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 후 보라매 공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어떤 시각 장애인 한 분이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 지팡이로 앞을 더듬으시며 걸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시니 얼마나 답답하실까 생각하면서도 아직 안경 없이도 주변을 보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제 눈이 고마웠습니다. 그만큼 무엇을 본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주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하며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시각 장애인 분들도 주변을 바라보는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겠습니다만 직접 보는 것과 느낌으로 아는 것은 분명한 차이는 있다고 봅니다.
어렸을 때 누나와 장님체험 놀이를 한 적이 많았습니다. 두 눈을 꼭 감고 누나의 손에 이끌려 이곳 저곳으로 다녔던 적이 생각납니다. 누나는 눈을 감고 있는 저에게 심한 장난을 치지 않고 정직하게 제 손을 잡고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너무 무섭고 답답했습니다. 누나를 믿지만 '혹시나 나를 나무나 기둥으로 인도해서 부딪히게 하지는 않을까?', '잘 인도해 준다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실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잘 아는 길이고 눈 감고도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할 정도로 익숙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 간다는 것은 두려웠기에 누나에겐 눈을 꼭 감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실눈을 살짝 떠서 주변을 살피면서 걸었습니다.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행복한 현실입니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주변으로부터 분리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간은 보지 않아도 될 것을 안 봐도 되기에 마음 편할 수 있지만 그 편안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길 한 가운데에 서서 눈을 감고 있어보십시오.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 움직임 등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합니다. 그리고 돌발상황에 대처를 하지 못하기에 그만큼 두렵습니다.
신앙인인 우리도 눈을 떠야 합니다. 바로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는 눈 말입니다. 세상의 흐름은 하느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우리를 영적인 시각 장애인으로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을 보지 말고 그저 세상이 들려주는 달콤한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라고 유혹합니다. 하지만 그 세상의 것들이 우리를 어떻게 헤칠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눈을 감고 있는 동안은 정말 편안하겠지만 하느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있는나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고 그 일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눈을 감고 산다면 우리 삶을 불안하고 두렵고 겁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길을 보여주시고 방향을 잡아 주십니다. 때론 차라리 눈을 감고 있는 것이 편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의 표정과 손으로 지시하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방황할 수 밖에 없고, 우리에게 닥친 위기 앞에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눈을 뜨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말씀과 성체의 신비 안에서, 우리의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삶 안에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그 이끄심에 응답하고 사는 것이 바로 마음의 눈을 뜨고 사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눈을 감지 못하도록 주님께 은총을 청합시다. 늘 눈을 뜨고 있도록 주님께 도움을 청합시다. 두려움과 무서움에 떨지 말고 용기를 내어 주님의 손을 꼭 잡읍시다. 그분께서 이끌어 주시는 사랑의 힘으로 이 세상을 바라봅시다. 하느님의 시선으로 하느님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느끼도록 우리의 삶을 그분께 기쁘게 봉헌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