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4년 4월 25일 부활 팔일 축제 내 금요일

글쓴이 :  빠다킹신부님이 2014-04-25 04:51:00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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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4월 25일 부활 팔일 축제 내 금요일

제1독서 사도 4,1-12

그 무렵 불구자가 치유받은 뒤 1 베드로와 요한이 백성에게 말하고 있을 때에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가이들이 다가왔다. 2 그들은 사도들이 백성을 가르치면서 예수님을 내세워 죽은 이들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을 불쾌히 여기고 있었다. 3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붙잡아 이튿날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이미 저녁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4 그런데 사도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믿게 되어,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5 이튿날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 6 그 자리에는 한나스 대사제와 카야파와 요한과 알렉산드로스와 그 밖의 대사제 가문 사람들도 모두 있었다. 7 그들은 사도들을 가운데에 세워 놓고,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하고 물었다.
8 그때에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 차 그들에게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 9 우리가 병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라면, 10 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11 이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12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복음 요한 21,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오늘 묵상 글은 조금 일찍 올립니다. 잠시 뒤에 인천교구 마전동 성당의 전 성소후원회 회장님이셨던 정원재(대건안드레아) 형제님의 장례미사를 하러 인천국제성모병원으로 가야 하거든요. 고인이 되신 대건안드레아 형제님께서는 이번 세월호 침몰 참사의 희생자이십니다. 대건안드레아 형제님과 세월호의 모든 희생자들의 영혼이 주님 안에서 평안한 안식을 누리시길 함께 기도해주셨으면 합니다.

전 국민이 모두 그렇겠지만 저 역시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실종자의 숫자는 계속 줄어드는데, 구조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망자 숫자만 늘어나는 상황, 세월호 침몰의 각종 원인들이 미리 조치할 수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나라가 이 모든 희생자들을 제대로 구해내지 못했다는 현실에 슬픔이 커질 수밖에 없네요. 여기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행동과 말이 덧붙여서 국민의 한 사람인 저 역시 분한 마음을 삭히기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저도 이러한데 희생자들의 가족들의 슬픔과 아픔은 얼마나 클까요?

살아 있음이 죄인 같습니다. 정부의 늑장 대응과 부적절한 행동들을 보면서도 ‘그래도 사람을 살리는데 최선을 다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정부의 방송만을 보고 있었던 것, 안전 불감증이라고 불릴 만큼 지금까지 많은 사고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함께 마음을 모으지 못했던 것 등등이 저를 죄인으로 만듭니다.

이렇게 죄인이라는 심정을 전 국민이 다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 우울한 것 같고, 작은 것에도 화를 내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죄인의 심정만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인의 심정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제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아마 ‘죄인’이라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스승님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스러움, 스승님과 그 길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죄스러움이 제대로 생활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은 예전의 직업인 고기잡이를 나서지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라고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고 그 말을 따르자 그물을 끌어올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지요. 수난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자주 당신의 뜻에 맞게 살아가기를 강조하셨지요. 그 말씀을 따를 때, 자신들이 생각한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오늘 복음은 보여줍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죄인의 심정, 패배자의 마음, 그리고 더 이상 아파하고 슬퍼하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이제는 희생자의 가족들이 아픔을 하루 빨리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하며, 이러한 인재가 더 이상 재발하지 않도록 온 국민이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담겨 있는 사랑의 길. 이 사랑의 길은 무조건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면서 그냥 놔두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알아서 하겠지.’라면서 안일한 마음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 책임을 동반하는 사랑의 길임을 기억하면서 우리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한 마음이 되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시간을 바꾸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오마에 겐이치).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


동방예의지국

얼마 전에 서울 명동에 갔다가 일 다보고 다시 전철을 타고 내려오는 중이었지요. 전철은 낮 시간이라 한산한 편이었지만 앉을 자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입구 쪽에 서서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남학생이 너무나 힘든 표정을 지으며 서 있는 것입니다. 어딘가가 무척 아픈 것 같더군요. 그때 마침 노약자석에 자리가 생겼습니다. 제가 말했지요.

“지금 너무 아파보이네요. 여기에 앉아요.”

그러자 이 청년은 “아닙니다. 여기는 노약자석이잖아요.”라고 말하면서 거절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그 전철 칸 안에서 제일 약자는 이 청년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노약자석이라고 하면서 자리 앉는 것을 거부하더군요.

하긴 노약자석에 젊은 사람이 앉아있다고 화를 내시는 어르신들을 본 적이 몇 차례 있었기 때문에, 이 청년의 말이 전혀 이해하기 힘든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르신에 대한 공경도 중요하지만 약자에 대한 배려도 예의를 지키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렸습니다. 단순히 어른을 잘 섬긴다는 이유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예의란 어른을 섬기는 것뿐이 아니라, 약자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도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지금 우리의 현실은 과연 예의를 지키는 것일까요?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해 많은 약자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을 향한 우리의 예의는 과연 무엇인가요? 남 일처럼 생각하고 관심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마음을 합해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나라가 진정한 ‘동방예의지국’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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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수아 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4/04/25 07:5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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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건안드레아님의영혼과 세월호 희생된모든영혼에게 영원한안식을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정의천사 (2014/04/25 17:2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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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안타깝게 희생된 영혼을 거두시고 주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주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정의천사 (2014/04/25 17: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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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안타깝게 희생된 영혼을 거두시고 주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주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서병삼요셉입니다모바일에서 올림 (2014/04/25 21: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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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뜻대로 하소서.
이제는 주님의 품에서 영면하게 하시고
더 큰 사랑을 주소서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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