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간 화요일(코린토 1서 2장10~16절)
오늘 독서 중간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을 일고 ‘나에게는 어떤 체험이 있었나..’ 하고 생각해 보았는데요. 요즘 발목과 손목
이 다친 것과 관련해서 발견한 선물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의 현존을 조금 더 깊이 체험하게 되었다.. 는 겁니다. 열흘 전쯤에 발목이 다
쳐서 거의 활동을 못하다가 지금은 거의 다 나은 거 같은데요. 발목이 날만 하니까 이제 손목
이 아프더라고요. 목요일 저녁부터 조금씩 아프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붓기도 있고 통증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운동도 못하고, 일도 못하고, 활동도 못하는 경우
가 많아져서 답답한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요. 그 안에 예상치 못한 선물이 있었던 거 같습니
다.
하루는 성체조배를 하는데 하느님의 현존이 아주 가까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느껴지더라고
요. 그래서 기도의 자리에 오래 있게 되고, 미사도 더 정성스럽게 봉헌하게 되었는데요. 제
생각에 그런 체험이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요즘 활동량이 줄다 보니 자연히 정적이고 고
요한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되었고, 그러한 상황이 하느님의 현존을 보다 가까이 느낄 수 있도
록 만들어 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 느낌을 잃지 않으려고
침묵과 기도에 관한 책을 보면서 기도를 다듬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고통의 신호가 하느님의 선물임을 새삼 바라보게 되었다는 겁니다. 지금 타자를
치는 것도 굉장히 느리게 겨우겨우 치고 있는데요. 평소에 쉽게 했던 활동들이 지금은 너무
힘듭니다. 빨래 개는 거나, 책 보는 거, 청소하고, 가벼운 물건들을 나르는 것도 평소 같지 않
습니다. 평소와 같이 하려고 하다보면 금방 손목이 아프다고 신호를 보냅니다.
아까도 한 손으로 굵은 관을 물탱크에 넣으려다가 잘 안 되어서 왼손으로 거들어 보려고 하
다가 ‘아~’ 하고 통증을 느끼며 힘을 빼게 되었고, 다시 한손으로 겨우 넣었는데요. 그런 고
통의 신호를 느끼다보니 이제 거의 왼손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다 나을 때까지 그래야 할 거
같은데요.
만약에 그 아픔의 신호가 없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고통의 감각이 무디고 없어져서 몸이 망
가지는 나환자들처럼 저의 몸도 조금씩 망가질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평
생 동안 나병환자들을 돌본 폴 브랜드라는 의사는 고통의 신호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얼
마나 귀한 선물인가.. 하는 이야기를 책에서 하더라고요. 저도 그러한 사실을 오늘 요즘 새삼
바라보게 된 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또 하나의 선물을 새삼 바라보게 되었는데요. 바로 우리 몸의 회복
력입니다. 제가 다리를 삐고 손목이 아파서 병원을 찾았을 때,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통증을 느끼지 않게 진통제를 처방하거나, 회복하는 동안 손목이나 발목을
고정하는 거나, 몸의 회복력이 좋아질 수 있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는 것들이었는데
요. 보면 실제 치료는 하느님이 우리 몸 안에 심어주신 능력들이 붓기를 가라앉히고, 손상된
것을 천천히 회복시키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새삼 바라보며 하느님이 주신 선물에 대해 감사
하게 된 거 같습니다.
오늘 하루, 내 삶 안의 선물들을 발견해 봅시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한 형제님이 병원에 가서 피를 뽑게 되었는데,
수녀님이 심줄을 한참 찾으며 이런 질문을 하셨다고 한다.
“흑인들은 심줄을 어떻게 찾을까요?”
“왜 그런 질문을 하세요, 수녀님...”
“형제님도 너무 까매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