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4년 3월 22일 사순 제2주간 토요일

글쓴이 :  빠다킹신부님이 2014-03-22 06:17:26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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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3월 22일 사순 제2주간 토요일

제1독서 미카 7,14-15.18-20

주님, 14 과수원 한가운데, 숲 속에 홀로 살아가는 당신 백성을, 당신 소유의 양 떼를 당신의 지팡이로 보살펴 주십시오. 옛날처럼 바산과 길앗에서 그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15 당신께서 이집트 땅에서 나오실 때처럼, 저희에게 놀라운 일들을 보여 주십시오.
18 당신의 소유인 남은 자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19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
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20 먼 옛날 당신께서 저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을 성실히 대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자애를 베풀어 주십시오.


복음 루카 15,1-3.11ㄴ-32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1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12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14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15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18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25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27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29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31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소위 용하다는 점쟁이들이 있습니다. 글쎄 자신의 과거를 척척 잘 맞춘다면서 그들을 찾아가서 점을 보고 부적을 사가지고 오지요. 그런데 과거는 잘 맞추지만, 미래는 잘 맞추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그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그 사람의 과거나 지금의 모습만을 바라보고서 미래를 예측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모습이 형편없다고, 과거에 보잘 것 없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먼 훗날에도 똑같은 모습으로 살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보십시오. 분명히 변화되어 있는 내 모습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깨닫기 힘들다면, 갓난아기 때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세요. 분명한 변화가 보이지 않습니까? 저 역시 그런 변화를 많이 체험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일 때까지만 해도, 수학이나 화학 등의 이공계열 과목을 좋아했고 반대로 국어나 사회 등의 문과 쪽 과목은 제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특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그리고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저와는 아주 먼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지금 저의 모습은 제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을 앞세우며 살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또 제일 좋아하는 것이 여유롭게 책 읽고 생각하는 것이 되었으니까요.

결국 변화될 수 있는 내 자신을 깨달아야 합니다.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삶이 아니라,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세워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용서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작은 아들은 자기에게 돌아갈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지요. 국어사전에서 ‘유산’이란 죽은 사람이 남겨 놓은 재산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아버지가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미리 유산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아버지를 죽은 사람 취급하겠다는 것이며 그래서 아들의 자격을 잃어 마땅한 커다란 불효입니다.

이렇게 못된 아들이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모든 재산을 탕진하게 되지요. 더군다나 심한 기근까지 들어서 더욱 더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서야 그는 아버지의 품이 얼마나 좋은 곳이었는지를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리고 깊이 뉘우쳐 아버지를 찾아가 용서를 청했고, 또 아버지의 용서를 받게 됩니다.

만약 이 아들이 그냥 자신의 삶을 포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버지의 용서를 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아버지의 품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큰 죄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아버지께 나아갔기에 더 큰 선물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예전에 어떤 말기암 환자를 만났는데, 제게 “신부님, 저는 죄가 많아서 감히 고해성사 받을 자격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고해성사도 또 주님의 성체도 거부하더군요. 안타까웠습니다. 아무리 큰 죄라 할지라도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용서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데, 스스로 자격이 없다면서 거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사랑이 나의 모든 죄를 감싸 안아주심을 굳게 믿고, 당장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 있는 발걸음이 필요합니다.

신은 사람을 평가할 때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만져 본다(헌트).


램브란트의 '탕자의 귀환'


어느 아버지의 재산 상속

5남매를 모두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시집장가 보내고 이제는 한시름 놓은 어느 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아져 하루는 가족 모두를 불러 모았습니다.

“네 애비가 너희들 키우고, 사업 하느라 빚을 좀 졌다. 빚에 빚이 늘어나 지금은 한 7억 정도 된다. 내가 건강이 안 좋고 이제는 벌 능력도 없으니 너희들이 얼마씩 갚아 줘야겠다. 여기 이 종이에 얼마씩 갚겠다는 금액을 좀 적어라.”

가족 모두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재산을 꽤 많이 모아 두셨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빚이 있다고 하니 얼마나 실망을 했겠습니까? 그래도 아버지께서 도와달라고 하니, 종이에 금액을 적기 시작합니다.

먼저 큰 아들이 ‘이천만 원’이라고 적습니다. 이를 본 다른 자녀들은 ‘큰 형도 이천만 원밖에 안 썼으니 굳이 큰 액수를 적을 필요 없겠다.’고 생각하고는 마치 경매가격 매기듯이 적기 시작합니다.

둘째는 천오백만 원, 셋째는 천만 원, 넷째는 오백만 원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막내는 그렇게 살림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힘드셨으면 우리들에게 이런 부탁을 다 하실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일억 원’을 적었습니다.

수개월 후 다시 아버지가 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세요.

“내가 죽고 나면 너희들끼리 얼마 되지도 않은 유산으로 싸움질 하고 형제지간에 반목할까봐 재산을 정리했다. 지난번에 너희가 적어 준 액수의 5배를 지금 미리 주겠다. 이것으로 너희들에게 줄 재산 상속은 끝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모든 선행에 대해서 몇 배로 갚아주십니다. 즉, 내가 한 선행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나중에 받게 될 주님의 은총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생색내기 식의 행동으로 내가 받게 될 주님의 은총을 축소시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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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하늘 (2014/03/22 07:4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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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비를 쓰셨군요!

오늘도 주님의 자비를 생각하며 힘차게 용기있게 하루를 시작 하렵니다.

주님 저와 함께 하세요!!!

  
  리따모모 (2014/03/22 09: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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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탕자의 비유는 남의 이야기 아닌걸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말씀과 어느아버지의 재산 상속이 마음에 새겨집니다.

갑자기 마음이 편한해지고 희망이 보이는 것같습니다.

좋은 말씀 항상 감사합니다..

  
  박가브리모바일에서 올림 (2014/03/22 11: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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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탕자의비유와함께할수있다고생각하면서살아가는삶의선택..이모든것에감사할뿐입니다.
  
  루시아 (2014/03/22 12: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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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예수님!

빠다킹신부님,복음말씀과 강론말씀 감사히 잘들었습니다. 말기암 환자의 얘기가  가슴아프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그런마음이 교만함임을 그가 일찍 깨달을수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도 그런 교만한 마음을 지니지 않도록 주님께 인내와 겸손의 은총을 청합니다. 세상을 초월하는 가장 큰 보물이 '하느님' 이심을 우리가 깨달을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큰 보물을 잃지않기위해 변화되어가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신부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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