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42 어떤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 왔다. 그는 맏물로 만든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을 자루에 담아, 하느님의 사람에게 가져왔다. 엘리사는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하고 일렀다. 43 그러나 그의 시종은 “이것을 어떻게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엘리사가 다시 말하였다.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주님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44 그리하여 그것을 사람들에게 내놓으니,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먹고도 남았다.
제2독서 에페소 4,1-6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복음 마르코 6,1-15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무슨 말만 하면 “당신이 뭘 알아?”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아내를 무시하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이 남편 때문에 아내는 항상 주눅이 들어 살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교통사고로 병원 응급실에 있다는 연락을 받은 것입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허겁지겁 병실로 들어섰는데, 의사가 흰 천을 덮으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사망 선고를 내리는 것입니다. 이에 아내는 “아이고~ 여보~ 아이고~ 여보~” 외치면서 슬피 울 수밖에 없었지요. 바로 이 순간이었습니다. 남편이 몸을 비틀어 움직이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나 안 죽었어.”
그러자 아내가 남편을 다시 눕히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당신이 뭘 알아? 의사가 죽었다는데…….”
아내의 이 말은 맞을까요? 틀릴까요? 사실은 아내의 말이 틀렸지요. 아무리 믿음이 가는 의사의 말이라 할지라도 살고 죽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평소에 남편이 보여 주었던 “당신이 뭘 알아?”라는 말이 이 순간에 작용을 하게 된 것이지요. 가까운 사람의 말은 믿지 못하는 행동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물론 단순한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우리도 평소에 이런 모습으로 살아간 것은 아닐까 라는 반성을 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즉, 나의 기준으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마음, 특별히 가까운 사람에게 믿음을 갖지 못하고 무시하고 부정했던 모습 등을 너무나 많이 간직하고 있는 우리였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빵의 기적을 보여 주십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 오천 명쯤 되는 엄청난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볼 내용이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을 곁에서 모시고 따랐던 제자들조차 예수님을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분명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깜짝 놀랄만한 기적을 자주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필립보는 이백 데나리온 어치 빵으로도 부족하다고 말하고, 안드레아는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신에도 불구하고 굳은 믿음을 보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봉헌한 아이였습니다. 부족한 양식을 위해 군중들에게 말했을 상황에서 자신이 가진 양식을 내어 놓은 사람은 이 아이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다른 군중들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아이는 예수님의 전지전능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남을 빵의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내 이웃에 대한 믿음도 또 주님께 대한 믿음도 부족한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직접 그 믿음의 증인이 되지 못하는 삶 안에 계속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의 믿음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 주님의 큰 움직임을 만들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 어떤 다정한 말은 땅에 묻힌 씨앗처럼 사랑을 품게 만든다(신경숙).
주일은 주님의 날. 기도하는 날입니다.
버릴 게 없다(‘행복한 동행’ 중에서)
스릴러의 아버지 알프레드 히치콕. 그는 어릴 때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머릿속은 온통 만들고 싶은 영화들로 넘쳐났지만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영화판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전선 케이블을 만드는 제조업체에 취직했다. 가금류 거래상이었던 아버지가 병에 걸리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무려 그곳에서 7년이라는 세우러 동안 직장 생활을 했다. 밤에는 영화에 대한 꿈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낮에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회사 제품 판매에 충실했다. 그는 보수는 조금 받더라도 부수적인 일은 더 많이 하겠다며 남들이 가기 꺼려하는 곳, 안 가는 거래처 등도 발 벗고 나섰다.
훗날 <레베카(Rebecdca)>로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습관을 들으면 그것은 분야를 떠나 통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꼼꼼하게 일했고, 그것이 영화 습작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거래처에서 만난 모든 인물들 속에서 영화 속 캐릭터를 빌려 왔다. 내 습작은 전선 케이블 판매에서 시작되었다.”
매사 버릴게 없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모든일도 꼭 나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을때
왜?
화도 나고 하필이면 내게 이런일이 하면서
일단 불평을 합니다.
불평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나서
다시 새롭게 생각해 봅니다.
그때는 아 주님의 뜻이 였구나
나를 선으로 이끄시기 위해서
나에게 희생을 요구 하시는구나
내가 지금 할 수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것
주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은 꼭 이루워 주신다는것을
포기하지 말고
굳건한 믿음이 필요 합니다.
+찬미예수님
빠다킹신부님,복음말씀과 강론말씀 감사히 잘들었습니다.오늘 저희 성당은 가정성화미사를 했습니다.그달의 맨마지막 주일이 가정성화의 날입니다.첫번째 강론에 나오는 남편은 되로주고 말로 받는것 같습니다.그리고 부인은 이에는이 눈에는눈이라는 말을 생각케 합니다.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랬을까 공감이 갑니다.하지만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이기에 미운이에게도 사랑의손을 내밀어야 합니다.특히 부부간에 주고 받는 마음의 상처는 칼로 베이는 육신의 상처보다 아픕니다.육신의 상처는 아물면 아프지 않지만,마음의 상처는 그상처가 치유되지않으면 오래도록 갑니다.저도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그런데 세상살이를 하면서 느낀점은 저 혼자의 힘으로는 그것이 힘들때가 많다는 것입니다.그때 제영혼의 도우미는 주님이십니다.주님께서는 이런 제마음을 사랑으로 바꾸어 주십니다.그래서 저는 어린아이 처럼 주님께 의지합니다.예전엔 반항아 처럼 주님께 함부로 말했습니다.'당신이 아니어도 저는 제힘으로 잘할수있어요' 라며 교만하게 굴었습니다.그런 저를 주님은 잡아 주셨습니다.주님은 항상 삐뚤하게 나가는 제 손목을 굳게 잡고 계셨는데,저만 몰랐습니다.어느날 늘 제손목을 잡고 계신 주님을 보면서 제가 얼마나 잘못 살았는지 알게됐습니다.이제는 제가, 제손목을 잡고 계신 주님의 손목을 굳게 잡았습니다.그리고 청합니다.'주님,제믿음이 약해지고 주님을 향한 제마음이 무디어질때 마다 제손목을 더 강하게 잡아주시고 제가 잡고 있는 주님의 손목을 생명줄 처럼 놓지않게 해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에겐 주님을 향한 강한 믿음이 필요합니다.믿음이 약해질때 마다 주님이 잡고 계신 우리의 손목을 생각하며,우리들이 주님의 손목을 놓는일이 없어야 할것 같습니다.아버지의 품을 떠났던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을때 기뻐하며 안아주었던 아버지 처럼 하느님은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이십니다.늘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주님의 자비안으로 들어가기위해 노력할때 우리들의 신앙도 한층 더 거룩해지리라 생각합니다.신부님의 강론말씀 가슴에 새기며 오늘 주어진 시간을 목숨처럼 감사히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신부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예수님 처럼 하느님께 모든것을 맡기는 사제가 되시길 소망합니다.아멘.