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저녁 식사 후 묵주기도를 바치자마자 걷기 운동을 위해 보라매공원으로 향합니다. 운동량에 비해 기대했던만큼 체중이 줄지 않지만 건강을 생각하며 열심히 걷습니다.
운동을 하는 시간은 주로 저녁 시간입니다. 그러다보니 밤 풍경의 보라매공원이 눈에 익습니다. 제겐 가로등이 켜진 공원과 어둑한 주변 모습이 자연스럽습니다. 공원 뿐만이 아니라 공원으로 향하는 경로도 어두운 길에 익숙합니다. 한여름에는 낮시간이 길기 때문에 요즘과 비슷한 시간에 나가도 환합니다. 하지만 이내 어두워지기 때문에 결국 저녁풍경이 저에겐 '보라매공원'의 자연스런 풍경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낮시간에 보라매공원으로 갔습니다. 제가 생각하던 보라매공원이 아니었습니다. 살짝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공원이 상당히 낯설었습니다. 밤 풍경의 공원 모습에 익숙한 저였기에 낮 시간의 주변 모습은 저를 어리둥절하게 했습니다. 밤이라서 보지 못한 조형물도 봅니다. 평소 운동하면서 걷는 경로를 똑같이 걸었는데도 처음 온 곳인양 느껴졌습니다. 기분이 묘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던 보라매공원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이른 아침에 환자 봉성체를 하러 보라매공원으로 갔다가 시간이 남아서 운동하는 경로를 따라 걸었는데, 낮 시간에 걸었던 것과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새로 만든 공원처럼 '보라매공원'은 저에게 낯선 곳이 되었습니다.
제가 늘 보던 풍경이 너무나 익숙해서일까요? 휴일 오전이나 오후에 아무리 시간이 남아도, 운동은 꼭 저녁에 나가게 됩니다. 시간 날 때, 기분 좋게 걷고 들어와서 저녁 시간에 다른 일정을 보내도 될 텐데, 운동은 꼭 저녁에 나갑니다. 1년 넘게 걸었던 밤 풍경의 보라매공원이어서 그런지 낯선 보라매공원의 모습이 너무나 어색합니다. 그냥 지인과 산책을 하거나 어딜 가기 위해 보라매공원을 경유한다면 모르지만, 운동 만큼은 저녁에 나가게 됩니다. 이 사실을 오늘 운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늘 반복 되는 일상이지만 어느 순간 주변이 바뀌면 내 생각과 시선도 바뀌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긍정적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부정적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또 주변이 변하면 희망을 꿈꾸지만, 반대로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정작 내 생활은 그대로인데 나의 생각과 시선에 따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립니다. 무엇이 두려울까요? 왜 주변의 변화에 민감해 질 수 밖에 없을까요?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또는 매주 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가고, 본당 활동을 하고, 피정 또는 영적인 강의를 들으며 내 신앙을 살지만, 어느 순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교회의 가르침, 받아들일 수 없는 교리, 실망스런 성직자 수도자 또는 가톨릭 신자들의 모습, 내 생각과 달리 사회를 향한 교회의 목소리를 접할 때, 늘 품고 지내던 내 신앙이 낯설게 느껴지고 회의감을 느끼며 혼란 속에 빠지게 됩니다. 왜 주변의 상황 때문에 내 신앙이 흔들릴까요?
어쩌면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무너질 때 느끼는 자괴감이나 사고의 전환에서 오는 가치관의 혼란을 피하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연히 보게 된 교리서를 읽거나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듣고, 그동안 살면서 내가 믿었던 하느님이 전혀 다른 분이심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 내가 믿고 따르던 교리를 다시 배우거나 반대되는 의미로 해석을 하고 실천을 해야 할 때의 어색함, 내가 생각했던 사람의 모습과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을 보았을 때의 혼란이 일상적인 신앙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내 신앙관이 흔들리기 때문에, 변화의 바람은 불지라도 평소의 모습대로 기도하고 활동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주저하고 옛 것에 안주하려는 것이 아닐까요?
저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사실 낮이나 밤이나 똑같은 거리, 똑같은 경로를 걸으면 똑같은 효과를 봅니다. 하지만 주변 풍경이 낯설다는 이유 하나로 낮에 운동하기를 주저합니다. 밤에 일이 있어서 운동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되더라도 낮시간의 보라매공원은 너무나 어색한 공간이라 운동하러 가기를 주저합니다. 단순한 게으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제 인식의 저변에는 '운동은 익숙한 밤시간에'라는 생각으로 사로잡혀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변화를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와 안 맞는다 하더라도,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주변의 상황이 나와 맞지 않다 하더라도, 그 변화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생각으로 내가 산 일상과 신앙생활을 충실히 산다면 좋겠습니다. 주변이 변하는 것이지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변은 바뀌어도 나는 '나'입니다. 오히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받아들인다면 나에겐 하나의 성장의 기회가 되고 나만의 사고방식의 틀을 깨고 새롭게 주변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시선과 생각이 바뀌면 어색했던 주변상황도 나에게 맞춰집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만큼 마음을 열고 시선을 넓히십시오. 변화를 거부하여 내 자신을 쇄신할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언제나 마음과 시선을 열어 놓으십시오. 변화가 여러분을 성장시키고 성숙시킬 힘이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