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친한 수녀님 한 분과 차 한 잔 나누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신부님은 복음삼덕(순명, 청빈, 정결) 중에 어떤 덕목이 지키기 제일 어려워요?"
순간 고민했습니다. 살레시오회 안에서 처음으로 복음삼덕을 서원한 첫 서원 이후, 저는 그저 단순히 수도회 안에서 주어진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어떤 덕목이 저에게 지키기 제일 힘든 덕목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수녀님의 질문을 받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어떤 덕목이 나를 힘들게 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청빈이 제일 힘들다고 느껴요."
사실 지키기 쉬운 복음삼덕은 없습니다. 내 뜻을 내려놓고 장상을 통해 내려오는 하느님의 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명의 삶은 인생을 녹록지 않습니다. 돈과 명예를 버리고 가난하게 산다는 청빈의 삶도 쉬운 일은 아니지요.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사랑을 포기하고 오로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거룩한 사랑의 삶을 사는 정결의 삶도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지키기 어려운 덕목 속에서 제일 힘든 덕목을 찾으라니 어떤 덕목이 나에게 십자가처럼 다가오는지 쉽게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잠깐의 생각 가운데 내린 결론은 '청빈'이었습니다.
"제가 물건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뭔가 베풀어야 할 때 가진 것이 없으니 늘 받는 위치에 있다보니 미안하고 부담스러울 때가 많아요. 한 달에 한정적인 용돈을 받고 살다보니 예전에 함께 살았던 아이들이 찾아와도, 지인이 찾아와도 뭔가 통 크게 사주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것이 안 되니 청빈의 삶이 어렵죠."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 물질적으로 누리고 싶은 것들이 있고 어디론가 다니고 싶은데 청빈의 덕목이 저를 그것을 못하게 제동을 걸 때가 많은 것도 청빈이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물질적인 것과 담을 쌓을 수는 없지만 절제를 함으로써 세상의 것을 내려놓는 삶은 큰 결심과 의지가 아니고서는 지키기 힘든 것 같습니다.
사실 순명과 정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덕목이 더 힘들고 덜 힘들고는 없습니다. 굳이 힘들다는 것을 수치로 나타낸다면 순명, 청빈, 정결의 수치는 도토리 키 재기처럼 결과를 내기엔 무의미한 수치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힘들다고만 하면 안 됩니다. 그만큼 삶이 힘들어지고 괴로워집니다. 그러기에 순명과 청빈 그리고 정결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망을 바라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복음삼덕은 하느님을 위해 인간이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유익함을 저버리고 또 세상의 즐거움 포기하고 무조건 고생하고 괴로워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덕목을 실천했을 때 얻게 되는 은총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영적인 기쁨과 희망을 체험하게 될 것인지 이끌어 주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것이 복음삼덕입니다. 똑같은 덕목이라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것이 내 일상이 될 수 있고 그 덕목 자체가 나를 속박하는 올가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수도자가 아닌 이상 저 복음삼덕은 의무가 아니지만, 신앙인으로서 사는데 복음삼덕은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제가 받은 질문과 다른 관점으로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순명, 청빈, 정결 중에 무엇이 여러분의 신앙과 일상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줍니까? 이 질문을 그냥 넘기지 마시고 어떤 덕목이 왜 내 삶에 아름다움을 선사하는지 묵상하고 기도해 보시면 어떨까요?
"신부님은 복음삼덕(순명, 청빈, 정결) 중에 어떤 덕목이 지키기 제일 어려워요?"
순간 고민했습니다. 살레시오회 안에서 처음으로 복음삼덕을 서원한 첫 서원 이후, 저는 그저 단순히 수도회 안에서 주어진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어떤 덕목이 저에게 지키기 제일 힘든 덕목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수녀님의 질문을 받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어떤 덕목이 나를 힘들게 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청빈이 제일 힘들다고 느껴요."
사실 지키기 쉬운 복음삼덕은 없습니다. 내 뜻을 내려놓고 장상을 통해 내려오는 하느님의 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명의 삶은 인생을 녹록지 않습니다. 돈과 명예를 버리고 가난하게 산다는 청빈의 삶도 쉬운 일은 아니지요.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사랑을 포기하고 오로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거룩한 사랑의 삶을 사는 정결의 삶도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지키기 어려운 덕목 속에서 제일 힘든 덕목을 찾으라니 어떤 덕목이 나에게 십자가처럼 다가오는지 쉽게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잠깐의 생각 가운데 내린 결론은 '청빈'이었습니다.
"제가 물건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뭔가 베풀어야 할 때 가진 것이 없으니 늘 받는 위치에 있다보니 미안하고 부담스러울 때가 많아요. 한 달에 한정적인 용돈을 받고 살다보니 예전에 함께 살았던 아이들이 찾아와도, 지인이 찾아와도 뭔가 통 크게 사주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것이 안 되니 청빈의 삶이 어렵죠."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 물질적으로 누리고 싶은 것들이 있고 어디론가 다니고 싶은데 청빈의 덕목이 저를 그것을 못하게 제동을 걸 때가 많은 것도 청빈이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물질적인 것과 담을 쌓을 수는 없지만 절제를 함으로써 세상의 것을 내려놓는 삶은 큰 결심과 의지가 아니고서는 지키기 힘든 것 같습니다.
사실 순명과 정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덕목이 더 힘들고 덜 힘들고는 없습니다. 굳이 힘들다는 것을 수치로 나타낸다면 순명, 청빈, 정결의 수치는 도토리 키 재기처럼 결과를 내기엔 무의미한 수치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힘들다고만 하면 안 됩니다. 그만큼 삶이 힘들어지고 괴로워집니다. 그러기에 순명과 청빈 그리고 정결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망을 바라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복음삼덕은 하느님을 위해 인간이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유익함을 저버리고 또 세상의 즐거움 포기하고 무조건 고생하고 괴로워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덕목을 실천했을 때 얻게 되는 은총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영적인 기쁨과 희망을 체험하게 될 것인지 이끌어 주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것이 복음삼덕입니다. 똑같은 덕목이라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것이 내 일상이 될 수 있고 그 덕목 자체가 나를 속박하는 올가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수도자가 아닌 이상 저 복음삼덕은 의무가 아니지만, 신앙인으로서 사는데 복음삼덕은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제가 받은 질문과 다른 관점으로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순명, 청빈, 정결 중에 무엇이 여러분의 신앙과 일상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줍니까? 이 질문을 그냥 넘기지 마시고 어떤 덕목이 왜 내 삶에 아름다움을 선사하는지 묵상하고 기도해 보시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