죄를 깨끗이 없애줍니다.
고해성사를 집전할 때마다 저 역시도 다른 사람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어야 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는 다른 이들을 쉽게 용서하면서, 정작 제 자신은 다른 이들을 용서하지 못할 때가 많지 않은지 되돌아봅니다.
고해성사는 고해사제와 고해자 모두에게 유익합니다. 집전자와 고해자가 동시에 같은 은총을 받습니다. 집전자는 매번 성호를 그으며 삼위일체 하느님을 생각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며, 그 어떤 판단과 지적 없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너그러이 용서를 하면서 집전자 스스로도 이웃을 용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고해자는 성찰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발견하고 이를 발판삼아 주님의 은총으로 늘 좋은 몫을 선택하도록 도움을 받고, 자신의 죄를 치유받아 깨끗하게 됩니다.
이처럼 은총은 중재자와 청원자에게 똑같이 내려집니다. 그러기에 성사집전과 미사집전을 더욱 정성스럽고 거룩하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가시화시키는 거룩한 신비... 그 신비가 우리의 신앙, 교회의 역사를 지탱해 왔음을 기억하며 성사생활에 충실해야 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고해소에 들어가자마자 신자들이 들어왔지만 고해사제와 고해자 사이를 가로막은 창살의 문을 바로 열지 않습니다. 저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고해소에 마련된 자주색 영대를 걸칩니다. 그리고 한쪽에 마련된 생수병을 열어 물 한 모금을 마십니다. 고해성사를 집전하기 전 짧은 개인 기도를 바치고 사죄경을 다시 확인합니다. 그리고 창창살의 문을 열어 고해자의 고해를 듣습니다.
성사를 집전하기 위해 고해사제와 고해자 사이를 가로막은 창살을 열 때마다 마치도 죄로 인해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단절시킨 굳게 잠긴 문이 활짝 열려 다시 하느님과 인간이 소통한다는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
주님의 수난과 돌아가심을 더욱 깊이 묵상하기 위해, 그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 고해소를 찾는 분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몸과 정신은 피곤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 성사를 보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고해사제석에 예전에는 없었던 물건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파란색 꼬깔입니다. 작은 목소리로 죄 고해를 하는 분의 말을 잘 듣기 위해 마련된 것인지, 귀가 어두운 분들을 위해 고해사제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해 마련된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저는 잘 듣기 위해 작은 구명을 귀에 대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해 성사는 고해사제가 말이 아닌 잘 듣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꼬깔을 귀에 대고 고해자의 이야기를 듣는데 사용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늘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고 공감하시고 그들을 이해해 주셨을 것입니다. 판단하고 단죄하기 위함이 아닌 받아들이고 용서하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고해성사를 집전하면서 유혹에 빠지기 쉬운 고해자의 죄에 대한 판단과 고해성사를 보는 자세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도록 늘 조심합니다.
고해자가 들어올 때마다 고해사제는 늘 성호를 긋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해자와 함께 성호경을 읊으며 성호를 긋거나, 성호경을 읊으며 성호를 긋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러고보면 고해사제는 고해성사를 집전할 때마다 늘 기도를 드립니다. 성호경도 최고의 기도문이고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며,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이름으로 모든 것이 이루지길 바란다는 의미가 성호경에 녹아있다면, 고해자의 수만큼 저는 거룩한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인자하신 천주 성부께서는..."
짧은 훈계 후에 바치는 사죄경. 고해성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자의 죽음과 부활로 세상을 당신과 화해시키시고,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성령을 보내신 하느님. 거룩한 가톨릭 교회에 부여하신 성사집전이라는 직무 수행의 권한을 통해 사제는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고해자의 죄를 깨끗이 없애줍니다.
고해성사를 집전할 때마다 저 역시도 다른 사람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어야 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는 다른 이들을 쉽게 용서하면서, 정작 제 자신은 다른 이들을 용서하지 못할 때가 많지 않은지 되돌아봅니다.
고해성사는 고해사제와 고해자 모두에게 유익합니다. 집전자와 고해자가 동시에 같은 은총을 받습니다. 집전자는 매번 성호를 그으며 삼위일체 하느님을 생각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며, 그 어떤 판단과 지적 없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너그러이 용서를 하면서 집전자 스스로도 이웃을 용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고해자는 성찰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발견하고 이를 발판삼아 주님의 은총으로 늘 좋은 몫을 선택하도록 도움을 받고, 자신의 죄를 치유받아 깨끗하게 됩니다.
이처럼 은총은 중재자와 청원자에게 똑같이 내려집니다. 그러기에 성사집전과 미사집전을 더욱 정성스럽고 거룩하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가시화시키는 거룩한 신비... 그 신비가 우리의 신앙, 교회의 역사를 지탱해 왔음을 기억하며 성사생활에 충실해야 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교회의 거룩한 직무 수행을 상징하는 영대.
고해성사의 핵심인 사죄경. 늘 외우는 기도문이지만 다른 어떤 기도문보다 마음에 더 와 닿습니다.
죄 용서의 기적을 드러내는 기도문이라서일까요?

고해소의 사제석에 마련된 꼬깔. 잘 들리게 하기 위함이 아닌 잘 듣기 위함이라 믿고
고해자의 말을 더욱 가까이 그리고 확실히 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