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4년 4월 29일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글쓴이 :  빠다킹신부님이 2014-04-29 07:59:40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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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4월 29일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사도 4,32-37

32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34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36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으로,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얻은 요셉도, 37 자기가 소유한 밭을 팔아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복음 요한 3,7ㄱ.8-15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9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어떤 형제님께서 회사 일을 하다가 자존심을 상해 홧김에 사표를 냈습니다. 자기가 왕년에 얼마나 잘나가는 사람이었는데, 별 것도 아닌 사람에게 굽실거리면서 사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것이지요. 체면이나 명성을 유지하는 자존심이지만, 이렇게 자존심만을 세웠을 때 찾아오는 것은 결국 내일이 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 것입니다. 즉,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물론 어느 정도의 자존심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 자존심을 내세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전혀 듣지 않은 채 자기주장만을 철저하게 고집하게 될 때에는 다른 이들과 화합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항상 혼자 있는 나의 모습을 스스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자존심은 너무 세도 좋지 않고, 너무 없어도 좋지 않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나를 딛고 일어서 변화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를 사람들은 ‘자존감’이라고 말하지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내면자아의 존엄성이라고 말하는 ‘자존감’은 지나온 시간과 경험들을 통해서 그리고 삶 안에서의 열심한 노력을 통해서 차곡차곡 내 안에 쌓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외부의 비난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또한 굳이 외적으로 자기를 들어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행하고, 따뜻한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감싸 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인가? 아니면 자존심이 센 사람인가? 나는 혹시 ’왕년에‘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구시대의 틀 안에 잡혀 있는가? 아니면 지금의 삶에 감사하면서 겸손하고 사랑하면서 살고 있는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스승인 ‘니코데모’에게 어떻게 보면 모욕의 말을 전하십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그래도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었으며 또한 스스로도 많은 공부를 했다고 자부하고 있었을 텐데 “그런 것도 모르느냐?”라는 말을 듣게 되니 얼마나 얼굴이 화끈했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자극적인 말씀을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성령으로 태어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박학함에 우쭐대고, 유다인들의 스승 자리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성령으로 태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겸손과 사랑을 직접 보여주시지요. 그래서 전지전능하신 분께서 유한하고 나약한 육신의 몸을 취하셔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 겸손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랑하기에 낮은 자리도 기꺼이 선택하신 것이지요.

주님 앞에서 우리가 내세울 것이 전혀 없음을 기억하면서 주님의 겸손을 본받아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 구원 사업에 함께 동참할 수 있습니다.

뭔가로 보이지 않는다는 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지. 요컨대 아직 틀에 박히지 않았다는 얘기니까(무라카미 하루키).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


마음의 평화를 얻는 방법

많은 이들이 행복을 소유에 달린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런데 소유가 주는 만족은 순간일 뿐입니다. 이를 하버드대의 댄 길버트 교수가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발표했습니다. 글쎄 복권 당첨의 행복감은 평균 3개월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꿈을 이루거나 고급 승용차를 산 사람도 3개월이 지나면 예전과 똑같아졌다고 합니다.

이렇듯 소유는 순간의 만족만을 주기에 사람을 더욱 더 허무하게 만듭니다. 결국 행복은 내적인 마음에 있으며, 겸손한 삶과 사랑의 삶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있지요.

어느 날, 한 처녀가 길에서 요술 램프를 주웠습니다. 램프를 문지르자 램프 요정이 나타나 말했습지요. “아가씨! 소원을 말하세요. 한 가지만 들어줄게요.” 고민이 되었습니다. 소원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돈도 있어야 되고, 남자도 있어야 하고, 결혼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꾀를 부려 램프 요정에게 한꺼번에 소원을 말했습니다. “돈! 남자! 결혼!” 그러자 요정이 소원을 들어줘서 정신이 돈 남자와 결혼했다는 유머가 있습니다.

물질적인 소유만을 찾다보면 마음의 평화를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는 방법이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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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아니사랑모바일에서 올림 (2014/04/29 0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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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부족함 많은 저에게도 평화를 허락하소서....
  
  임티나모바일에서 올림 (2014/04/29 10: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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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규민엄마 (2014/04/29 10: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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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삶 / 사랑의 삶 -- 감사합니다

  
  사랑의마리아모바일에서 올림 (2014/04/29 10: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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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오늘 매일미사책 읽으면서 궁금했었는데
감사합니다!
  
  허요셉피나모바일에서 올림 (2014/04/29 14: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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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오늘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강론말씀 잘 들었습니다~ ^^
자존감을 가지고 주님의 자녀답게 사는게 무엇인지 묵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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