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4년 4월 7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글쓴이 :  빠다킹신부님이 2014-04-07 05:46:12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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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4월 7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제1독서 다니 13,41ㄹ-62

그 무렵 회중은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42 그때에 수산나가 크게 소리 지르며 말하였다. '아,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아시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 아십니다. 43 또한 당신께서는 이자들이 저에 관하여 거짓된 증언을 하였음도 알고 계십니다. 이자들이 저를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것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44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45 그리하여 사람들이 수산나를 처형하려고 끌고 갈 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셨다. 46 그러자 다니엘이 '나는 이 여인의 죽음에 책임이 없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47 온 백성이 그에게 돌아서서, '그대가 한 말은 무슨 소리요?' 하고 물었다. 48 다니엘은 그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여러분은 어찌 그토록 어리석습니까? 신문을 해 보지도 않고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어찌 이스라엘의 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수가 있습니까? 49 법정으로 돌아가십시오. 이자들은 수산나에 관하여 거짓 증언을 하였습니다.'
50 온 백성은 서둘러 돌아갔다. 그러자 다른 원로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원로 지위를 주셨으니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설명해 보게.' 51 다니엘이 '저들을 서로 멀리 떼어 놓으십시오. 제가 신문을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2 사람들이 그들을 따로 떼어 놓자, 다니엘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악한 세월 속에 나이만 먹은 당신, 이제 지난날에 저지른 당신의 죄들이 드러났소. 53 주님께서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당신은 죄 없는 이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죄 있는 자들을 놓아주어 불의한 재판을 하였소. 54 자, 당신이 참으로 이 여인을 보았다면, 그 둘이 어느 나무 아래에서 관계하는 것을 보았는지 말해 보시오.' 그자가 '유향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5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은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하느님에게서 판결을 받아 왔소. 그리고 이제 당신을 둘로 베어 버릴 것이오.'
56 다니엘은 그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나서 다른 사람을 데려오라고 분부하였다. 그리고 그자에게 말하였다. '유다가 아니라 가나안의 후손인 당신, 아름다움이 당신을 호리고 음욕이 당신 마음을 비뚤어지게 하였소. 57 당신들은 이스라엘의 딸들을 그런 식으로 다루어 왔소. 그 여자들은 겁에 질려 당신들과 관계한 것이오. 그러나 이 유다의 딸은 당신들의 죄악을 허용하지 않았소. 58 자 그러면, 관계하는 그들을 어느 나무 아래에서 붙잡았는지 나에게 말해 보시오.' 그자가 '떡갈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9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도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당신을 둘로 잘라 버리려고 칼을 든 채 기다리고 있소. 그렇게 해서 당신들을 파멸시키려는 것이오.'
60 그러자 온 회중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1 다니엘이 그 두 원로에게, 자기들이 거짓 증언을 하였다는 사실을 저희 입으로 입증하게 하였으므로, 온 회중은 그들에게 들고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이웃을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그 방식대로 그들을 처리하였다. 62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들을 사형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에 무죄한 이가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


복음 요한 8,1-11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며칠 전에 물건을 구입하고 거스름돈을 받았는데 집에 와보니 거스름돈이 없는 것입니다. 10만 원 권 수표를 내고 받은 거스름돈이라 꽤 많은 액수였지요. 물건을 구입했던 가게를 찾아가면서 길바닥에 떨어졌는지 살펴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포기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포기가 쉽지 않네요. ‘잃어버린 것을 어떻게? 그냥 잊어버리자.’라고 신경을 쓰려고 하지 않을수록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집착만 커집니다.

그런데 외출을 위해 걸쳐 입은 겉옷 주머니에서 1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이 나왔습니다. 뜻밖의 횡재지요. 잃어버린 거스름돈보다도 더 많은 액수입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거스름돈에 대한 집착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주머니 안의 돈은 원래 내 것이고, 잃어버린 돈도 내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집착이란 항상 부재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돈’이라는 물질적인 가치 안에서만 집착이 생길까요? 아닙니다. 명예의 상실, 사람과의 이별을 통해서도 생기는 것이 바로 집착입니다. 특히 집착에 빠지게 되면 다른 사람에 대한 여유가 없어지게 되지요.

