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22 온 세상도 당신 앞에서는 천칭의 조그마한 추 같고, 이른 아침 땅에 떨어지는 이슬방울 같습니다.
23 그러나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기에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시고,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그들의 죄를 보아 넘겨 주십니다.
24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지어 내신 것을 싫어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25 당신께서 원하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존속할 수 있었으며, 당신께서 부르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겠습니까? 26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당신께서는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 12,1 당신 불멸의 영이 만물 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므로 주님, 당신께서는 탈선하는 자들을 조금씩 꾸짖으시고, 그들이 무엇으로 죄를 지었는지 상기시키며 훈계하시어, 그들이 악에서 벗어나 당신을 믿게 하십니다.
제2독서 2테살 1,11─2,2
형제 여러분, 11 우리는 늘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여러분의 모든 선의와 믿음의 행위를 당신 힘으로 완성해 주시기를 빕니다. 12 그리하여 우리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에 따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영광을 받고,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2,1 형제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우리가 그분께 모이게 될 일로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2 누가 예언이나 설교로 또 우리가 보냈다는 편지를 가지고, 주님의 날이 이미 왔다고 말하더라도,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복음 루카 19,1-1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어제는 인천 백석 천주교묘원에서 위령의 날 미사가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영혼들을 위한 미사, 특별히 연옥 영혼들이 하루빨리 주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사실 미사를 위해 교구청에서 떠나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걱정이 되더군요. 미사가 이루어지는 성직자 묘원에는 비 피할 곳이 없거든요. 그래서 예년과 달리 위령의 날 미사에 참석하시는 신자 분들이 적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도착해서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서 함께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속 내리는 빗방울이 우산 틈 사이를 통해 계속 들어오고 있었고, 1시간 정도의 미사 시간 동안 신자들은 젖은 땅에 앉을 수 없어 모두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산 때문에 제대 쪽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단지 말소리만 들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최악의 상태의 미사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아는 교우들을 몇 분 만났는데, 하나같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신부님, 비가 와서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오늘 미사 너무나 좋았습니다.”
비 오고, 사람 많고, 다리 아파서 나빴다고 이야기를 해야만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좋았다고 말하는 것이 참 이상했지요. 그런데 모든 환경이 만족스러운 본당에서의 미사를 떠올려 봅니다. 본당에서는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비 맞지 않고 미사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우산 때문에 제대가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춥지도 않습니다. 어제 위령의 날 미사에 비교한다면, 본당에서 행해지는 미사는 정말로 가장 좋은 미사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미사가 힘든지, 영성체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돌아가십니다.
주변의 환경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내 마음이 열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바로 주님을 맞아들이려는 마음에 따라 가장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짜증을 낼 수 있고, 가장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행복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자캐오를 보십시오. 그는 부자였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경멸하는 세관장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키가 작아서 예수님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체면에도 상관없이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그가 오른 돌무화과나무 역시 그렇게 중요한 나무가 아닌, 아주 보잘 것 없는 나무입니다.
모든 상황이 안 좋았습니다. 그러나 자캐오는 이렇게 안 좋은 상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 구원이라는 큰 선물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크고 대단한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없다면 어떤 좋은 상황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캐오처럼 간절한 마음, 자신의 단점과 부족함을 극복하려는 노력,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내어 놓은 열린 마음 등이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의 길에 들어 설 수 있게 합니다.
지금 내 모습을 생각해보세요. 혹시 좋은 상황에서도 부정적인 마음으로 나쁜 상황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또 나쁜 상황에 놓였다고 그냥 포기하고 주저앉은 것은 아닌가요? 자캐오의 모습을 닮아 구원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는 우리가 되도록 합시다.
매 순간 자신을 잃지 않고 버티는 자는 반드시 한 송이 꽃을 피운다(허허당).
천막 속에서의 미사. 주교님 강론 중.
길들여짐.
사육당한 동물은 아예 길들여져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지요. 아기 코끼리 때에 쇠사슬에 묵어 두면, 나중에 힘 센 성인 코끼리가 되어 충분히 그 쇠사슬을 끊을 수 있는데도 가만히 있습니다. 또 오랫동안 새장에 갇혀 있던 새도 밖에 내놓아도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를 맴돕니다. 벼룩도 그렇지요. 자기 몸의 20배 이상의 높이를 뛰는 벼룩이지만, 아주 낮은 상자에 오랫동안 가두었다고 밖에 꺼내놓으면 10배도 채 뛰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 역시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에 길들여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그 물질적인 것들이 없다고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그러한 식으로 길들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길들입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그 안에서 희망을 간직할 수 있도록 길들입니다.
이러한 주님을 두고 누구를 쫓겠습니까? 주님이 아닌 세상의 것들에 길들여져 있었던 내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주님께 철저하게 길들여져 있을 수 있도록 그래서 가장 행복한 내가 되었으면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