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만이 몸을 담군 요르단 강은 어떤 강인가?

해바라귀님 2012-03-24 07:57 ... 조회(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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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그리스도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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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그는 어린 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나아만은 수행원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이 종이 드리는 선물을 부디 받아 주십시오.'

 

그러나 엘리사는 '내가 모시는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결코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하고 거절하였다. 그래도 나아만은 그것을 받아 달라고 거듭

청하였지만 엘리사는 거절하였다.

 

그러자 나아만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시다면,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이 종에게 주십시오. 이 종이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님께서 이

종을 용서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2열왕 5,14-18ㄱ)

 

10절에서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사는 심부름꾼을 시켜 말을 전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 했다고 합니다. 심부름꾼의 말이지만 곧 하느님의 사람의 말과

동일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지금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교회의 말씀이

주님의 말씀이라고 하시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묵상합니다.

 

우리도 나아만이 직접 엘리사의 말을 듣고 실천한 것이 아니라 엘리사의

심부름꾼의 말을 듣고 그 말씀을 실행함으로써 나병에서 치유되었듯이

교회의 말씀을 듣고 실행함으로써 우리들의 나병도 깨끗이 낫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르단 강에 대하여 묵상을 나누겠습니다.

요르단 강은 어떤 강인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강을 두 번 건넙니다.

첫 번째 출애굽을 위해 건넌 강이 갈대바다(홍해)이고 광야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건넌 강이 바로 요르단 강입니다.

 

"주님의 계약 궤를 면 사제들이 요르단 강 한 복판 마른 땅에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동안, 온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건너서, 마침내 온

겨레가 다 건너간 것이다."(여호 3,17)

 

그리고 이 요르단 강은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건넌 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이 강을 혼자서 건너지 않고 엘리사가 함께 동행을 했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2열왕 2,1 이하 참조) 왜 엘리사가 동행했는지

이 묵상은 다음 기회에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요르단 강은 예수님께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강이기도

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가셨다."(마태 3,13)

 

그리고 우리들도 이런 말을 곧잘 합니다.

죽은 후에 천국에서 만나자는 말을 요르단 강 건너서 만나자고.

곧 죽는다는 것은 곧 요르단 강을 건너는 것이고, 요르단 강을 건너면

그곳에 누군가가 기다리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누구일까요?

요르단을 건너서 만나는 분은 곧 나아만이 고백하듯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요르단 강에 몸을 일곱 번 담갔더니 어린 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씀은 나아만의 몸의 나병이 치유되었음도

말하고 있지만 그의 영적인 나병도 치유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겉의 몸만 치유되었다고 해서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돌처럼 굳은 마음이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이 되어야 하느님을 알아뵈 올

있습니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에제 36,26)

 

사람의 돌처럼 굳은 마음이 사람인 내 힘으로 고쳐지지 않음을 우리는 누구나

고백합니다. 정말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원의는 있으나 그것이 고쳐지지

않는 비참한 인간임을 바오로 사도께서도 고백하셨습니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로마 15-25 참조)

 

나아만은 나병이 치유되기 전에는 자신의 영적인 나병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치유되어 몸과 마음이 어린 아이처럼 되고 나서야

자신의 영적인 나병이 무엇이었는지 본 것입니다.

 

그는 이제 이렇게 처신합니다.

치유 받으러 올 때는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왔던 그가 이제는 수행원만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당연히 자신

앞에 서야 된다 던 그가 이제 스스로 엘리사 앞에 서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만 하느님이 계시다고, 곧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야말로

참 하느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선물을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거절합니다. 이 세상 것 모두가 당신 것인데 사람이 주님께 무슨 선물을

한단 말입니까? 오히려 선물을 받은 쪽은 나아만이고 우리들입니다.


그러자 나아만은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달라고 합니다.

왜 하필 나귀 두 마리에 흙을 가지고 간다고 하는지는 다음에 묵상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이 노예살이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건넌 강이 갈대바다(홍해)라면

하느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건넌 강은 요르단 강입니다.


나아만이 요르단 강에 내려갔다는 것이 그의 영적 나병인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하던 그의 교만이 내려갔다는 증거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직접 자신 앞에 나와 서야 한다고 화내던 그가 이제 스스로

요르단 강으로 내려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요르단 강은 스스로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삶을 사는 곳이며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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