오늘 복음에서도 이 집착에 빠진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예수님을 찾아온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어떻게 할지를 묻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여자를 돌로 쳐라’라고 하면, ‘죄를 용서하러 왔다더니, 무슨 소리요?’라고 말할 것이고, 만약 그가 ‘여자를 보내 주어라.’라고 하면, ‘당신은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하지 않았소?’하고 말할 예정이었습니다.

사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고발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과 간음한 여인은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지요. 또한 공적으로 인정받은 종교 지도자인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그들은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함이었지요. 자신을 향한 존경과 사랑이 예수님께 빼앗겼다는 생각에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집착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응답을 하시지 않습니다. 그들을 보지도 않고 땅에 무엇인가를 쓰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무엇을 쓰셨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것은 그들의 폭력에 똑같이 맞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침묵 속에서 그리고 몸을 굽히는 겸손함 속에서 이렇게 말씀하실 뿐이었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자기 자신부터 의로움을 실천할 것을 요구하는 이 명령을 듣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바라보고 계시지도 않는데도 다들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로소 자신의 죄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질 수가 없었습니다.

용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는 아무런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도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라고 말씀하시며, 여인을 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용서를 받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왜 집착에 매달려서 다른 이들을 단죄하며 살려고 할까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용서의 삶,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보다 넓은 곳으로 불러내는 그 무엇입니다(릴케).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깨끗한 손톱을 가지려면?

초등학교 선생님이 자신이 맡은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깨끗한 손톱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학생이 답했지요.

“손톱에게 힘든 일을 시키지 않고 그냥 빈둥빈둥 놀게 하면 됩니다.”

또 다른 학생이 답합니다.

“하루 한 번 매니큐어로 관리하며 왕비처럼 모시면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틀렸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깨끗한 손톱을 갖고 싶으면 손톱에게 일을 시켜야 합니다. 머리를 감거나 세수를 하면 손톱은 저절로 깨끗해집니다. 설거지를 해도 손톱은 저절로 깨끗해집니다.”

이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보면서 정말로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머리를 감을 때, 설거지를 하고 난 뒤에 깨끗해진 손톱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손톱의 입장에서는 자기를 위한 일이 아니지요. 머리카락을 위하고 그릇을 위해서 손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로 돌아오는 것 중의 하나는 자기 자신이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렇지 않을까요?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사는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한 삶으로 연결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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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하늘 (2014/04/07 08: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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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을 들을때마다 ,내 자신으로 생각 됩니다. 하느님을 모를때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

살기 위해 거짓말 하며 남의 물건들을 탐내고 도둑질 하고 일부러 훔치지는 않았지만 무엇이든지

생기기만 하면 내것인양 살아왔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 여자도 살기 위해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죽어야 할 사람이 알지도 못 하는 어떤 분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여자는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 여자는 무덤에 묻힌 이제는 자신에게 더 이상 도움이 될 수없는 시신을 찾았고 자기가 모셔가겠

다는 그 마음에 저를 감동 받게 했습니다. 처음 성경을 읽으면서 한참 묵상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집착일까?  아쉬워서 일까?

아니야!   "사랑"이야 결론은 거기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여자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지었습니다.

저도 그 여자처럼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세례때 주님께 글을 써서 인장

반지 처럼 약속 했습니다. 첫 봉헌금 속에 넣어 함께 약속 했습니다.

그여자 처럼 나르드 향유는 없어도 가난한 제 마음을 바치겠습니다. 그대신 당신께서는

저에게 부활 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나는 첫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것도 제 교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순수한 제 마음이였습니다.

주님!  제가 실천을 못 했는지 모르지만 그약속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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